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연재> 고홍석 교수의 산내마을 '쉼터찾기'


`Weekly서울`이 연재하고 있는 `쉼표 찾기`는 오랜 학교생활과 사회활동 후 안식년을 갖은 전북대 농공학과 고홍석 교수가 전북 진안군 성수면 산내마을에 들어가 살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고 교수는 지난해 3월 전북 전주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이 한적한 산내마을로 부인과 함께 이사를 갔다. 고 교수의 블로그에도 게재된 이 글들은 각박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아주 좋은 `쉼표` 찾기가 될 것이다. 고 교수는 `Weekly서울`의 연재 요청에 처음엔 "이런 글을 무슨…"이라고 거절하다가 결국은 허락했다. `쉼표찾기`를 위해 산내마을에 들어간 고 교수는 지금도 시끄러운 정세와 지역현안들로 바쁜 사회참여활동을 하고 있다. <쉼표 찾기>를 통해 산내마을에서의 생활과 사회를 보는 시각을 적절히 섞어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Weekly서울`은 고 교수가 부인과 함께 산내마을로 이사를 가기 직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쓴 모든 글과 사진들을 거르지 않고 연재하고 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마이산 산행, 나무심기 그리고 집들이 (4/11)
 

아침에 컴퓨터를 켜고 블로그에 글을 쓰려는데 접속이 되지 않는다. 시골에 오니 전화선을 이용한 ADSL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속도가 떨어진다. 특히 처음 인터넷 접속을 할 때는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FTP로 영화을 받는 것은 포기하고 말았다. 전화를 걸어 AS를 신청하고 건산(건지산악회, 이름은 거창하지만 회원 고작 6명) 회원과 만나기로 한 마이산 남부주차장으로 향했다. 아내에게는 AS하는 사람이 오면 고장 원인을 잘 얘기하고 반드시 오후까지는 인터넷이 개통될 수 있도록 하라는 다짐을 하고 나왔다. 시골생활에서 오로지 밖으로의 소통, 그리고 쉼표가 마침표가 되지 않기 위한 통로가 바로 인터넷이기 때문이다. 산행 도중에도 조바심이 나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핀잔을 받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터넷에 메어 살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토요일은 블로그를 하루 쉬게 되었다. 하기사 쉴 때로 있어야지, 내 아이디가 쉼표가 아닌가.

마이산은 수성암으로 이루어진 673m의 암마이봉과 667m의 숫마이봉으로 형성되어 있고, 조선시대부터 마이봉이라고 불리어 왔다. 그리고 남한에서는 가장 늦게 벚꽃이 핀다. 이제사 벚꽃 축제를 준비한다고 부산떨고 있다. 벚꽃은 며칠 더 있어야 만개할 듯하다. 이제 곧 옥수수 뻥튀기를 하듯 `뻥`하면 꽃망울들이 화들짝 놀래면서 가지에서 꽃들이 뻗어나올 것 같다. 주차장에서부터 탑사가는 길목에는 벚꽃 축제 준비를 하느라고 부산떨며 천막을 치고, 풍악을 울리면서 떠들썩하다. 잔치를 준비하고 손님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건산 회원들은 역시 산꾼답게 벚꽃 구경보다는 산이 우선이다. 그러하니 속세인 시장바닥같은 축제 마당을 어서 벗어나서 어서 산에 오르려 걸음을 재촉한다. 오늘따라 유 교수(블로그 <서로서로>님) 부인인 아줌마 한 분이 동행하였다. 건산 회원 중에 여교수 한분이 계시는데 사정이 있어 참석 못하였는데 대리 출석을 한 셈이 되었다. 아무튼 동성만으로 산을 오르는 것보다는 이성이 있으면 아무래도 활기가 있다. 땀으로 등이 축축해질 정도로 마이산 종주 능선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한다. 하여 탑사와 은수사를 거쳐 암마이봉을 돌아서 봉두봉 근처에서 점심을 먹었다.

산에는 진달래가 한창이다. 암울했던 60년대, 글 속에 진달래라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검열에서 삭제되었다. 대학 다닐 때 대학신문에 `진달래가 핏빛으로 피어있다`는 귀절을 가지고 `진달래`도 문제인데, 게다가 `핏빛`은 더욱 반공법 위반 수준이라며 삭제 내지는 수정을 요구받은 바 있다. 끝까지 버텨 결국 `진달래가 붉게 피어있다`로 고치는 수준에서 마무리되었지만 그 글 때문에 학생과 직원(당시 안기부 파견)으로부터 불림을 받고 해명을 해야하는 수모를 당한 적이 기억난다. 진달래가 북한의 국화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중국(그 당시에는 중공이라고 했다)의 국화인 해바라기를 그린 화가를 반공법 위반으로 감옥에 끌고 갈 정도였다. 

산행을 마치고 시골 우리 집에서 집들이를 가졌다. 과일 상자, 나무(회양목 10여 그루, 동백 2 그루, 산수유, 소나무, 전나무, 철쭉 3 그루, 수선화), 게다가 상당한 액수의 봉투(무엇이 필요할 지 몰라서 준비했다며)까지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농원을 가지고 있는 이 교수가 가지고 온 나무들을 건산 회원들이 힘을 합쳐(오죽 내가 일을 못할 것 같으면 그랬을까) 심고, 화단과 뒤안에 나있는 식물들에 대해서 꽃과 잡초를 구분하여 주고..... 그동안 풀이려니 생각했던 것이 백합이고 허브이고 땅드릅이고, 꽃이려니 했던 것이 쓰잘데기 없는 풀이라는 것이다. 이제 갓 시골생활을 시작한 초짜, 당연히 기죽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러 사람이 모이니 좋은 의견이 속출한다. 화단 오른쪽에 모정을 세우는 것이 어떻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파라솔이라도 놓아야만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을텐데, 파라솔을 구입하는 것도 마땅찮게 생각하고 있던 터이다. 그래 원두막과 같은 것을 세워야겠다. 

아내가 온 힘을 다들여 채린 저녁 식사(우럭매운탕, 생합탕, 쭈구미회, 머위.취나물, 삶은 진안 흑돼지, 배추.열무.파.미나리 김치, 깻잎 조림 등등)으로 안주와 반찬 삼아 막걸리와 밥을 배부르게 먹고, 다들 마당으로 나와 통나무 의자에 앉으니 하늘에 별이 초롱거린다. 별을 이렇게 가까이 본 적이 있냐고 침튀기면서 얘기하는 나와는 달리 다들 별로 감동을 받은 것 같지 않다. 혼자 신바람을 낸 것 같아 머쓱해서 슬쩍 화제를 돌렸더니, 아니라 다를까 총선에서의 진보진영의 대응에 대한 토론이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머쓱했던 나도 다시 신바람을 내고.

밤이 이슥해서야 다들 일어선다. 대문을 열어주고 도시로 향하는 두 대의 자동차와 그 안의 동지들을 배웅하고 돌아서자 울컥 외로움이 밀려온다. 이 외로움을 아내가 보듬어 줄 것 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마이산, 여기서는 암마이봉이 숫마이봉보다 훨씬 우람하다.


건산 회원들, 오늘따라 아줌마 동행으로 활기 백배.....


한창 피어나고 있는 진달래, 진달래를 글에 쓰지 못했던 암울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 교수가 자기 농원에서 가지고 온 나무들.....

 


집들이에 왔다가 졸지에 나무심기 사역에 동원된 건산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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