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금??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반발 확산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한 제2차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신고 접수가 지난달 30일 종료됐지만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사망한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1인당 20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키로 하면서 격랑이 예고되고 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지난달 30일 우리당 문병호 제1정조위원장, 이용섭 행정자치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일제강점하 국외강제동원희생자 지원법안`을 연내 처리키로 합의했다.

법안은 강제동원 사망자와 행방불명자, 부상자를 비롯해 생존피해자 및 유족들에게 1인당 2000만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징용기간에 받지 못한 임금 등 미수금에 대해서는 입증자료가 있는 피해자부터 구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징용 생존자에게는 사망시까지 연 50만원 한도로 의료비를 지급하고 생환 이후 사망한 자의 유족에게는 연 14만원의 학자금을 지원한다.

문병호 제1정조위원장은 브리핑을 통해 "일제 강제 징용에 따른 사망자, 행방불명자, 부상자는 2만명으로 추정되며 지원대상 유족에는 피해자의 배우자, 직계 존·비속, 형제자매가 포함된다"고 밝혔다.

문 위원장은 또 "국가보상과는 별도로 민간차원의 위령.기념사업, 피해자에 대한 위로사업을 하기 위해 별도의 재단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며 "민간재단 설립문제는 차후에 좀더 논의를 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 피해자와 유족들의 반발이 거세다.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들은 "조상들의 피 값을 횡령해 온 국가가 이제 와서 보상도 아니고 위로금조로 생색내기를 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16살 때 일본 탄광으로 강제징용돼 임금 한푼을 받지 못하고 귀환한 최춘식(여수)씨는 "당시 국제 금값이 1엔 정도였지만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4만엔에 해당한다"며 "청구권 자금을 대신 받은 정부가 나머지는 챙기겠다는 것이냐"며 성난 모습을 보였다.
올해 71세인 한 유족은 "부모 잃고 고아처럼 살아온 우리들에게 돈 2000만원이 말이 되느냐"며 "선친들의 목숨 값을 받아 포항제철도 세우고 고속도로도 놓은 것 아니냐"며 강력 비난했다.

한편 일제 강제동원 피해신고를 지난해부터 지난달 말까지 두 차례에 걸쳐 접수한 결과, 피해신고가 22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일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1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7개월간 2차 피해신고 기간에 접수한 1만150명과 지난해 2월1일부터 지난해 6월말까지 1차 신고기간에 접수한 20만9474명을 합쳐 21만9624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신고 유형별로는 남자가 21만7901명, 여자가 1723명이었다. 이 가운데 사망이 15만9654명으로 가장 많았고 생존자는 5만2387명이었다. 또 행방불명된 사람도 6072명이나 됐다. 나머지 1511명은 사망이나 생존 여부를 기록하지 않아 분류에 포함되지 않았다.
강제동원된 지역은 필리핀 등 국외가 19만1911명이었고 국내는 2만4502명이었다. 동원된 형태는 노무자가 15만3622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군인 3만6831명, 군속 2만6246명, 군위안부 359명 등으로 나타났다.

시.도별로는 전남이 3만2129명으로 피해신고가 가장 많이 접수됐고 이어 경북 2만3457명, 전북 2만2968명 순이었다.
진상규명위는 이 같은 신고접수를 토대로 그동안 군위안부 피해 결정 12건을 포함해 지난달 30일 현재까지 1만7057건에 대해 피해판정 결정을 내렸다.
피해판정 내용을 보면 사망 4436명, 후유장애 147명, 행불 78명 등이었고 피해인정의 경우 사망 7111명, 생존 5173명 등이었다.

이와 함께 진상규명위는 1차 37건, 2차 14건 등 51건의 진상규명 신청을 접수해 `BC급 전범조사`와 `야스쿠니신사 합사사건`,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등 34건에 대해 현재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피해신고는 22만여 건이나 피해가 인정된 것은 10%도 안되는 1만7000여 건에 불과한 것은 당시 자료가 없어 사실규명에 애를 먹고 있고 일본의 무성의 함 때문이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한 관계자는 "대부분 당시 상황을 증명할 사진이나 서신 등의 자료가 없어 사실규명에 애를 먹고 있다"고 말한다. 위원회에 따르면 22만여 건의 접수건수 중 80% 정도가 연고자의 증언에 의한 인후보증에 의해 접수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미 60여 년의 세월이 흘러 피해자 중 상당수는 사망한데다, 이를 대신 할 유족이나 친인척의 경우라도 당시 상황을 증명할 유품 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인후보증을 했더라도 당시 상황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이래저래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국가기록원 등 정부가 확보하고 있는 명단은 대략 40만명에 이르지만, 이중 상당수는 군인, 군속 등이어서 강제동원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노무자 등의 진실규명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소극적 태도도 한 요인이다. 일본은 당시 5인 이상 사업장은 후생연금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했기 때문에, 위원회는 일본과의 몇 차례의 협상을 통해 이 명부를 넘길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전산처리가 안돼 있다는 핑계로 자료협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9월경부터 본격적인 판정작업에 들어간 위원회는 우선 생존자들, 특히 관련 기록들이 남아있는 피해자들을 우선으로 판정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대부분 70~80대 고령이어서 이들도 언제 사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답답한 것은 피해자들이다. 전남 보성에서 올라온 정천식씨는 지난 28일 피해자 간담회에서 "군인, 군속은 명단이라도 나오지만, 70%가 넘는 노무자들은 기업체에서 먼저 잡아다 쓴 사람이 임자였다"며 "나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증명해야 하느냐"고 정부를 원망했다.

한 피해자는 "특별법 만드느라 1년 6개월 보내고, 접수하느라 1년 보냈는데, 언제 조사해 알려주겠다는 것이냐"며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는데, 보상은 차치하고라도 피해자 인정은 해 줘야 마음 놓을 것 아니냐"고 불만을 터트렸다.
학계에서는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규모가 국내외를 망라해 대략 800~850만명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1960년 한일협상 당시 자료를 토대로 정부는 이중 국외 강제동원 된 숫자가 103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규모에 비하자면 접수건수는 의외로 저조한 편이다. 강성일 기자 steel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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