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그룹, 보수그룹 허물기 본격화 결정적 순간 진보세력 재결집

또 다시 주도권이 노무현 대통령에게로 돌아갔다. FTA 정국 이후 몰라보게 커진 노 대통령의 목소리에 정국은 다시 한 번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친노그룹은 "이미 바닥은 쳤다. 이제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며 새로운 의지를 다지고 있는 분위기다. 한미 FTA는 그 성패 여부를 떠나 `레임덕` 위기에 처해있던 청와대를 구해내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다.
이와 함께 연말 대선을 앞둔 노 대통령의 행동 반경도 한층 커질 전망이다. 이미 범여권에선 상당한 총알을 준비해 놓고 있다는 게 한 인사의 전언이다.


한미 FTA 협상 이후 국내 정치 지형도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 청와대에 `비판적지지`를 보였던 진보 진영에선 엄청난 포화를 쏘아대며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반면 그 동안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웠던 일부 보수 언론들과 한나라당은 이구동성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에 정신 없었다.
이 과정에서 한 때 10%까지 떨어졌던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까지 상승했다. 일시적인 흐름이긴 해도 한나라당으로선 떨떠름할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대결 전선` 강도 약화

타결 직후인 이달 초 청와대가 여론조사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는 32%였다. 비슷한 시기 MBC와 KB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노 대통령의 지지율은 각각 36%와 32%로 집결됐다.
"무엇보다 실용적인 면을 중요시했다"는 청와대의 설명이 민심에도 먹혀 들어갔음을 보여주는 방증이었다.
정치권에선 그 동안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던 중도층 일부가 점수를 주는 쪽으로 선회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말부터 11·15 부동산 대책, 개헌 제의 등으로 연이어 지지율 상승을 노렸지만 효과는 미약했다. 이번 FTA 결과로 가장 긴장하고 있는 쪽은 역시 한나라당이다. FTA를 찬성하는 입장에서 대놓고 비판을 하지는 못하지만 노 대통령의 `정치력 회복`은 역시나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차라리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상승하면 불안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주도권을 잡게 되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 FTA 후폭풍을 겪으며 보수 세력 내부의 단결력이 이완되는 조짐도 발견된다. 지금까지는 반노전선에 `정권교체` 열망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고공행진을 달렸지만 노 대통령이 `주적`에서 한발 물러섬에 따라 전선 구도가 약해졌다는 얘기다.

"올 대선 화두는 평화"

범여권에선 노 대통령이 FTA 정국에서 일시적으로 진보진영과 대립을 겪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여전히 큰 틀을 함께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2·13 합의 이후 난기류를 타고 있는 남북관계가 그 이유다. 열린우리당의 한 인사는 "일단 실리를 챙긴 뒤 준비된 로드맵을 통해 다시 큰 틀로 묶일 것"이라며 "올 대선의 화두는 평화라는 데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조기숙 전 대통령 홍보수석은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이 미래 의제를 이미 선점해 버렸다"며 "여야를 떠나 노 대통령을 밟고 가는 사람은 대선에서 성공할 수 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범여권이 준비중인 `남북화해` 전략은 조만간 진행될 경추위와 남북 장관급 회담을 통해 성과물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남북열차 시범운행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등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어 6자 외무장관 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남북정상회담과 남북, 미, 중 정상이 만나는 4개국 정상회담이 뒤이어 준비될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4개국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선언`이 채택될 경우 그 영향력은 상당할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과정에서 그 동안 보수그룹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던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 등이 해결될 경우 보수그룹의 혼란은 한층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 인사의 말이다.

`행정수도 이전` 첫 삽

한나라당에선 이런 상황을 스스로 불렀다는 내부 질책도 없지 않다.
전여옥 최고위원은 이와 관련 "소위 빅2(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의 시시콜콜한 싸움에 국민이 싫증내기 시작했다"며 "두 후보가 받고 있는 70%의 지지율이 착시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손학규 전 지사 이후 당내 기싸움이 양강으로 좁혀지면서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손 전 지사가 당내에서 떴어야 흥행이 됐을 것이다"며 "빅2 모두 본선보다 예선에만 목 매여서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최근 개헌 발의에 대해서도 "각 당이 개헌을 당론으로 결정한 후 대국민 약속을 하면 대화와 협상이 가능하다"면서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으면 예정대로 개헌안을 의결, 발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노 대통령이 양보한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상은 정치권에 대한 압박으로 보는 시각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FTA 정국을 통해 발언권을 회복한 노 대통령이 남북관계와 개헌이라는 양 날개를 어떻게 펼쳐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함께 올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행정수도 이전 사업도 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줄 것으로 전망된다.
유상민 기자 uporter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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