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XX일보답네

1면 머릿기사였다. 그래서 더 웃겼다. 아니 웃기지도 않았다. 떠억, 하니 朝鮮日報 제호 아래를 차지하고 있는 큼지막한 활자들. 큰 제목은 `남북공동행사 反美구호 속출` 이었고 부제목은 ``광복`보다 `북한`이 앞선 8·15`였다.

양순하기만 한 필자의 입에서 욕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에라이, XX일보 같은 XX들아!!"

입으로 나온 욕을 글로 담기가 망설여졌지만 작은 제목을 거쳐 본문 기사를 읽어 내려가면서 생각은 바뀌었다.
"남측 참가자들도 북한식 구호 외쳐" "법조계 일부 `묵과못할 실정법 위반`". 놀랄 일이 아니었다. 새삼스런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자꾸만 입에선 똑같은 욕이 뇌까려졌다.

`자주평화 통일을 위한 8·15민족대축전`에 참가한 북측 대표단이 현충원을 참배한데 이어 국회를 방문하고, 김대중 전대통령을 병문안한 자리에서 방북을 요청하고, 경주에 들러 불국사와 석굴암을 둘러본 다음날인 17일자 조선일보의 1면 머릿기사. 조선일보가 했기에 놀랄 일이 아니었지만, 조선일보였기에 새삼스런 일이 아니었지만, 그런데 자꾸만 입에선 욕이 뇌까려졌다.

1면 머릿기사가 끝이 아니었다. 그 하단의 `八面鋒`(北측 인사 `주한미군 철거!` 구호 띠 흔들며, "통일 방해하는 것은 미군" 高聲. 이거 대한민국 서울 맞아?)도, 3면 톱기사("미군철수·외세배격" 北구호에 박수친 南)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다른 신문들이 1면 톱으로 다뤘던 북 대표단의 청와대 예방이라든가 김정일 위원장의 김 전대통령 방북 초청은 간신히 2단 기사로 머릿기사에 눌려 있었고, `겨레말 편찬위 통일국어사전 함께 만들기로` 라든가 `남북 기자 교류 내달 실무회의` 기사는 3면 머릿기사의 엄청난 무게에 짓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일보는 `통일` 대신 `국가보안법`을 꺼내 들기까지 했다. 대한변협 하창우 공보이사의 말을 곁들여 "국가보안법이 무용지물이 됐다. 남북 화해도 좋지만 현행법 위반을 묵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고, 이경재 변호사의 "일련의 발언들은 명백하게 실정법 위반이며 통일이면 모든 걸 다 용인할 수 있다는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4면에서 북측 대표단의 동정을 톱기사로 소개한 것은 그나마 언론으로서의 마지막 체면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을까.
물론 남북 평화 화해 자리서 反美구호가 나온 것을 기사화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긴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본말이 무엇인지를…. 무엇이 `본`이고 무엇이 `말`인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그 본말을 완전히 뒤집어버렸다.

왜 그들은 시쳇말로 잘되어가는 밥에 재를 뿌리는 걸까. 이 부분, 설사 그 대상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조선일보라 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욕이 나오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사주도, 조선일보의 식구들도, 분명 한민족일터인데…. 우리에게 있어 가장 큰 불행이 무엇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느껴온 민족들일 터인데….

한편으론 존경스럽기도 하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들이…. 그래서 다시 결론을 내린다. 역시 XX일보다. 정서룡 기자 sljung99@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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