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화가 난다. 참을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치밀어 오를까. 주체할 수가 없어 더욱 더 폭발하고 있다.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근원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더 난감하게 한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일어지는 생각들은 화의 불길을 치솟게 한다.

단초는 아이였다. 개학할 때가 되었으니,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도 할 말이 있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겠다고 대답을 하였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도 볼멘소리를 하고 있었다. 과제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아이의 태도가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는 마음으로 바라보니, 보이는 것마다 참을 수가 없다. 집사람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는 시선에 걸린 것이 잘못이었다. 폭발하면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가족들은 모두 슬금슬금 피하였다. 그런 모습까지도 참을 수없게 만들었다.

온 몸에 그득 찬 불길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집 안에 앉아 있으면 어떻게 돌변할지, 나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뭔가 변화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씩씩거리면서 집을 나섰다. 어디에서부터 잘못이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질서를 잡을 수 없다. 흩어져버린 무질서로 인해 혼란만이 가중되고 있었다.

“어 ! 호박꽃이네.”
발길은 자연스럽게 삼천천으로 향하였고, 폭발하는 화의 기운을 참을 수가 없어서 벤치에 앉았다. 초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시선에 흐릿하게 들어오는 붉은 기운이 있었던 것이다. 초점을 맞추게 되니, 완성되는 대상은 호박꽃이었다. 누가 일부러 심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덩굴 사이로 피어나고 있는 꽃이 흔들리고 있는 마음을 바로 잡아주었다.

그리스의 철학자는 분노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감정이지만 이를 바르게 조절해야 한다고 하였다. 화가 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것을 올바르게 대처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감정이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를 바르게 처리하지 못하면 큰 앙금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철학자는 바르게 화를 처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올바른 대상에게, 올바른 정도로,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목적으로, 그리고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이 바른 방법이라는 것이다. 쉽게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를 실천하기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 것은 분노의 감정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폭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탁닛한 스님과 같은 경지에 도달하기란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함으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고통은 이루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순간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함으로서 감당해야 하는 물질적 정신적 손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호박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화를 내고 난 뒤의 결과를 생각하게 해준다.

화를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분노의 결과가 두려워 무조건 참기만 한다면 그 부작용 또한 만만하지가 않다. 그것이 쌓이게 되면 병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화병이 바로 그 것이다. 내면에서 솟구치는 분노를 폭발하지 못하고 억지로 참아냄으로서 생기는 병인 것이다. 이 또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화란 발생하는 대로 폭발하는 것도 문제이고 그 것은 참아내는 것도 문제다. 세상의 일이란 그래서 해결하기가 쉽지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일까? 볼품없는 호박꽃이 빙그레 웃고 있다. 호박꽃도 분명 꽃이다. 화도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은 아닐까? 스치는 생각이 있다.

화를 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기준을 정해놓고 행동하는 방법이다. 화가 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보고 문제 해결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이 된다면 폭발시켜버린다. 그렇지 않다면 참게 된다면 조화를 이루지 않을까. 호박꽃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다. 분노가 가라앉으니, 아이와 집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파란 하늘이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春城 정기상님은 전북 대덕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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