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라면값 16% 인상 과정 직권조사, 물가잡기 '올인'

생활물가 급등으로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자 정부가 직접 칼을 뽑아 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라면을 시작으로 정유 백화점 할인점 등 대형유통업체들에 대한 현장조사에 착수, 사실상 전방위적인 불공정행위 단속에 나섰다.
또 휘발유, LPG업체들의 담합 등 불공정행위 조사에도 나섰다. 병원비, 통신요금, 학원비 등도 조사를 진행중이거나 계획하고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성장 우선에서 물가안정으로 선회

지난 10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농심과 삼양식품, 오뚜기, 한국야쿠르트가 최근 서민들의 대표적인 생필품인 라면 값을 16% 안팎 인상하는 과정에서 담합했는지를 가리기 위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번 조사는 신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공정위 직권으로 착수한 것으로, 정부가 치솟는 서민 물가를 잡기 위해 전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통계청이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52개 품목을 갖고 산출한 이른바 `MB 물가지수`는 5월에 113.2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6.6% 급등하는 등 생활물가가 갈수록 치솟고 있다.
지난 5월 관세청이 청바지.운동화.삼겹살 등 90개 수입품목의 수입가격을, 한국소비자원은 스낵.커피.주스.맥주 등 7개 품목의 가격 실태를 각각 공개해 국내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품목의 가격 인하 유도에 나섰지만 이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성장에 우선 순위를 뒀던 정부가 최근 물가안정 중심의 정책으로 선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물가가 크게 오르는 등 새로운 환경을 감안해 금리와 환율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민심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원자재 값 상승과 고유가에 따른 물가 급등이 서민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유통업체 불공정 하도급 거래 심각

공정위는 라면 값 조사에 이어 서민생활과 직결된 주요 업종의 담합과 같은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서도 조사를 확대하고 있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2일에 "최근 대형 유통 납품업체들에 대한 서면조사를 완료했고, 신고접수 사례 등을 통해 현장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서면조사를 통해 백화점, 할인점, 홈쇼핑 등 유통업체 전반에 대한 기초조사를 마쳤으며, 대형업체 중심으로 현장조사에 나섰다.

주된 조사대상에는 신세계, 현대백화점, 롯데백화점 등 대형 백화점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면조사 결과 분석이 끝나면 이들외에 유통업체 전반적인 조사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특히 유통업체들이 제조업체로부터 납품을 받는 과정에서의 시장우월적 지위 남용 등이 중점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백 위원장도 최근 강연에서 "유통업체의 힘이 강해져 거의 제조업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유통업체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 심각성을 강조했다.
공정위는 대형병원, 정유사 등을 상대로 한 불공정거래 여부를 가리기 위한 조사에도 나섰다. 서민생활과 직결된 업종에 대한 조사를 통해 가격인하를 이끌어 내겠다는 것이다.
조사 대상은 SK텔레콤과 LG텔레콤, KTF 등 주요 이동통신업체를 비롯해  SK, GS 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등 4대 정유업체 및 주유소  서울대학병원, 아산병원, 서울삼성병원 등 전국 45개 대학병원급 대형병원 등이다.
공정위는 서면 조사를 통해 이통통신업체의 요금체계 및 대리점 운영실태 등을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요금 담합이 있었는지, 대리점과의 계약에 불공정한 측면은 없는지 등도 조사한다.
정유사에 대해서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주유소에 자사 제품 판매를 강요하는 `배타적 거래` 여부와 최근 유가 급등에 편승해 부당하게 가격을 올렸거나 담합했는지 등을 집중 점검한다.
대형병원을 대상으로는 제약사 등으로부터의 리베이트 수수, 특진 강요 여부 등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특진은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제도이지만 상당수 병원들이 의사 대부분을 특진 의사로 지정, 환자들에게 특진을 사실상 강제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면 조사에서 불공정거래 혐의가 드러나면 본격적인 현장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공정위는 사설학원에 대해서도 학원비 담합 인상 여부 등의 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프랜차이즈 형태의 대형 학원들이 늘어나면서 이들 학원이 시장지배력을 이용, 교재비나 보습료를 부당하게 책정했는지 중점적으로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원자재값과 물가상승 편승 담합 엄단 예정

정부는 국민 생활은 물론 국가 경쟁력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이들 업종이 원자재 값이나 물가 상승에 편승해 담합을 통해 가격을 올리거나 불공정한 거래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엄단한다는 계획이다.
공공요금 인상도 최대한 억제하고 조정이 불가피할 경우는 인상 폭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며 담합 뿐 아니라 탈세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여 가격 안정을 유도할 방침이다.
정부는 경쟁 촉진으로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제도 개선도 병행하며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달 안에 석유제품 판매와 관련한 고시를 폐지해 한 주유소가 여러 정유회사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 특정 정유소의 제품만 팔도록 하는 주유소 상표표시제(폴사인제)를 없애 주유소가 정유사에 대해 `을`의 위치에서 벗어나도록 해 정유소의 제품 공급 경쟁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유류 가격의 인하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가격 인상이 국제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값 급등 등 대외 요인에 의한 것인데 이를 담합으로 몰고 가는 것은 억울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원재료 값이 올랐다고 해서 제품 가격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폭으로 인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원가 절감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서민경제와 직결되는 품목에 대해서는 조사를 확대해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담합과 같은 불공정 거래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막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납품단가 조정 의무화로 중소기업 숨통

한편 공정위는 "시장경제원칙인 자율성을 지키면서 대 중소기업간 납품단가 조정협의를 담보하기 위해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를 도입, 관련 법적근거와 절차규정을 신설키로 했다"고 밝혔다. 기존에 중소기업들이 요구한 납품단가 연동제 대신 당사자간 조정을 의무화하는 것으로 대체된 셈이다.
공정위는 우선 현행 하도급법 시행령을 고쳐 납품계약 이후 발생한 상황에 따라 원 수급사업자가 납품단가를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미리 하도급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르면 8월부터 시행된다.
공정위는 또 납품단가 조정협의 의무제를 보다 강제하기 위한 후속조치로 조정 신청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동시에 대기업이 협의에 성실히 응해야할 의무를 부과하고, 조정협의가 성립되지 않을 경우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를 통한 조정 절차가 개시되도록 하도급법을 개정키로 했다.
특히 납품단가 조정방법을 계약서에 기재하지 않을 경우 서면미교부 행위로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제재 조치를 내리기로 했다. 과징금은 하도급 대금의 2배 범위에서 부과할 수 있다.
또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를 통한 조정단계에서도 조정에 불응하거나 성실히 응하지 않을 경우, 시정명령과 과태료가 부과된다. 아울러 협의회를 통해 조정이 이뤄지지 않다러도 공정위에 조정결과를 통보토록 해 이후 직권조사 자료로 활용된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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