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재난과 영화 속 환경·기후 위기] 비포 더 플러드(Before the Flood, 2016)
전 세계는 폭염, 폭우, 한파, 가뭄, 쓰나미 등 전례 없는 기후 위기에 봉착했다. 이러한 지구 환경 변화는 앞으로 모든 생물이 멸종되는 ‘제6의 대멸종’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환경과 기후 위기를 어떻게 다루었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를 제치고 다시 한번 미국 행정부의 수반이 됐다. 하지만 트럼프의 재임을 우려하는 시각은 많다. 특히 트럼프의 연임이 세계 과학자들의 이목을 끄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기후에 대한 독특한 신념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초임 당시 “기후 위기를 위기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파리기후협정에서도 빠지겠다는 엄포를 놨고, 실제로 파리협정에서 탈퇴했다.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다시 재가입했다. 올 초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2기 첫날 다시 행정명령을 통해 탈퇴를 선언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국제 사회는 기후 대응 후퇴를 우려하며 지구촌 기후 위기 대응에 비상사태라고 인식하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들이 지구의 환경을 지키려는 노력을 이어왔지만 지구 온난화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기후 변화로 야기되는 폭염, 한파, 지진 등의 자연 재난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이 보이콧하는 기후 문제, 지구는 앞으로 어떤 운명에 처할까. 배우이자 유엔(UN) 평화대사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전 세계를 여행하며 기후 위기의 실태를 탐사하는 다큐멘터리 ‘비포 더 플러드(Before the Flood, 2016)’는 트럼프 정부가 등 돌린 전 세계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파헤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새로운 최고치 기록
“인간은 부지불식간의 문명의 폐기물을 통해 세계의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는지 모릅니다. 석탄, 석유, 목재의 연소로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으로 배출되고 있습니다. 온실 효과가 감지되었고 이로 인해 기후가 변하고 있습니다.” 의미심장한 자막으로 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최근 들어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에 따른 지구촌의 환경 변화에 대해 언급한다.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이를 경고해 왔고, 그 경고가 현실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채택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2015년 파리에서 채택되어 2016년 발효된 파리기후협약 등의 국제협약이나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탄소 배출량을 ‘0(제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탄소중립’,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자발적인 국제캠페인 ‘RE100’ 등은 그 과정 속의 산물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국제사회 간의 공조를 통해 최근 10년간 화석연료로 인한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은 증가세를 보였으나, 토지 이용 변화로 인한 CO2 배출량은 평균적으로 감소하여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작년부터 화석연료와 토지 이용 모두에서 사상 최고 배출량을 기록했다. 작년 2024년은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해였으며, 2023년의 기록적인 폭염을 넘어 매달 섭씨 1.5도 이상의 온도 상승이 기록되었다. 이러한 심각한 상황은 기후 변화로 인한 불규칙한 엘니뇨 현상, 급증한 산불, 그리고 무분별한 산림 벌채로 인한 탄소 배출량 증가가 주된 원인이다.
전문가들은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언제든 새로운 최고치를 기록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자연재해에 대해 큰 우려를 표한다. 이러한 현실은 다큐멘터리 비포 더 플러드(Before the Flood)에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다큐멘터리의 진행자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북극의 녹는 빙하, 태평양에 잠기는 섬, 인도네시아의 파괴된 숲, 중국의 심각한 대기오염 현장, 그리고 미국 안에서 기후 문제로 갈등하는 지역을 직접 찾아다닌다. 그는 기후 변화가 더 이상 미래의 위협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일어나고 있는 재앙임을 강조한다.
얼마 남지 않은 인류의 ‘골든 타임’
영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어릴 적 영감을 받았다는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을 보며 시작한다. 그는 보스의 그림 중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의 세 번째 부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다. 세 폭의 제단화로 만들어진 이 쾌락의 동산 오른쪽에 위치한 그림의 제목은 비포 더 플러드(Before the Flood), ‘홍수 이전’이라는 뜻이다.
이 그림은 인류가 스스로를 파괴하기 전에 마지막 기회를 의미한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따르면 신은 대홍수를 일으켜 세상을 정화하려 했다. ‘대홍수’가 일어나기 전 인간 사회는 타락하고 방탕한 쾌락에 둘러싸였고, 심각한 폭력과 부패가 만연해있었다. 신은 노아를 불러 산 위에 거대한 방주를 짓게 하고 앞으로 일어날 대홍수에 대비하도록 했다.
사람들은 노아를 정신병자 취급하며 조롱했다. 영화 제목이자 그림의 제목인 ‘비포 더 플러드(Before the Flood), 홍수 이전’은 인류가 죄악에 빠져 타락한 말기를 상징한다. 어쩌면 아직은 대홍수를 맞이하기 전, 인류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을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그림을 통해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 재앙에서 인류가 마지막으로 노력할 시간이 지금이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영국의 엑시터 대학교 Global Systems Institute를 이끄는 피에르 프리들링슈타인(Pierre Friedlingstein)은 파리협정 목표를 달성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 모인 세계 각국 정상들은 화석연료 배출량을 신속히 대폭 감축하여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C 이하로 유지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구의 온도가 1.5°C 더 오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재의 온도는 과거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대보다 1.2°C 오른 상태다. 수백 년 전부터 서서히 올랐던 지구의 온도가 불과 6년 안에 비슷한 수준으로 오른다면 지구는 이제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그 선을 넘으면 점진적이 아니라 급격히 연쇄적으로 자연재해가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폭염, 산불, 가뭄, 홍수가 지금보다 훨씬 자주 발생하게 된다. 전 세계의 산호초는 해양 온도 상승으로 90% 이상 소멸되고 이로 인해 어류 생태계가 붕괴되어 어업 기반 산업도 생존의 기로에 놓인다. 극지방의 얼음이 빠르게 녹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방글라데시, 몰디브, 자카르타, 마이애미 같은 도시는 침수의 위협을 받는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기후 위기는 가상의 현실이며, 지어낸 이야기”라고 일축하고 있다. 심지어 디카프리오의 환경 보호 행동을 두고 “과학적 지식이 없는 할리우드 배우라서 그렇다”라며 조롱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디카프리오는 현 상황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현실을 어렸을 때는 잘 몰랐고 그저 무서운 공상과학 영화 속 이야기처럼 들렸다”라고 말한다. 이어 그는 “하지만 그 모든 건 사실이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기후 변화가 미래의 일이 아니라 우리 눈앞의 현실이며, 지금 바로 행동해야 한다는 긴급한 교훈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