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복지법, 시설 관리·운영 아닌 주거권 중심으로 재편해야
“주거는 복지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출발점”

‘극단적 주거취약계층인 노숙인 인권과 통합을 위한 입법·정책 과제’ 토론회에 주요 참석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위클리서울/하원휘 기자
‘극단적 주거취약계층인 노숙인 인권과 통합을 위한 입법·정책 과제’ 토론회에 주요 참석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위클리서울/하원휘 기자

[위클리서울=하원휘 기자] 노숙인 정책이 ‘하우징 퍼스트(Housing First, 주거 우선)’ 모델로 전환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안정적인 주거를 기반으로 한 지원 체계가 마련돼야 노숙인 등의 자립과 사회 복귀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11일 국회에서 이학영 국회부의장과 사회권 보장 불평등 완화 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극단적 주거취약계층인 노숙인 인권과 통합을 위한 입법·정책 과제’ 토론회가 개최됐다.

좌장을 맡은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응급구호나 시설 중심의 노숙인 정책에서 이제는 주거 안정성 마련으로 나아가야한다”며 “헌법이 보장한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권리가 현실이 되려면 주거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부처 간 협력 부재, 지방이양 뒤 공백 커져

임덕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노숙인 정책의 현황·과제를 주제로 첫 번째 발제를 맡았다. 그는 “노숙인 정책이 지방 이양 후 지자체 재량에 맡겨져 지역 간 격차가 커지고 있다”며 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 등 정부 부처 간 협력이 단절된 현 상황을 지적하고 “중앙정부 차원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또 “현재 정책용어 ‘노숙인 등’에는 거리·시설 노숙인과 일부 쪽방주민만 해당하고 ‘노숙인 복지법’은 18세 이상의 성인만 대상으로 해 아동, 노인, 장애인 등 주거취약계층 전반을 포함하지 못한다”며 “이러한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정책 영역 간 차별을 철폐하고, 노숙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 연구위원은 “2~3개월에 그치는 임시주거지원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안착을 전제로 한 ‘정착형 주거지원’으로 나아가야한다”며 변화를 촉구했다.

임덕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위클리서울/하원휘 기자
임덕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위클리서울/하원휘 기자

“주거는 자립의 보상이 아닌 전제”…주거 우선 모델 제안

이어진 발제에서 송아영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숙(露宿)은 단순한 거리 생활이 아니라, 보호받을 물리적 공간이 없는 ‘주거상실’을 뜻한다”며 ‘하우징 퍼스트’ 모델을 기반으로 한 정책 전환을 제안했다.

송 교수는 “해외에선 일반적으로 노숙을 주거 취약의 수준 또는 단계로서 주거 조건을 중심으로 홈리스 개념을 구성한다”면서도 “한국은 노숙 개념이 과거 ‘부랑인’ 관리에서 출발해 외환위기 당시 긴급구호 차원으로 제도화됐기 때문에 주거가 빠진 채 시설 중심 복지정책으로만 발전해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노숙인 법에는 시설 운영·관리 중심의 조항이 대부분”이라며 “이 같은 구조에서는 노숙을 구조적으로 예방하거나 회복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그는 대안으로 하우징 퍼스트 모델을 제시했다. “주거는 자립의 보상이 아니라 자립의 전제”라며 “노숙인의 주거권을 조건부로 두는 현행 법 체계를 바꿔, 주거를 우선 보장한 뒤 자립과 회복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 핀란드 등 하우징 퍼스트를 국가 전략으로 채택한 해외 사례를 이어 설명하며 예컨대, 핀란드의 경우 주거유지율이 94~98%에 달한다. 조건 없는 안정적 주거 제공이야말로 노숙 종식의 실질적 성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했다. ⓒ위클리서울/하원휘 기자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했다. ⓒ위클리서울/하원휘 기자

토론에선 현장혼란과 제도적 한계를 개선하기 위한 제언이 이어졌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지방이양 이후 예산과 사업 기준이 지역별로 달라 현장 혼란이 크다”며 “중앙정부 차원의 통합체계가 다시 마련돼야한다”고 말했다.

서정화 열린여성센터장은 “여성 노숙인은 폭력과 위기 노출이 심하지만 별도의 보호체계가 없다”며 “정신질환 비중이 높은 여성 노숙인의 특성을 고려해 정신보건 전문가 지원”을 제안했다. 동시에 주택과 사회복지서비스가 결합된 ‘지원주택’ 모델 확대를 제안했다.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는 노숙인 복지법 제4조 내 ‘노숙인 등은 스스로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성실히 노력해야 한다’를 두고 “노숙은 개인의 성실성 문제가 아니라 주거 부재로 인한 구조적 문제로 접근해야한다”고 지적했다. 또, 하우징 퍼스트 모델의 경제성을 강조하며 “주거취약위기 비율 감소에 초점을 둔 복지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주거권은 인간 존엄을 지탱하는 사회권의 출발점”이라며 “이번 논의가 노숙인 정책의 제도 전환 계기가 돼야한다”고 덧붙였다. 이학영 국회부의장은 “복지 사각지대의 가장 극단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이 바로 노숙인”이라며 “복지의 실질적 체감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오는 2026년 제3차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 종합계획(2026-2030)’ 수립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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