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재난과 영화 속 환경·기후 위기] 영화 ‘대지진(2010)’

전 세계는 폭염, 폭우, 한파, 가뭄, 쓰나미 등 전례 없는 기후 위기에 봉착했다. 이러한 지구 환경 변화는 앞으로 모든 생물이 멸종되는 ‘제6의 대멸종’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환경과 기후 위기를 어떻게 다루었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위클리서울/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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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최근 대만 동부 화롄 지역에서 규모 7.4의 강진이 발생해 건물 붕괴와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이번 지진은 대만 역사상 25년 만에 가장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됐다. 비슷한 시기,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 인근에서도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해 큰 피해가 발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1만 명을 넘을 가능성이 71%에 달한다”라고 분석했다. 미얀마는 여러 지각판이 교차하는 지역으로 지진에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대규모 지진은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한다. 50여 년 전, 1976년 중국 허베이성 탕산에서 발생한 대지진도 마찬가지였다. 탕산 대지진은 당시 규모 7.5의 강력한 지진으로 중국 역사상 가장 최악의 지진이었다. 탕산 일대 주민 24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십만 명이 부상을 입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탕산 지진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대지진(Aftershock, 2010)’은 당시 참혹했던 현장을 재현하며, 앞으로 다가올 지진에 대해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진다.

영화 ‘대지진’, 한 가족이 겪은 지진 이후의 참극

1976년 7월 28일. 평범한 소시민들이 하루하루를 평온하게 살고 있던 터전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사라졌다. 지진 발생 시간은 약 23초에 불과했지만 40여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재앙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대지진 중 하나로 꼽히는 탕산 대지진이 발생한 날이었다. 영화 ‘대지진’은 소박하지만 성실한 일상을 살아가던 한 가족의 시선으로 탕산 대지진이 남긴 참극 이후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창 귀여운 일곱살 쌍둥이 ‘팡등’과 ‘팡다’, 그리고 그들의 엄마 유안리(쉬판 분), 아빠 방대강(장국강 분)에게 7월 28일은 어제와 다름없는 평범한 날이었다. 매일 그렇듯 유안리와 남편 방대강은 아이들을 두고 밤일을 하러 나간다. 매일 그렇듯 유안리와 남편 방대강은 아이들을 두고 밤일을 하러 나간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일어난 지진에 놀란 이들은 서둘러 아이들만 있는 집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아이들이 자고 있던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아이들을 구하겠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간 아빠 방대강도 건물에 깔리고 만다. 불과 몇 초 만에 일어난 일이라 유안리는 어안이 벙벙하다. 건물 잔해 속에서 남편을 찾는다고 맨손으로 건물 잔해를 치우는 유안리. 하지만 남편을 꺼낼 수 없다. “신이시여!” 울부짖는 유안리의 머리 위로 장대 같은 비가 쏟아진다.

한편 건물이 무너지면서 쌍둥이들은 건물 아래 깔렸지만 다행히 살아 있었다. 오빠 팡다는 정신이 들자마자 엄마와 동생 팡등을 찾는다. 하지만 건물 잔해에 깔려 팡다는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다. 구조대가 쌍둥이를 찾았다는 소리에 서둘러 가보는 유안리. 간신히 들어올린 잔해 속에 아들 팡다의 모습이 보인다. “여동생은 어디 있니?” 돌멩이로 여동생의 위치를 확인한 엄마가 구조대에게 제발 쌍둥이를 구해달라고 사정한다. 다행히 아직 둘 다 목숨은 붙어 있다. 하지만 아들을 구하면 딸이 죽고, 딸을 구하면 아들이 죽는다. “이쪽 콘크리트를 들어 올리면 아들이 으스러질 거고요. 저쪽 콘크리트를 들어 올리면 딸이 죽습니다. 어떻게 할 겁니까?”라는 비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둘 중 한 명만 선택할 수 있다는 이야기. 엄마에게 이보다 더 큰 고통과 시련이 있을까. “제발 둘 다 구해주세요. 제발…”

지진이 남긴 마음 속 상처, 인간에게는 강한 힘이 있다

엄마는 도저히 선택할 수 없다. 구조대는 유안리만 기다릴 수 없다. 구조대가 구해야 할 이들은 유안리의 아이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생존자들도 간절하게 구조대를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구조대원의 말을 듣고 유안리는 아들을 구해달라고 말한다. 아들을 구조된 후, 딸도 나중에 꺼내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엄마를 용서해다오...” 유안리는 딸의 주검을 안고 용서를 빌었다. 유안리는 아들을 등에 업고 피난민들을 따라 의료팀을 찾아간다. 지옥이 따로 있을까. 시체들이 널부러진 아비규환 속 사람들은 살기 위해 저마다 꿈틀거린다. 그때, 시체 더미 속에서 숨을 몰아쉬는 한 아이가 보인다. ‘팡등’이었다. 기적이었다. 팡등은 살아 있었다. 홀로 남아 엄마를 찾으며 떠돌던 팡등을 한 구조대원이 안고 간다. 유안리에게는 아무도 없다. 혼자 아들을 살려야 하는 유안리는 딸의 주검을 수습할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팡등은 고아원을 떠돌다 마음씨 좋은 군인 부부에게 입양된다. 그들은 팡등을 친딸처럼 성심성의껏 돌본다. 하지만 팡등은 충격으로 인해 말을 못 하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자신의 이름이 ‘등’이고 ‘탕산 출신’이라는 것만 기억한다.

그리고 10년 후. 17살이 된 팡다와 엄마 유안리는 바쁘게 살아간다. 팡다는 대지진 때 깔린 팔 하나를 절단해야 했다. 유안리는 아들의 의수를 챙긴다. 팡등은 자애로운 양부모 밑에서 학업을 수행하며 의대에 진학한다. 하지만 그 사이 양어머니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팡등은 남자친구 사이에서 아기를 가진다. 팡등은 낙태하길 바라는 남자친구에게 “난 시체가 가득 찬 트럭 위에서 살아났어. 네가 희생에 대해 뭘 알아?”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난다. 그리고 또 10년이 흐른다. 충격적인 대지진이 발생한 이후에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간다. 부모는 늙고 죽고, 아이들은 성장한다.

다시 10년 후 팡등은 2008년에 캐나다로 이주해 살고 있었다. 그러다 쓰촨성 지진을 뉴스로 보게 된다. 그는 중국으로 가서 구조대에 합류하기로 결심한다. 마침 구조대에 자원봉사하러 나온 친오빠 팡다를 만나게 되고, 타인에게 자신의 가족사를 말하는 것을 듣는다. 팡다는 자기 여동생 대신 자신이 살았다며 고통스러워한다. “어머니는 항상 말하셨죠. 잃어버리기 전에는 잃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절대 모른다고.” 아들의 말처럼 유안리는 자신이 딸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32년간 괴로워하며 살고 있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한 아이의 생명만 살릴 수 있다는 선택을 한 엄마의 마음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오빠의 간절한 부탁으로 집을 찾은 팡등. 엄마 유안리는 팡등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한다. 이런 엄마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전해졌을까. 이제 엄마가 된 팡등도 엄마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진의 공포 속에서 생겨나는 가족의 갈등은 인간의 내면에 남는 트라우마로 더 깊게 새겨진다.

영화 ‘대지진’ 포스터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영화 ‘대지진’ 포스터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영화는 천재지변 앞에서 어떻게 가족이 마음 속 상처를 치유하고,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한없이 미약하지만, 인간은 회복할 수 있는 강한 힘도 가지고 있다. 영화 ‘대지진’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용기와 서로를 지켜가는 사랑으로 비극을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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