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은 기자의 서울인근산 샅샅이 훑기-삼천사→부왕동암문→청수동암문→대동문

버스를 잘못 탔다. 대충 그 언저리까지 가겠거니 하고 탔는데 한참 멀리서 세워준다. 기자의 일터가 있는 숭인동 앞에서 기자촌 가는 버스, 720번이다. 일을 마친 토요일 오후 이번엔 색다른 코스를 독자님들에게 안내해보겠다는 불타는(?) 의지 하나로 떠난 산행. 사실 기자는 버스나 지하철을 자주 갈아타는 걸 상당히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대충 근처까지 가는 버스에 오른 것이었다. 날씨는 화창. 버스 안도 한적. 좌석에 앉아 있자니 졸음이 쏟아지는 나른한 토요일의 오후. 버스는 광화문과 서대문을 지나 독립문, 홍제동을 거쳐 불광동에서 연신내로 내달린다. 연신내역에서 사잇길로 빠진다. 기자촌 가는 방향. 중간에 내릴까 하는 몇 번의 갈등 끝에 그냥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불광역-연신내역 쪽은 어느 곳에서 내려도 전부 북한산에 오를 수 있다. 연신내 역을 지나니 버스 안에 겨우 서너명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등산차림을 한 부자(父子)가 보인다. 아들은 이제 예닐곱살이나 됐을까. 어느 덧 버스종점. 기자촌이다. 내리고 보니 낭패다. 오늘의 목적지인 삼천사계곡 진입로까지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한다. 부자(父子)는 기자촌 등산로쪽으로 향한다. 잠깐의 또 갈등. 이내 발길을 옮긴다. 이왕 마음 먹은 거…그리고 기자촌 코스는 이미 몇차례 독자님들에게 소개해 드린 적도 있다. 이 한 몸 희생하더라도^^….

걷는 길 좌우엔 뉴타운 개발로 몸살을 앓는 현장이 이어진다. 이전에도 이곳을 지나본 적이 있는데 그땐 참 한적하고 좋았었는데…. 세상사 새옹지마다. 이 광경을 고스란히 내려다보고 있을 삼천사 마애여래입상은 어떤 생각일까. 마애여래입상은 초기 고려시대부터 이곳을 지켜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사현장을 걷는 일만큼 불쾌한 것은 없다. 끊임없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트럭들.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가려도 소용없다.

도대체 인간들은 왜 개발에만 눈이 멀어, 이 소중한 자연들을 이토록 처참하게 파헤치는 것일까. 결국 그들도 죽어선 저 그윽한 자연 속의 한 줌 흙으로 화하게 될 터인데…새삼 인간의 무지몽매함에 혀가 내둘러지는 순간이다.

30여분을 걸으니 삼천사 올라가는 표지판이 나온다. 북한산 서부지역에 해당하는 이곳은 지난 68년 무장공비 사태로 28년 동안 폐쇄되었다가 96년에야 일반에 다시 개방되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한때는 호젓한 산행을 즐기려는 등산객들이 많이 찾았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 뿐, 지금은 숱한 발길들에 이리채이고 저리채이면서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인간의 발길이 지나는 곳이란 항상 이렇듯 흔적이 남고 또 폐해가 생기기 마련이리라.

등산로 입구의 조그마한 계곡의 흐르는 물소리가 그나마 위안을 준다. 삼천사 매표소를 지나면 몇 가구의 식당과 슈퍼마켓이 있다. 물이 없는 사람들이면 여기에서 필히 구입할 것. 공용주차장 우측으로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매표소에서 5분 남짓 군부대 훈련장이 나온다. 계속 걷는다.

이전에도 몇차례 이 코스를 통해 비봉을 올라보기도 했고 의상봉을 올라보기도 했다. 오늘의 예정 산행코스는 삼천사를 거쳐, 부왕동암문, 청수동암문, 대남문, 대성문, 대동문 그리고 4.19탑이다.

계속 오른다. 계곡이 이어진다. 어느 순간 시야를 가로막고 나서는 웅장한 규모의 사찰. 이곳이 바로 삼천사다. 잠깐 소개해볼까.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 1) 원효 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481년(조선 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따르면 3,000여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했으나 도중에 소실되었다.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자리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라 이름하여 중창했으나 6·25전쟁 때 다시 불에 타 소실되었고 1960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1970년대 경내에 위치한 천년 고불(古佛) 마애여래입상이 발굴되어 보물로 지정 받고 이후 대웅보전, 산령각, 천태각, 연수원, 요사채 등의 건물과 세존진신사리탑, 지장보살입상, 5층 나한사리탑, 관음상, 5층 석탑, 중창비 등을 조성해 현재의 문화재 전통사찰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는게 사찰측의 설명이다.

대웅전 위쪽에 위치한 보물 제657호인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양각과 음각의 기법으로 조각한 독특한 작품으로 고려시대의 대표적 불상이며 예로부터 영험 있는 부처님으로 알려져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곳 삼천사 앞마당에서 우측 능선으로 붙는 코스도 있다. 삼천사를 좌로 끼고 돌면 조그만 쪽문을 지나 다리가 나오고 바로 계곡으로 이어진다. 바로 얼마 안가 넓은 바위와 조그마한 폭포가 펼쳐진다. 넓은 바위는 마당바위라고 부른다. 마당바위에 배낭을 풀어놓고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는 하산객들이 보인다. 부럽다.

매표소에서 약 40여분 갈래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가면 비봉(1.8km), 왼쪽길로 가면 부왕동암문(1.1km/문수봉 2.1km) 방향이다. 왼편으론 증취봉의 뒷모습이 우람하게 다가온다. 오른편은 나한봉이다.

10여분 오르다 보면 암릉이 앞을 가로막아선다. 상당히 재미있는 코스다. 암릉 사이로 홈이 나 있다.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그렇게 20여분을 더 오르니 커다란 화강암 문이 앞을 가로막아 선다. 바로 부왕동암문이다. 왼쪽으론 의상봉 방향, 직진하면 부왕사지, 우회전하면 나월봉-나한봉을 거쳐 청수동암문에 이르는 길이다. 의상봉 방향이나 부왕사지 길로 빠지면 북한산성 매표소에 이를 수 있다. 의상봉 방향은 다소 위험하니 초보자들은 가급적 부왕사지 쪽을 선택할 것. 기자는 우회전.



바로 나월봉의 결코 작지 않은 암봉이 길을 가로막는다. 급경사 길이다. 정상 못 미쳐에서 우회하는 길도 있지만 그냥 직진한다. 정상엔 기이한 바위들이 많다. 바위 틈새에 이름 모를 조그마한 꽃들이 처연하게도 피어 있다.



나월봉을 지나 20여분 또 하나의 봉우리가 행려를 맞는다. 나한봉이다. 정상에 오르니 서쪽으론 문수봉과 비봉 능선이 펼쳐지고 북쪽으론 백운대, 만경대 등 주봉들이 멋진 자태로 펼쳐져 있다. 가슴이 확 트인다. 가방에서 물을 꺼내어 몇모금을 들이킨다. 의상봉 쪽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꺼낸다. 삼천사 매표소에서 1시간 40분 소요.



다시 길을 나선다. 20여분 걸으니 청수동암문이다. 비봉쪽에서 오다보면 등산객들 발길 폭폭하게 만드는 깔딱고개가 있는 지점이다. 직진한다. 오른쪽으론 문수봉. 5분 여 산책로 같은 계단 길을 오르락 내리락 걷다보면 나오는 게 바로 대남문이다. 오후 5시가 가까워 오는 시간인데도 등산객들이 많다. 대부분 단체로 온 사람들이다. 반바지 차림의 등산객들이 많은 걸로 보아 여름은 여름인가 보다. 다음 코스는 많이 소개해 드렸다. 간단히 요약 정리.

산성을 따라 계속 걷는다. 10분 뒤 만나는 게 대성문. 대성문에서 다시 10분뒤 보국문과 만난다. 10분을 더 가면 대동문. 매표소에서 총 걸린 시간 2시간 40분. 진달래능선을 거쳐 4.19탑까지 3시간 30분 잡으면 된다. 오늘의 코스는 나월봉과 나한봉 쪽을 제외하곤 평이하다. 가족들과 함께 올라도 될 듯…. 정명은 기자 jungm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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