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세상>

사진을 찍으면서 엉뚱한 생각을 담는 것은 자유스럽기도 하거니와 즐겁기도 합니다. 하여튼 `생각을 담는 것` 그 행위는 즐거운 일이지만, 그 생각이 요즘 정국과 관련된 것이라 사실은 엉뚱하지도 않고, 자유스럽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습니다. 뒷배경이 흰색 담장이고 앞에는 토끼풀이 무성하게 피어있는 것을 보면서 문득 전경과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는 것 같은 엉뚱한(?) 생각이 들어서 평범한 피사체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셔터를 눌렀습니다. 더구나 얼마전 시청 앞 광장에서는 경찰이 컨테이너 박스로 시위대를 차단한 일이 발생했으니 그 엉뚱한 생각이 더욱 딱 들어맞는 듯하여 배시시 웃음까지 나옵니다.



돌이켜 보니 저도 90년대 시위대의 최전방에서 감히 용감하게 투구를 쓰고 방패를 들고 방망이로 무장한 전경들과 맨손으로 대치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시위 진압이 폭력적일 때, 시위를 주도하는 지휘부에서는 곧잘 신부, 목사, 교수들을 시위대의 최일선에 배치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명망가를 앞세워서 청년학도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고육지책이었던 것입니다. 무장한 경찰 병력과 바로 코앞에서 대치하고 있으려면 솔직히 심장이 쿵쾅쿵쾅하면서 뛰고 겁도 나고 긴장하게 마련입니다. 곁에 함께 서있는 동지들의 연대감이 없다면 그냥 주저앉고 말았을 것입니다.

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담장이 시위를 막는 경찰 병력으로, 토끼풀이 촛불을 들고 서있는 시위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범하다면 너무 평범한 담장과 토끼풀을 피사체로 담았습니다. 초는 자신을 태워서 빛을 밝히는 것입니다. 촛불을 들고 시위를 하는 것, 바로 그것은 내 자신을 태워서 어둠을 걷어내고 빛을 밝히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입니다. 어쩌면 토끼풀은 그저 발에 밟히는 흔한 잡초에 불과하나, 어쩔 때는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반지나 팔찌를 만들어 사랑 표현을 하는 기막힌 사랑놀음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또 그 생명력도 강해서 아무리 뽑아도 끝내 질기게 버텨내기도 합니다.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민중들의 사랑과 생명력을 닮았습니다. 조금 억지를 부린다면 토끼풀의 생김새가 마치 촛불을 들고 서있는 사람의 모습으로도 보입니다.


아래 사진은 철제 담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전면의 꽃들이 화사하게 피어 있습니다. 토끼풀 사진과는 다소 대비되는 색감과 구도입니다. 그리고 꽃들이 마치 나무 줄기를 감싸고 있는 듯 보입니다. 투쟁을 끝내고 환호하는 시위대들이라고 이번에도 억지 해석을 붙여 봅니다. 직접 서울시청 촛불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지만 이 사진과 글로써 촛불 하나 불붙여 올립니다. 미국의 미친소는 이 땅에 절대로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사랑과 생명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소중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포토아카데미(http://cafe.daum.net/photoac) 고홍석(전북대 교수)님의 글과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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