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평화네트워크 대표 정욱식

미국 의회가 북한인권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작년 5월 초, 필자는 미국 의회를 방문해 이 법안 제정에 직접 관여한 미국 측 인사들과 격론을 벌인 바 있다. “왜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는 북한 인권에 침묵하느냐”는 미국인들의 항의에 필자는 “때론 요란한 말보다 조용한 실천이 더 중요하다”며,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미국의 의도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고 받아쳤다. “그럼 미국은 북한 인권을 거론할 자격이 없느냐”는 한 전문위원의 반문에 대해 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상대방의 집안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다. 하물며 50년 넘게 적대관계에 있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는 오죽하겠는가? 그렇다고 북한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미국이 인권문제를 빌미로 대북강경책을 정당화하지 말고,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관계정상화를 추진하면서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많은 한국 사람들은 미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할 것이다.”


이 말에 대해 그 인사는 “어떻게 김정일 독재정권과 관계 개선하라는 말이냐”며 얼굴을 붉혔고, 필자는 “북한인권법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냐”며 되물었다. 이내 필자와 미 의회 인사들과의 면담은 뿌리깊은 인식의 차이를 드러내며 끝나고 말았다.

필자가 미 의회 인사들과의 대화 일부를 소개한 이유는, 북한 인권문제가 두 가지 심각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나는 북한의 인권 상황이 대단히 열악하다는 ‘객관적인 현실’이고, 다른 하나는 국내외 보수파들이 대북강경책을 정당화하고 더 나아가 북한 체제의 붕괴를 유도하기 위해 북한 인권문제를 활용하고 있다는 ‘정치적 현실’이다.

이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굴절된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 대체로 진보진영은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미국 등 국제사회의 ‘불순한’ 의도를 부각시키는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에 보수진영은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남북한 정부를 싸잡아 비난하는 소재로 삼으면서, 정작 미국의 비인권적인 대북강경책에 대해서는 일절 거론하지 않거나, 오히려 이를 정당화하려 한다.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어떻게 하면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정책적 토론의 설자리는 좁아지면서 보혁 갈등의 소재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유엔 총회의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을 둘러싼 논란은 이러한 현실을 거듭 확인시켜 주었다.


기실 북한 인권은 대단히 풀기 어려운 고차원 방정식과도 같은 문제이다. ‘인권의 보편성’과 ‘한반도의 특수성’이 충돌하는 속성을 갖고 있고, 북한 정권은 비판의 대상이자 인권 개선을 추진할 수 있는 주체라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또한 외부의 비난과 압력은 “제도 전복을 노리는 것”이라는 북한의 인식을 강화시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하는 속성을 갖고 있지만, 북한 정부가 인권 개선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동기로도 작용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국가보안법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등 남한 내 인권문제에 대해 ‘한국의 특수성’을 강조해온 보수진영이 유독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인권의 보편성’을 운운하는 것에 대해 의아해한다. 또한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국가안보와 경제개발 논리를 앞세워 인권을 탄압한 것에 맞서 싸웠던 진보진영이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북한 인권문제가 대단히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고차방정식을 1차 방정식으로 보는 한, 아무리 기를 써도 그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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