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실태-막 나가는 공기업 정부도 견제 못하는 '철옹성'

참여정부의 공기업 혁신 방침에도 불구하고 정부 투자기관의 방만한 경영실태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투자기관들은 직원에 대한 특혜대출, 선심성 해외출장, 직원 자녀 우대 입사 등의 혜택을 주는가 하면 정부의 지침을 위반하면서까지 직원들의 임금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직원들의 금품수수를 비롯한 부정행위도 적발됐으며, 접대비를 과도하게 지출한 정부 투자기관들도 적지 않았다.
지난 5일에는 주택공사 한행수 사장이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뒤 이를 수용하는 형식을 밟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간 안팎에서 제기된 한 사장의 부적절한 처신 등을 문제삼은 경질성 인사인 것으로 알려 졌다.
이와 함께 대규모 공공기관에서 임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한 뒤 자신이 근무하던 곳의 자회사와 계열회사에 재취업한 사람들도 많아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렇게 정부 투자기관들이 매년 정부의 지침이나 감사원의 지적마저 무시하며 방만한 경영행태를 보이고 있으나 이를 견제할 수단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 시세차익 특혜에 석유 빼돌리기까지

기획예산처는 지난 12월11일 대학교수 공인회계사 각계 전문가 등 49명으로 구성된 정부투자기관 경영평가단이 제출한 14개 정부 투자기관에 2005년도 경영실적 평가보고서`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농수산물유통공사는 1인당 주택자금 및 학자금 대여금이 정부투자기관 중에서 가장 높았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대출금 이자율이 너무 낮아 국민주택기금 수준으로 조정하라는 정부의 예산편성 지침도 어겼다.
수자원공사는 노조위원장이 인사청탁 등의 명목으로 직원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사실이 적발됐다. 또 직원 자녀에 대한 입사우대, 과도한 해외연수, 휴대전화 요금 지원 등도 지적받았다.
관광공사는 인건비 인상률이 3.28%에 달해 정부 지침인 2.0%보다 높았다. 철도공사는 노조 전임자가 64명으로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크게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석유공사는 임원이 공사수주 대가로 하청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가 적발됐고, 비축석유 감시원이 석유를 빼돌리는 비리도 들통났다.
한국전력은 2015년까지 기업가치를 50조원 규모로 키우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못해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평가단은 또 한국전력이 심야전력 수요를 무조건으로 억제하는 극단적인 정책을 사용해 산업경제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기업의 비리는 지난해 11월16일 감사원이 국회예산결산특별위원회 이낙연(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감사보고서에 드러났다.
감사원이 주택공사 토지공사 수자원공사를 감사한 결과 토지공사는 경기도 파주시 통일동산개발촉진지구의 `휴식시설` 용지를 판매하면서 콘도 건축을 허용, H건설에 219억원의 시세 차익 특혜를 줬다.
또 토지공사는 정부가 고객 만족도를 공기업 평가 항목으로 삼자 5년 동안 택지 판매비 171억4700만원을 전용, 이미지 광고에 쏟아 부은 것으로 지적됐다.
수자원공사의 경우 2003년부터 2년간 시내 교통비(110억1300만원), 시간외 근무수당(279억2300만원), 통신비(38억3700만원), 포상비(48억1700만원) 등 475억9000만원을 직원들에게 월정액으로 지급했다.
감사원은 또 주택공사 감사 결과 26개 아파트 단지 181종의 마감 자재(590억원)에 대해 시공업체가 저가 자재를 사용했는데도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5일에는 주택공사 한행수 사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삼성중공업 건설부문 대표이사 출신인 한 사장은 열린우리당 재정위원장을 지내다 2004년 11월초 임기 3년의 주공 사장직에 임명돼 10개월의 임기를 남겨 놓은 상태인 한 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3년 선배이다.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 겸 대변인은 한 사장의 사의 배경과 관련, "일부 부적절한 처신과 업무에 관한 충실성 성실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밝혀 사실상 `문책성 경질`이란 점을 숨기지 않았다
한 사장은 대주주로서 운영하던 주택건설업체인 삼성홈 E&C의 지분을 2004년 11월 주공 사장에 임명된 뒤에도 보유하다 지난해 모두 처분한 것으로 관보에 게재했으나, 실제로는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재직 때 부하직원이던 이 회사 현직 고위간부 앞으로 형식적인 명의이전만 해둔 사실이 최근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의 감찰과정에서 적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주공의 홈네트워크 사업과 관련, 친인척과 관련된 업체에 일을 맡기도록 청탁했다는 비리도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회사 재취업에 감사는 정치인 출신

이와 함께 공공기관 임원들의 자회사 및 계열회사 재취업은 물론 정치인 출신들의 낙하산 인사까지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3년간 한국전력 토지공사 등 대규모 공공기관에서 임원으로 재직하다 퇴직한 뒤 재취업한 27명 중 20명이 자신이 근무하던 공공기관의 자회사와 계열회사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공기업의 상근감사 7명 중 5명은 정치인 출신인 것으로 드러나 전문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획예산처는 최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www.alio.go.kr)을 개설하면서 한국전력, 토지공사, 철도공사, 주택공사, 가스공사, 농촌공사, 도로공사 등 7개 공기업을 `대규모 공공기관 집단`으로 지정하고, 임원 현황을 공개했다. 기획처는 자회사, 계열회사 등을 거느린 공기업 가운데 자산 규모가 큰 기관들을 `대규모 공공기관 집단`으로 지정해 계열사간 출자 현황과 거래 내역을 관리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최근 3년간 7개 대규모 공공기관에서 퇴직한 뒤 재취업한 임원은 모두 27명이다. 이 중 20명은 퇴직한 공기업의 자회사나 계열회사에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철도공사의 경우 최근 3년간 퇴직한 임원 중 13명이 재취업했으며, 이들이 재취업한 곳은 코레일엔지니어링, 코레일애드컴, 한국철도유통 등 모두 철도공사의 계열사였다. 한국전력도 4명의 전직 임원들이 모두 한전의 발전 자회사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나타났다. 토지공사 가스공사 농촌공사의 전직 임원(각 1명)도 퇴직 후 자회사로 재취업했다.
도로공사는 임원 1명, 주택공사는 임원 6명이 퇴직 후 `기타 회사`에 재취업했다. `기타 회사`로 분류됐지만 대부분이 건설 또는 건설장비 관련 업체인 것으로 나타나 퇴직한 공기업과 전혀 무관한 곳에 재취업한 경우는 전무했다.
7개 대규모 공공기관의 감사에는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들이 기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규모 공공기관의 상근감사 7명 중 5명은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열린우리당 출신 정치인이다.
또 7개 대규모 공공기관의 비상임 이사는 정치인 전직 고위공무원 출신들이 많았다. 농촌공사의 경우 7명의 비상임 이사 가운데 정치인 2명, 고위 공무원 출신 2명, 지방언론사 사장 1명이 포함돼 있다.

기획예산처, 총괄적 관리 감독 취약 자평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정부 투자기관을 비롯한 공기업에 대한 총괄적 관리감독이 취약하다"고 자평했다.
기획처는 `정부 투자기관 관리 기본법`에 따라 공기업의 운용을 전반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공기업이 일반 국민의 상식에 맞지 않는 행위를 하더라도 기획처는 이에 대한 조사권한이 없다. 기획처 관계자는 "감사원의 지적사항이 나오면 해당 공기업에 시정을 요구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기획처는 최근 공기업에 `경영위험 공시제도 시행지침`을 보냈다. 공기업이 맺은 노조와의 협약, 복지현황 등을 공시하도록 해 방만한 경영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를 제대로 공시한 공기업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처의 `지침`에 구속력이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매년 공기업의 경영실적을 평가해 성과급에 차등을 두고 있지만, 공기업들은 성과급을 적게 받는 대신 내부적으로 과도한 임금인상, 복지혜택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강성일 기자 steel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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