[지구 재난과 영화 속 환경·기후 위기] 영화 ‘브레이브 온 파이어(On Fire, 2024)’
전 세계는 폭염, 폭우, 한파, 가뭄, 쓰나미 등 전례 없는 기후 위기에 봉착했다. 이러한 지구 환경 변화는 앞으로 모든 생물이 멸종되는 ‘제6의 대멸종’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환경과 기후 위기를 어떻게 다루었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최근 경북 지역에서 시작된 불씨가 유례없는 사상 최악의 산불로 번져 큰 피해가 이어졌다. 특히 겨울철 강한 바람과 건조한 기후로 인해 산불은 남동부 지역을 휩쓸며 더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를 발생시켰다. 수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수많은 주택, 공장, 차량이 파괴됐다. 정부는 수백 명의 가용 가능한 군부대 인력은 물론 수백 대의 헬리콥터를 동원해 총력을 기울였으나 역부족이었다.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으로 화마는 순식간에 마을을 덮쳤다. 이번 산불은 한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로 기록됐다. 이 과정에서 7세기에 건립된 고운사와 같은 역사적인 문화재가 소실되는 등 문화유산에 대한 피해도 막대했다. 화마로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은 유가족들은 현장을 방문한 정치인이나 공무원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참혹한 현장은 지난 2024년 개봉한 영화 ‘브레이브 온 파이어(On Fire, 2024)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는 갑작스럽게 닥친 산불로 인해 겪는 고통과 과정을 한 가족의 시선으로 담아냈다. 화마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영화 속 상상의 장면이 아닌 지독한 현실 그 자체다.
비처럼 내리는 재, 재앙의 전조곡이 시작되다
산불로 인한 재가 마치 비처럼 내린다. 뉴스로 화재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 세라(피오나 듀리프)는 남편 데이브(피터 파시넬리)에게 “여기까지 번져오는 건 아니겠지?”라며 걱정한다. 그는 임신 8개월의 만삭 임산부다. 그저 뉴스에 나오는 화재 장면인 듯 자신과는 상관없으리라고 생각했던 산불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인가로 번졌다. 처음에는 ‘파커’ 지역에 국한된 화재였다. 소방당국은 수시로 들어오는 전화에 “안도해도 좋다. 지금 다른 곳은 안전하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수화기 속 상대의 상황은 달랐다. “이상한데요? 여기 ‘콜버트’에도 연기가 자욱해요”라며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다. 소방대원의 당부에도 의심을 버리지 못했던 상대방은 잠시 후 “불이...”라고 다급하게 외치다 “살려줘요”를 연발했다.
미국 화재 당국에서는 애초에 파커에서 시작된 산불이 모두 금방 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파커는 미 전역으로 번진 거대한 화마의 시작일 뿐이었다. 같은 상황이 현실 속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났다. 지난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작은 산불은 어느새 동해안 영덕까지 번졌다. 밤새 동해안 도로에는 피난 행렬이 이어지며 도로 전체가 주차장이 됐고, 휴대전화가 먹통 됐다. 마치 대한민국 의성 산불 현장을 보는 것처럼 영화 속 세라 가족에게 덮친 참극의 순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방송에서는 연신 산불 뉴스가 나왔다. “재앙 수준의 산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불길은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방송에서 생중계하는 산불 현장에는 세라네 가족도 있었다. “엄마, 불이 벌써 산마루까지 왔어요!” 아들 클레이는 엄마 세라에게 외친다. 산불이 강풍을 타고 마을까지 순식간에 밀려왔다. 서둘러 세라는 아들과 시아버지를 차에 태우고 마을을 떠난다. 남편은 화재에 대비하기 위해 철물점에 갔다가 도로 통제로 집을 코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한 상황이었다. 노쇠한 시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뱃속의 아기를 살릴 사람은 이제 세라 자신뿐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산불에 의해 통신망은 마비돼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
기후 변화로 인한 산불 피해, 어떻게 극복할까
“마치 총소리로 들릴 만큼 바람이 사납습니다.” 기자는 동해안 7번 국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시뻘건 불기둥이 동해안 7번 국도가 지나는 산자락을 에워쌌기 때문이다. 7번 국도는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을 잇는 동해안 일주도로다. 의성에서 시작된 불이 영덕으로 번지면서 주민들은 대피하기 위해 모두 도로로 몰려나왔다. 순간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모해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경북 영덕 일대는 산불로 인해 통신망과 전기가 끊어져 더 큰 혼란과 불편을 빚었다. 심지어 일부 어촌 주민 백여 명은 불길을 피해 방파제 끝까지 갔다가 해경에게 구조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대피 과정에서 사상자도 속출했다. 탈출하지 못하고 집안에서 사망하거나 차를 타고 대피했지만 열기로 인해 차량이 폭발해 사망하는 사고까지 잇달았다.
영화 속 상황도 마치 현실을 보는 듯 똑같았다. 강풍에 밀려 들어온 화마에 콜버트 지역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불길은 도로를 타고 오는데 대피로는 사람으로 가득 찼다. 세라는 남편 없이 만삭의 몸으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기를 쓴다. 하지만 이미 뜨거운 화염이 도로 위를 덮치고 세라 가족이 탄 차량 속에도 스멀스멀 열기가 더했다. 세라도 어떻게든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살아야 한다. 살려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세라는 가득했다. 하지만 상황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야생동물이 차 앞으로 뛰어들면서 큰 사고가 난다. 반파된 차량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세라는 마침 경찰의 만류를 무릅쓰고 가족을 만나러 오던 남편 데이브와 만날 수 있었다. 데이브의 도움을 받아 가족들은 반파돼 운행이 어려운 세라의 차를 버리고 데이브와 함께 피난길에 오른다. 하지만 사고 과정에서 데이브의 아버지는 피를 흘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불이 옮겨붙은 대형 나무들이 강풍에 깃털처럼 나부끼며 세라 가족을 위협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데이브는 눈물을 머금고 아내와 아들만 태우고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피난 행렬이 지나간 7번 국도의 상황도 세라 가족의 상황과 비슷했다. 7번 국도 곳곳에는 산불이 옮겨 붙어 뼈대만 남고 타버린 차량이 버려져 있었다.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한 과정에서 참극도 벌어졌다. 영덕읍 매정리에선 요양시설 환자들을 태우고 대피하던 차량이 열기 속에 폭발해 노인 등 3명의 환자가 숨지고 말았다.
도로 상황이 여의치 않자 데이브는 불길 반대편에 있는 집으로 갔다. 다행히 아직 세라네 집은 전소하지 않았다. 일단 집에 방염장치를 하기로 한 데이브. 목재로 만들어져 화재에 취약한 집 곳곳에 방염작업을 시작했다. 촛불 하나에 의지한 체 구조대를 기다리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세라와 데이브. 하지만 옆집 엘킨스 집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슬퍼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엘킨스씨 집 뒤편에 둔 가스통이 폭발 조짐이 보였다. 가까스로 폭발지점을 빠져나온 세라 가족. 그런데 이번에는 차가 경고음과 함께 얼마 못 가 멈춰버린다. 엔진 문제였다. 이제 차를 버리고 걸어야 한다.
불구덩이 속에서 가족을 살리기 위해, 살기 위해 노력하는 세라와 데이브의 모습은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닥칠 수 있는 위기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와 현실 모두에서 산불은 예기치 않게 닥쳐오며, 개인과 공동체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가정에서는 평소에 소화기, 방화 담요, 스프링클러 시스템을 점검하고 정부의 구조를 기다릴 수 있는 비상 전원 장치 등도 준비해야 한다. 정부는 산불 발생 위험 지역을 미리 점검하고 드론 및 위성을 활용해 감시 시스템을 꼼꼼하게 운영해야 한다. 미리 산불 진압용 헬기와 방화선 구축 장비 등 전문적인 산불 진화 장비 확충에도 힘써야 한다. 철저한 대비와 대응만이 산불 피해를 막고 앞으로 또 있을 수 있는 산불 피해에서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