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터뷰> 생명평화 탁발순례 도법스님

“생명은 내 생명, 네 생명으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굳이 비유하자면 흐르는 강물처럼 존재한다. 강물은 상하, 좌우, 내외의 총체적 관계에 따라 스스로 흐르고 존재한다. 내 생명도 강물처럼 총체적 조건에 따라 스스로 생성, 소멸, 순환하는 것이다.”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 이야기를 엮은 책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에서 한 얘기다.

1965년 전라북도 김제 금산사에서 출가한 도법스님은 1995년 실상사 주지를 지냈다. 1999년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창립했고 2000년엔 지리산살리기국민행동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또 지율스님과 함께 천성산 고속철 관통공사에 반발하는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다음은 도법스님과 함께 걸은 뒤 나눈 대화를 간추린 것이다.

- 2004년에 순례를 시작했다. 특별히 그때 시작한 이유가 있나.
▲ 이 순례를 왜 시작하려 했는지 이해하려면 문명사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 문명의 발달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문명의 이기만 볼 것이 아니라 그늘을 들춰내서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에서부터 현재, 미래까지 아우르고 있는 고민이다.  
한편 2003년 이라크 전쟁 후 한반도에도 전쟁의 위험이 높아졌다. 변화하고 발전하는 사회, 살기 좋아질 거라는 기대로 애들을 써 왔는데 사는 것은 더 황폐해지고 위험해 졌다. 우리가 배우고 익히고 믿어온 것들이 맞아 들어가지 않고 있다. 왜일까? 어떤 대안이 있을까를 지리산 지역에서라도 찾아보려는 움직임에서 생명평화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 같다.
▲ 한참 동안을 친미와 반미로 나뉘어 싸우고 있을 때 소수지만 비폭력 평화운동을 시작한 이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10만명이 있다면 전쟁의 위험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3만리를 걷고 8만여명을 만났다.

- 그래서 평화가 오던가. 다름 사람은 몰라도 스님 스스로에게라도.
▲ 저는 평화롭게 보이지 않나요?(웃음)

- 많은 사람들은 아직 이 순례의 효과를 보지 못한 것 같다.
▲ 우리는 사는 목적을 잃었다. 부자가 되고 일등이 되는 것만이 한국사회의 지배가치가 돼버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명이다. 자신의 생명이 안전하고 평화로워야 한다. 
자기 중심의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내 생명을 위한 길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세상은 자신의 생명과 관련 없는 것이 없다.


#도법스님

- 어떤 사람들은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고 한다.
▲ 모든 것은 그물코처럼 관계로 얽혀 있다. 꿀벌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전자파 때문에 집을 찾아 돌아가지 못하고 죽기 때문이란다. 벌이 없으면 식물이 수분작용을 못한다.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꿀벌이 전부 없어진다면 인류는 4년 안에 식량이 없어 죽게 될 거라는 학자들도 있다.
하찮아 보이는 꿀벌도 자신의 생명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먹거리의 뒷받침이 없으면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문명은 생명을 낳고 길러온 농업을 경시해왔다. 단지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경쟁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남을 제끼고 내가 나아야 하겠다는 이기심을 키우는 것 아닌가? 그런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예수가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하고 부처의 중생을 외아들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라는 말이 이것이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하면서 순례를 해도 많은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
▲ 꼭 그렇지만은 않다. 걸으면서 종교의 벽도 허물었다. 성당이나 교회에 갈 때면 예수의 생애를 생각해보는데,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힐 때의 마음가짐을 보면 대승보살도의 실천자, 법화경의 구도자 보살상과 일치한다.
순례길에서 하루 40∼50리, 15km 안팎을 걸어왔다. 때로는 농민이나 노동운동을 하는 이들로부터 `뭣하고 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밤새워 대화를 해보면 대부분 생명평화운동에 공감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탁발순례를 하면서 얻은 결론인데, 한마디로 세상은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종교도, 인생도 다 그렇다. 그런데 대동은 못보고 소이에만 몰두하니 갈등과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대동`을 보게 하는 역할을 종교가 해줬으면 좋겠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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