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물고기와 멈춤

"텀벙…."
어린 아이가 과자를 던져주니,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모여든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떼를 지어 모여들고 있는 물고기들의 모습이 신기하다. 그들은 익숙해져 있다. 던져지는 것이 먹이란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아니 몸에 배어 있어 습관처럼 헤엄치고 있다. 정확하게 감지하고서 떨어진 곳을 향해 머뭇거림 없이 달려든다.


물고기들의 헤엄치는 행동이 어찌나 빠른지 시선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민첩한 행동이 마치 전광석화와 같다. 그렇게 빨리 달려와도 먹이를 먹을 수 있는 놈은 한 마리뿐이다. 한 입에 물고는 이내 꿀꺽 삼켜버리는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늦게 도착한 놈들은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곳은 전북 순창에 위치하고 있는 강천사의 금강교 아래다. 금강교는 고추 모양의 난간으로 이루어져 시선을 잡고 있다. 순창이 장류의 고장이요 장수의 고장이란 점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다리의 난간을 고추 모양으로 장식한 모양이다. 자기 고장을 알리려는 노력이어서 눈길을 끈다.

다리 위에서 먹이는 계속 던져지고 있다. 물고기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기 위하여 또 던지고 또 던지는 것이다. 사람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고기들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사람이 물고기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들이 사람을 자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민하게 헤엄을 치고 있는 물고기를 바라보면서 멈춤을 생각하게 된다. 물속에서 동작을 멈춘 물고기는 하나도 없다. 경쟁에서 승리하는 물고기는 극히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물고기들이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경쟁에서 번번이 지게 되니, 체념할 때도 되었지만, 포기하는 물고기는 하나도 없다.

물고기와 마찬가지로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달려왔고 현재도 달리고 있으며 앞으로도  달려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달려도 끝이 없지 않은가? 저기가 고지라고 생각하고 전력을 다하여 달려가 보지만, 그 곳은 고지가 아니었다. 고지는 저만큼 멀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달리는 것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왜 달리는 것일까? 먹을 것을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헤엄쳐 달려오는 물고기처럼 왜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달리는 것일까? 달리면서 멈춤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왜 달리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달렸고 멈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진다.
달리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달리고 달려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멈추는 것보다는 많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느리게 달리면 다른 사람에게 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그렇게 뛰게 만들었을 것이다. 경쟁에서 밀려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달리고 또 달려가는 것이다.


달리는 것이 몸에 배어버리니 많은 부작용이 생겼다. 달리지 않으면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달리는 것 자체가 필수불가결한 일이라고 믿어버리게 된 것이다. 달리지 않으면 무슨 큰 일이 일어날 것이란 두려움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생각이 고착화되어 고정관념으로 굳어져버린 것이다.

고정관념을 무서운 결과는 가져온다. 달리고 있는 주체인 나 자신이 낯설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달리고 있으면서 달리고 있는 나 자신이 아득하게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내가 달리고 있지만 달리는 주체로서의 자아는 상실한 것이다. 주객이 전도되었어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아니 당연한 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나를 잃어버리게 됨으로서 나는 실종되고 빈껍데기만 남아 있다. 껍데기 삶을 살아가게 됨으로서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고독 속에서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이는 악순환 되어 더욱 더 고통의 나락으로 추락하게 된다. 물고기들이 죽을 둥 살 둥 모르면서 먹이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모습에서 나를 찾게 된다.


달리는 것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많은가? 환하게 웃고 있는 달님을 본적이 언제였던가? 초롱초롱 빛나고 있는 밤하늘의 별들을 본적이 언제였던가? 정녕 달님이 사라진 것이 아니고 별님 또한 없어진 것은 아니다. 결국 나 자신이 그 것을 보지 않고 지냄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이다. 외로움도 고독도 스스로 자초한 결과일 뿐이다.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물고기를 바라보면서 멈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 멈춤 그 자체에 대해서 생각조차 하지 못한 어리석음을 발견한다. 전력 질주를 하여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당연 멈춤으로서 내 인생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이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서 오는 것이란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물소리…삭아지는 화

무슨 말이 필요한가.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자체로 감동이고 환희이니, 그 것으로 족한 것이다. 여기에다 감탄사를 터뜨린다거나 다른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 쏟아지는 폭포수 그 자체로서 완벽함으로 다른 설명이나 풀이하는 것은 사족에 불과하다.

조용한 산사의 폭포 앞에서 씻어 내버린다. 온 몸에 더덕더덕 붙어 있는 세진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을 더럽히고 있는 모든 때까지 말끔하게 씻긴다. 눈으로는 깨끗한 물이 온 몸에 배어들고 귀로는 맑은 소리가 공명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온 몸의 세포들이 모두 다 일어나 폭포의 물줄기를 받아들이고 있다.



6월의 그날은 맑았다. 바쁜 농사철이라서 산사가 한가로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출발하였다. 달리면서 들녘을 바라보니, 사람이 없다. 그래도 논에는 초록의 모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없어도 농사 일이 진행되고 있다.

산사에 들어서니, 예상이 빗나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일주일 내내 열심히 일하였으니, 일요일은 쉴 권리가 있다는 뜻인가? 주차할 곳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자동차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묘한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서니, 시원한 인공 폭포가 반겨주었다.


폭포수는 가슴을 뻥 뚫어준다. 알 수 없는 뭔가로 꽉 막혀 있는 마음이 시원하게 뚫리고 있었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면 이런 기분이 되는 것일까? 시원해지는 몸과 마음을 확인하면서 무엇 때문에 막혀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딱 이것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알지 못하는 이유로 인해 곤혹을 치르게 하는 감정 중에서 가장 큰 요인이 화다. 화가 한번 일어나기 시작하면 주체하기가 힘들다. 분명 내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감정의 변화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통제할 수가 있어야 옳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일 뿐 화가 폭발하게 되면 스스로 주체할 수가 없다.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감정은 얼마든지 통제가 된다. 기분이 좋아지니, 그것을 내 것으로 누리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화는 다르다. 화도 즐거움과 같은 똑같은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한번 일어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일어난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화산이 폭발하듯 그 위력이 엄청나니, 당해낼 수가 없다.

화가 에너지라는 것을 확실하게 실감하게 된다. 화라는 감정이 작동하게 되면 콧바람부터 달라진다. 화는 나 자신을 삼켜버릴 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어버린다. 이성이나 도덕은 발붙일 수가 없다. 화는 나 자신을 활활 태워버린다. 흔적 하나 남김없이 홀라당 태워버리는 것이다.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나 자신을 정교화 할 수가 없다. 정교화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판단력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방향성을 상실하여 목표를 찾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 사람들 가슴에 감동을 불어넣을 수가 없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인생은 길이요 인연으로 엮어진 끈이다. 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는 화를 잘 다스려야 한다. 화를 다스리지 못하게 되면 부드러워질 수 없다. 유연한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없게 되면 인연의 끈이 끊어질 수밖에 없다. 화는 오기를 키운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게 되고 자신의 욕심만은 앞세우게 된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게 되면 소신 있는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이 송두리째 화에 갇히게 되어 다른 사람의 생각에 관심을 가질 여지가 없다. 관심을 없으니 배려도 없고 용서는 더더욱 할 수가 없게 된다. 인생이 행복해지려면 따뜻해져야 한다. 그러나 화에게 잡혀 잇는 사람은 뜨겁기는 하지만 온화한 마음을 가질 수 없게 된다.
누구나 화를 낸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이미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보아야 한다. 사람이 신이 아니니, 누구나 다 화를 내고 화에 의해 고통을 받는다. 문제는 폭발하는 화를 어떻게 관리하고 다스리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잘 관리하는 사람은 행복해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고통이다.

화를 억누르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화를 인정해야 한다. 사람이기에 화가 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일어난 화를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기란 말처럼 쉽지가 않다. 폭발력이 엄청난 에너지를 관리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는 그 해답을 말해주고 있다. 우선 숨을 천천히 내쉬어야 한다. 느린 호흡이 반복하게 되면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진정이 되지 않으면 천천히 걷는 것도 도움이 된다. 호흡을 길게 하면서 느릿느릿 걸으면서 화를 깊이 바라보아야 한다. 화를 인정하고 그것의 근원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화가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을 때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게 되면 희미하게나마 화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결국 아무런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깊이 바라보고 실체를 볼 수 있게 되면 화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폭포수의 물방울이 바람에 날려 보이지 않지만, 피부로는 차가운 느낌을 감지할 수 있다. 화도 마찬가지다. 화에 몸과 마음을 빼앗기고 있을 때에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면 그 것의 실체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폭포의 물줄기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고 서 있었다. <춘성(春城)정기상님은 전북 봉동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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