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연재> 고홍석 교수의 산내마을 '쉼표찾기'

`Weekly서울`이 연재하고 있는 `쉼표 찾기`는 오랜 학교생활과 사회활동 후 안식년을 가졌던 전북대 농공학과 고홍석 교수가 전북 진안군 성수면 산내마을에 들어가 살면서 보고 느낀 점들을 일기 형식으로 적은 것이다. 고 교수는 2004년 3월 전북 전주시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이 한적한 산내마을로 부인과 함께 이사를 갔다. 고 교수의 블로그에도 게재된 이 글들은 각박한 삶을 살아내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아주 좋은 `쉼표` 찾기가 될 것이다. 고 교수는 `Weekly서울`의 연재 요청에 처음엔 "이런 글을 무슨…"이라고 거절하다가 결국은 허락했다. `쉼표찾기`를 위해 산내마을에 들어간 고 교수는 지금도 시끄러운 정세와 지역현안들로 바쁜 사회참여활동을 하고 있다. <쉼표 찾기>를 통해 산내마을에서의 생활과 사회를 보는 시각을 적절히 섞어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Weekly서울`은 고 교수가 부인과 함께 산내마을로 이사를 가기 직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쓴 모든 글과 사진들을 거르지 않고 연재하고 있다. 때론 낙엽지는 시기에 새싹 피어나는 이야기를, 눈 내리는 한 겨울에 여름 무더위 이야기를 접하는 일도 있겠으나 그 또한 색다른 재미가 될 듯 싶어 빼놓지 않고 게재한다. 많은 성원 부탁드린다.  <편집자주>
 
비 오는 주말에 (9/12) 

거미가 줄을 엮는 것은 그 자체가 삶이다. 거미줄도 거미의 크기에 비례한다. 큰 거미는 포위망을 넓혀서 먹이를 많이 포획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있는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거미는 그 작업을 신성하게 여기는 듯 은밀한 시간에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특유의 죽은 체하는 의뭉스러움으로 작업 중에 들키면 삶의 시간을 정지시키듯이 움츠린다. 우리들은 대부분 다 쳐진 거미줄을 보고서 그 빼어난 직조 기술과 기하학적 정밀성에 놀라는 것으로 관찰을 마치게 마련이다.

우리네도 사는 동안 내내 집을 부수고, 짓고, 옮기며 살고 있다. 부모의 품을 떠나 살림을 시작하여 수원 - 광주 - 목포 - 전주 - 진안에 이르기까지, 셋방에서 그리고 처음 집을 장만하였을 때 희열을 보듬어 볼 때까지, 아마 주민등록표에 덧장이 덧붙여질 정도로 이삿짐을 싸고, 풀었던 것이 얼마나 되는지 셀 수도 없다. 그리고 적어도 8년은 살겠다면 굳은 맘을 먹고 살러 들어온 이 산내마을에 또 다시 거미가 거미줄을 엮듯이 어설프면서도 성긴 삶의 터를 마련하고 쉼표를 찾고 있다.

따지고 보면 너무 짧은 시간에 불과하지만, 이 산내마을에서의 생활이 그저 오랜 시간인 듯이 하고, 도시 아파트에서의 생활이 먼 옛날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흐르는 강물을 보고 식어가는 가슴을 데우고, 텃밭에서 현기증을 느끼면서 호미질을 하면서 흙의 인간과의 유기성을 확인하였다. 가끔 들리는 집 없는 고양이와 눈 맞추는 것으로 기억에서 멀어져 가는 단비와 지냈던 그 시간을 돌이키고, 영그는 과일 속에서 자연의 신비와 풍요함을 알 게 되었으니, 사는 것이 감사하다는 마음 뿐.

`가을비는 관뚜껑에 못박는 소리`라고  `악의 꽃`을 쓴 보들레르는 염세적인 표현을 하였다. 보들레르가 관뚜껑에 못박는 소리라는 가을비는 10월말이나 11월 초순에 가을 끝자락인지 겨울 앞자락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시점에 어울린다. 지금 내리는 비는 가을비이면서도 아직까지는 여름의 끝자락 비일 것 같다. 아무튼 비가 내리면 괜히 울적하고 감상적인 기분이 든다. 게다가 주말에 고창 선운사 꽃무릇(상사화)도 보고 산행도 하겠다는 계획이 무산되니 짜증까지 겹친다. 하여 어제 토요일 오후 아내와 영화관을 찾았다. 보려고 벼르던 영화 <연인>은 대형 스크린과 음향이 갖추어진 영화관에서 보아야  제격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영화관까지 가는 데도 물경 한시간을 운전해야 하니, 영화 파일이 있으면 나가지 않고 집에서 편안하게 컴퓨터로 보는 것인 보통인데.

글을 쓰다 말고 성당을 다녀왔다. 쉬었다가 글을 쓰게 되면 맥이 끊어지는 느낌도 있지만, 잠시 숨을 돌리는 여유도 생긴다. 미사를 보는 도중에 남은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로 미사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시골 성당인지라 노인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노인들이야말로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살아온 날보다는 남은 날이 적으니 머지 않아 뵐 분이 바로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꾀죄죄한 냄새 나는 시골 노인네들이지만 하느님과 가까운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 것도 은총이다. 은총이 따로 있겠는가. 오늘 신부님 말씀처럼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가슴으로 살면 모든 것이 은총일 것이니. 그 분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까지 청춘이지만, 죽음은 예약이 되어 있지 않는 것이니 반드시 살아온 시간에 비례해서 죽음이 닥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항상 묵상하며 사는 것이 오늘을 잘 사는 것일 것이다. 가을 결실의 기쁨과 찬란한 붉은 단풍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려면 비워지는 것과 떨어지는 외로움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과 같다.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은 이미 기자회견에서, 무협 영화 <영웅>은 연습 게임이고, 진짜는 바로 이 영화 <연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영웅>을 보면서 그 화려한 색채에 반했던 나로서는 후속편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상영된 <연인>도 화려한 가을 색조를 스크린에 온통 뿌려 그 색채에 빠져들어갈 정도로 화사하다.
 
그리고 <연인>의 특수효과는 대나무 밭의 결투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대나무밭을 스치는 소리와 빗발치듯 내려 꽂히는 죽창의 협연이 화려하다. 그러나 동양화의 묵향과 같은 여백이 없다. 단지 가을에서 겨울로 다시 빗발치는 눈보라로 쓸쓸히 침몰하는 화사한 배경들이 오감을 자극하는데 그냥 그뿐… 아쉬움이 남는다. 거기에 반전과 반전으로 이어지는 구성의 어설픔에는 실소가 나온다. 관객의 눈을 잡았으나 마음은 잡지 못할 것 같다.

 

▲  거미줄을 엮고 있는 작업. 고단하지만 그 자체가 삶이다.


▲  장예모 감독의 영화 <연인>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하고(9/14) 

국가보안법은 포악무도한 일제 침략주의의 흉검이라고 할 수 있는 치안유지법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민족분단의 산물로 태어났다. 이 법은 해방 이후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 자유로운 통일논의 및 남북한의 화해노력을 실질적으로 봉쇄하고, 남북 간에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남쪽 내부에서 마저 적대와 증오감을 조장하는 분단의 법으로 기능해 왔다.

이 법이 명분으로 삼았던 경직된 안보논리, 냉전 이데올로기의 무분별한 확산은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과 사회경제적 변혁 의지, 민중의 생존권적 요구, 사상, 양심, 언론, 학문의 자유 일체를 억압하는 정권 안보의 도구로써 그 역할을 하여 왔던 것이다.

분단극복을 위한 간절한 민족적 소망도, 노동자와 농민들의 생존권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도, 심지어 참교육을 외치는 교사들의 소박한 열정마저도 국가보안법의 도마 위에 올려져 난도질 당했던 것이다. 그래서 국가보안법은 피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 수많은 무고한 학생과 양심적인 국민들이 국가보안법의 서슬 푸른 칼날 아래 `붉은 빛`의 색칠을 뒤집어 쓰고 고통당해야 했으며, 정치적 희생자는 고문의 비명과 피의 얼룩을 내뿜었던 것이다.

극가보안법 사건은 명백한 물증보다는 주로 피의자 본인의 또는 공동 피의자 상호간의 진술 증거에 의존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백 진술을 받아내고자 하는 강력한 유혹에 끌려 고문을 당연시했던 것이다.

어떤 법학자는 `일제시대의 치안유지법 위반사건의 역사를 뒤집어 놓으면 우리 독립운동사가 되듯이 이 시대의 국가보안법 위반사가 바로 정당한 민족민주운동사라는 평가를 후대 역사가들이 내리지 않겠는가`라고 국가보안법과 민족민주운동과의 관계를 설명한 바 있다. 이 말은 오늘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국가권력에 의하여 탄압받고 학대받은 수많은 사례들이 얼마나 민족적 정당성 위에 서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 전북지역에서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560인 선언 및 한나라당 규탄 기자회견이 있었다. 10시 30분 기자회견장인 한나라당 당사 앞에 나가니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기자회견이 시작되어 참석자 소개가 끝나고 난 다음, 내가 인사말을 하게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내용으로 인사말을 하고, 부분적 개정에 그친 한나라당의 주장은 말할 것도 없고, 형법으로 보완을 전제로 한 폐지를 하겠다는 열린우리당의 주장도 폐지를 가장한 기만이라는 것을 폭로하였다. 이어서 선언문 낭독을 하고 한나라당 항의방문으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텃밭의 열무를 몽땅 뽑았다. 열무는 어느 정도 크면 이파리를 벌레가 파먹어 들어가기 때문에 뽑고 다시 씨앗을 뿌려야 한다. 뽑아낸 자리에 내일 비가 오지 않으면 열무와 치커리를 뿌릴 생각이다. 저녁 식사에 고등어 구이를 먹고, 생선 남은 것을 고양이 밥으로 주고서 기다렸더니 한 마리가 와서 먹더니 거실 창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간다. 밤이라 실내에 불을 켜면 밖이 보이지 않으므로 거실 불은 꺼두고 외등을 켜두고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제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56년이 되었다. 국가의 안보를 지키는 데 이용되기보다는 불안한 국내 정치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한 집권 세력의 도구로 활용되어 왔던 이 국가보안법으로 사찰, 연행, 고문, 조작에 의해 고통을 당한 분들이 얼마나 많던가. 지금 탈냉전 이후 통일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시대 흐름을 정면으로 역행하는 국가보안법은 완전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전북지역 560인 선언 및 한나라당 규탄 기자회견


▲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전북지역 560인 선언 및 한나라당 규탄 기자회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쉼표


▲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전북지역 560인 선언 및 한나라당 규탄 기자회견 후 한나라당에 항의문을 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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