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계사 합류한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

지난 22일 촛불집회 주도와 정치파업 혐의로 수배중인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경찰 수배망을 피해 조계사로 피신했다. 조계사 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촛불 수배` 농성단에 합류한 이석행 위원장은 향후 조계사를 근거로 본격적인 하반기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정부 탄압이 심각하지만 공기업 민영화 등 친재벌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최소한 역할을 하고자 조계사로 들어왔다"며 "당분간 조계사에 머물며 하반기 투쟁을 이끌어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조계사 측은 이석행 위원장의 등장(?)에 다소 당혹스런 기색이다. 일반 시민들에게 비춰진 민주노총에 대한 `반정부 파업` 이미지와 조계종의 입장이 중첩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현정권, 한마디로 미쳤다"

`촛불 총파업`으로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인 이석행 위원장이 두달여간의 수배 생활 끝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7월 24일 체포영장이 발부된 이후 22일 조계사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
이명박 정부에 대해 "미쳤다"고 잘라 말하는 이 위원장은 향후 투쟁방향에 대해 "하반기는 `반독재 전선`으로 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난 23일 <위클리서울> 취재진과 만난 이 위원장은 현 정부가 조성하려고 하는 `신 공안정국`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른바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사건`을 그 예로 지목했다. 과거 정권은 그래도 `친북` 행위 혐의가 있어야 국보법을 적용했지만 이명박은 그것조차 아니라는 얘기다.



그는 "정권의 탄압이 강해지는 만큼,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 사이 연대의 강도와 폭도 단단해지고 있다"며 "역사적으로도 정권의 이런 탄압이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 위원장은 그러나 "박정희 유신정권 때 노조를 탄압했지만 1979년 여성 노동자들이 와이에이치(YH)무역 투쟁으로 노동운동의 불씨를 이어왔고, 전두환 정권 초기 노동운동이 초토화되다시피 했지만 87년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80만 민주노총 조합원이 생겼다"며 승리를 자신했다. 아울러 "정부가 민주노총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탄압을 계속한다면 국제 노동단체 등과의 국제연대를 모색하겠다"고도 경고했다.

촛불집회와 관련 이 위원장은 경찰이 색소총을 쏘는 모습을 지켜보며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을 비합법화했던 시절보다 더 탄압이 심한 독재 정권, 이 땅의 경제를 살렸던 노동자는 온데 간데 없고 재벌과 자본만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독재 정권 앞에 제대로 힘 한 번 쓰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비통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반기에는 여러 상황 상 어쩔 수 없이 부문별 투쟁으로 갔지만, 하반기는 그렇게 가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노동자 뿐 아니 시민사회단체, 촛불 집회에는 참여하지 못했던 정당, 참여하지 못했던 개인까지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하반기엔 `촛불 정국`보다 더 강력한 정권 반대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제는 살아날 기미가 없고, 각종 공공요금은 앞다퉈 오르고 있는데 임금은 제 자리인 상황에서 더 이상 국민들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수배 생활과 관련해서는 "잡힐 때 잡히더라도 끝까지 간다"고 얘기했다. 후임 지도 체계가 준비되는 대로 자진 출두할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서도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잡혀갈 때까지 하반기 투쟁은 내가 책임지고 간다"고 덧붙였다. 그는 "언제까지 조계사에 머물지는 단언할 수 없다"면서도 "정부가 밀어부치는 친재벌 정책만큼은 반드시 막겠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22일 조계사에서 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를 여는 것을 시작으로 활동을 재개했으며 민노총 단위대표자들도 농성장을 방문해 이 위원장과 최근 현안이나 향후 투쟁계획 등을 논의했다.

촛불집회, 새로운 운동의 모형

이 위원장은 그동안 이루어진 촛불집회에 대한 평가도 내놓았다. 이 위원장은 "촛불시위는 제가 꿈꿔왔던 새로운 운동의 모형이었다. 깜짝 놀랐다"면서 "국민들은 자신을 대상화하는 모든 세력에게 자신이 어엿한 주권자임을 선언한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또 "새로운 운동의 방법을 일깨워준 사건"이라며 "진보세력의 집회를 보면 군사문화적인 잔재가 아직 남아 있고 명망가들이 연단에 나와 얘기하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그러나 "촛불집회에서는 시민 누구나 얘기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말할 수 있었다"고도 얘기했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불거진 여타 사안들에 대해서도 일갈했다. 이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그냥 놔둘 수 없다"며 "공기업 사유화 반대하고 물가폭등을 막기 위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문제 또한 방치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여러 사안들중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언론문제. 그는 "정부가 국민의 입과 귀를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며 "`KBS사원행동` 과 언론노조가 버겁게 싸우고 있는데 이 싸움이야말로 민주노총이 받아야 할 가장 큰 과제"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지금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민주노총이 총파업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강력 경고했다. 우 대변인은 "행동해야할 야당은 자신들이 아직도 여당인 줄 안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붙들고 싸워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우 대변인은 "하반기에는 어떤 싸움을 하더라도 민주노총 전체 조직이 함께 한다. 분산된 상태로 각개약진하면 백전백패다. 민주노총 차원에서 총력 대응해 정부가 노동자들의 요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며 "총체적으로 대응해 9월부터 총력투쟁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파업 기조를 거듭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오는 10월 말까지 언론 장악과 공기업 민영화를 중심에 놓고 1차 집중 투쟁을 벌이고 △10월부터 11월까지 총력 투쟁을 통해 전면적인 `반이명박` 투쟁을 통해 범국민적인 싸움을 만들어간다는 하반기 사업계획을 확정했다.

조계사, "이러지도 저러지도…"

한편 조계사는 수배자들을 두고 고심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한때 수배자 전원을 퇴출시킬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소문은 소문으로 그친 듯 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이 들어간 뒤 조계사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이석행 위원장도 지난 25일 <위클리서울>에 "조계사에서 나가야할지도 모른다"고 밝힌 바 있다.



조계사 한 관계자는 "사실 국민대책회의 관계자들의 농성도 부담스럽다. 그런데 이 위원장까지 들어와 정말 당혹스럽다"며 "이제 어떻게든 정리가 되어야 한다고 모두들 공감하고 있어 이에 대한 논의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신도들도 불편한 기색이다. 한 신도는 "걸핏하면 파업을 하는 민노총을 조계종이 보호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까 걱정"이라며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자랑스러운 유적지 조계사에 천막 농성단이 있는 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조계사 기획홍보실 김세종 과장은 "수배자들 관련 얘기들은 소문에 불과하고 일부 언론이 과장한 것"이라며 최근 불거진 수배자 퇴출설과 관련해 극구 부인했다. 김 과장은 "종교단체로서는 약간 불편하더라도 피신한 사람들을 당연히 지켜야하는 것"이라며 "그 사람들이 갈 데라도 있으면 모르지만 설사 갈 데가 있더라도 지금 나가면 바로 잡히지 않냐"며 수배자들을 두둔했다.
김 과장은 "며칠전 이석행 위원장과 관련해서는 조계사 총무실에서 논의를 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이석행 위원장을 강제로 쫓아내거나 나가달라고 권고할 것이라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
김 과장은 또 "문제는 언론"이라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소 과장된 부분들이 많아 조계사가 당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언론문제 때문에 수배자들이나 이석행 위원장도 언론과의 접촉을 삼가고 있다"고 언급했다.  
조계종 측은 두 달 전인 7월 말 이 위원장이 조계사에 합류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왔을 당시 "민주노총은 국민대책회의와 달리 정치적인 집단"이라며 선을 긋고 합류를 거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이 위원장은 현재 조계사 생활에서도 제약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다른 수배자들과 달리 한국불교역사문화관 지하 2층에서는 잘 수 없다. 때문에 이 위원장은 자신이 직접 타고 들어온 차량이나 조계사내에 꾸려진 천막에서 자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계사 생활을 시작한 이 위원장과 민주노총이 현 정부에 대응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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