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지역 조그마한 인터넷신문, 시장과 식사 자리도 각자 각출해 해결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 사건의 본질에 숨어있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세간의 관심은 성추행 행위 자체에만 몰려 있지만, 기자들과 국회의원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만취할 상태까지 술을 마시며 `친분`을 쌓아야 했는가의 문제가 더 심각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3대 중앙지로 손꼽히는 동아일보가 제1야당인 한나라당과의 `친분 쌓기`가 올바른 언론보도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시되는 부분이다.



지난해 12월 초 정읍시의 `조그마한` 인터넷 언론인 `정읍통문`과 정읍시장이 저녁 식사자리를 한 적이 있었다. 오후 6시에 시작된 저녁 식사 자리에, 정읍통문에서는 대표를 비롯한 편집위원 6명이 참석했고 정읍시청에서는 유성엽 시장과 기획감사실장, 홍보실장이 함께 했다. 규모야 비교할 수 없지만 동아일보와 한나라당간의 만남을 연상시킬 수 있는 만남이다. 그러나 내용 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이 자리는 간담회를 겸한 저녁식사 자리로 소주를 반주 삼아 9시에 끝났다. 그야말로 인터뷰를 위한 시간 안에 모임이 끝난 것이다. 식사비도 참가인원이 1만원씩 각출해 문제의 소지를 없앴다. 유 시장이 "선거법 때문에 고민이었는데 잘 됐다"고 말한 것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모임과 극명하게 비교되는 동아일보와 한나라당의 식사비와 술값은 한나라당이 지불한 것으로 알려져 문제가 되고 있다. 성추행이 일어난 10시 이후까지 술자리는 끝날 기미 없이 노래방으로 이어졌다는 사실과 성추행이 일어날 정도로 참석자들이 만취상태에 빠졌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언론과의 만남을 주최하고 `접대비` 지출마저 부담한 한나라당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한나라당의 이계진 대변인은 이 날 술자리에 대해 "솔직히 말해서 출입기자들에게 당의 여러 어려움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느냐"고 말한 바 있다. 출입 기자들이 당의 어려움을 일일이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오히려 되묻고 싶은 마음이다.

동아일보 기자들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신문윤리강령` 제3조[언론의 독립]는 `우리 언론인은 언론이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 외부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자주성을 갖고 있음을 천명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굳이 윤리강령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기자가 권력집단과 일정수준 이상의 끈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 수준이다. 취재대상이 되는 공인(정치인)과 기자는 이해관계에 얽혀 있기 때문에 사적인 만남은 자제하는 것이 좋고, 굳이 만나더라도 사무실이나 공동 기자회견실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 만나야 한다는 것이 보통의 견해이기 때문이다. 이 상식 수준의 기준은 동아일보 기자들이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 믿는다. 

한나라당과 동아일보 측은 이 자리가 간담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리를 과연 간담회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구카톨릭대 언론광고학부의 최경진 교수는 "간담회라면 단일 매체가 아니라 복수의 매체 기자들과 자리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라며 그 자리는 간담회가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 교수의 주장 외에도 `간담회라면 그 결과물이 보도됐어야 하는 게 옳지 않느냐`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그 자리와 관련해서 성추행 사실만을 부각할 뿐 간담회 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다.

한편, 두 집단 간의 만남 자체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언론계가 보여주고 있는 태도는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성추행 사실에만 모든  맞추고 있는 것도 모자라, 일부 언론의 문제제기마저 무마시키려 애쓰는 모습이 보이는 까닭이다. 정일용 한국기자협회장은 그 모임의 성격을 모른다는 전제 하에  "기자와 정치인간의 술자리는 있을 수 있다"며 "술자리 자체가 전면에 부각돼야 할 것은 아니다. 그런 자리를 통해 취재를 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술자리 자체를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모임의 성격을 알 수 없다 해도, 국회의원이 여기자의 가슴을 만질 정도로 만취할 분위기였다면 상식적으로 언론과 정치계의 정상적인 만남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언론계의 수장이 언론이 권력집단과 가까이 해서는 본연의 임무를 완수할 수 없다는 일반의 상식마저 외면한 것이다. 혹시나 언론계에 정치인과의 사적 만남을 당연시하는 풍조가 만연되어 있던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마저 조심스레 든다.

소주 한잔 값마저 각출을 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 쉬운 것이 권언관계다. 두 집단이 밤 늦게까지 술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걱정 없이 바라볼 국민은 없다. "정치인과 언론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에서 느끼게 된다"는 방송인 손석희씨의 쓴소리를 전 언론계와 정치계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형석 기자 lorrely8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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