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을지로 방산시장

동대문 인근에는 재래시장이 많다. 인파가 넘치는 동대문이지만 유독 `방산시장`만은 소외받은 기분이 든다. 세상에 역 주변에 이렇게 조용한 데가 있나 싶다. 생활에 필요하지만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지 않은 생필품만 추구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이유를 떠나 방산시장 상인들에게 시장이 죽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 많은 이유들이 튀어나왔다.
"여기까지 오는 길목의 상가들 때문이야. 동대문운동장 인근 노점상들도 많잖아. 여기 오기 전에 그리로 다 가버려. 시장에 사람이 들어오지 않아. 길가에 있는 노점이나 상가에서 다 사버리니깐. 노점상들이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들 안 부럽다 하잖아. 그 사람들 인근에서 장사하는 건데 나중에는 자기네 땅처럼 생각해."



노끈 장사를 하는 상인은 노점상에 대한 불만을 연이어 토로한다.
"우리가 제일 원하는 건 노점 단속이거든. 그리고 중국에서 온 원단들이 싼 맛이 있잖아. 중국 거 갖다가 소자본으로 장사 할 수 있어. 그 타격도 있어. 그리고 예전에는 근처에 공장이 많았는데 지금은 유동인구가 적어졌고 사람들 줄어들었지."

그럼 도대체 누굴 상대로 장사하는 걸까.
"주거지역이 아니라서 장사하는 사람들 상대로 하는 거야. 그런데 지금은 다들 마트로 빠지고 이곳은 문구도매도 해. 그런데 요즘은 문구 도매도 잘 안돼. 왜냐하면 지금은 학교 근방에 문방구들도 없잖아. 다들 대형할인매장에 가서 사버리니깐."

이곳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한, 모자를 파는 60대 상인 할머니에게 가봤다. 
"나 오늘 5만원도 못 팔았어. 여기서 20년째인데 왜 여기가 안되냐고? 경기 때문이야. 노점들도 되는 거 아냐. 길이나 시장이나 다 마찬가지야. 누가 한다고 해도 안 된다고."

할머니 역시 노점에 불만이 많았다.
"나도 노점에 불만 많아. 비 오면 피할 수 있는 물받이 하나 없다는 점 등에서는 안쓰럽긴 하지만 막상 내가 굶어 죽게 생겼잖아. 난 노점에 불만이 그거야. 리어카 딱 하나 가지고 알뜰하게 놓고 장사할 것이지 장사에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진열해 가지고… 집에 있는 살림 다 갖고 와서 매대 옆에 오만가지 해놨어."



할머니는 이동하는데도 노점이 불편하다고 토로한다.
"만약 군밤 장사 할 거면 옆에다가 장작 잔뜩 갖다 놓고 깔끔하게 할 것이지 길에다가 자리 깔고 술을 먹어. 그러니 길이 막혀. 좌석 버스 타러 줄섰던 사람들 봐. 오히려 차 못 타서 길로 나가서 차를 기다리잖아. 내 생각에는 정류장을 바꿔야 해. (노점이 미치지 않는) 차라리 저 멀리에다가 버스 정류장을 만들라고."

기자는 그럼 노점들도 그쪽으로 따라 이동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내 말은 정류장을 바꾸면 노점상들은 못 오게 해야지. `당신네들 때문에 정류장을 바꾸는 거다!`라고. 오죽하면 그러겠냐고. 당신도 먹고 살아야 하겠지만 장사할 때는 리어카 하나만 알뜰하게 해서 하면 얼마나 좋아. 물론 단속을 해야 하겠지만…. 5시면 퇴근하는 구청직원이나 공무원들, 뭐 그런 사람들에게 뭘 기대하겠냐만은…."

모자가게에 오는 손님들은 주로 막노동판의 일꾼들이라고 한다. 
"작업일 하는 분들이지. 노가다 일하는 층이야. 우리네가 고가품을 팔아봤자, 만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3∼4000원인데 사람들이 와서는 1∼2000원짜리를 찾아. 중국 것들 때문에 힘들어. 돈이 없으니깐 중국에서 물건을 수입 해다가 그 바이어도 처분 못해서 가격 빼려고 싸게 파는 거야. 그 사람들이 처분하는 가격과 비교가 돼서 그것 때문에 힘들기도 해."



요즘 막노동하는 분들의 연령대에 대해 궁금했다.
"나이는 상관이 없어. 경비하는 사람들도 와서 모자를 사 가는데 그 분들이야 노인네들이 많은데 노가다들은 젊은 사람들도 많아. 노가다를 하려면, 햇빛을 가려야 하니깐 모자를 사는데, 노가다 가서도 얼마 벌지 못하니깐 3∼4000원짜리도 비싼 거야. 그러니 1000원짜리를 찾는 거지. 준비는 하고 가야 하니깐."

시장 한쪽 편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가게도 눈에 띈다. 가방, 쇼핑백, 주방용품 등 잡다한 것들이 진열돼 있다. 

"난 25세부터 장사했어. 지금 65세니깐 여기 온 지는 30년인데 노점부터 시작했거든. 양말, 속옷, 액세서리도 팔아봤고…. 지금은 빼지도 박지도 못하는 상태지. (가게를) 내놔도 덤비는 사람 없으니깐. 여기 건물주인도 세를 싸게 받는데, 가게세가 3∼40만원 하거든, 그런데도 건물 보면 비어있는데 많아. 그래도 다행히 오래 거래한 단골들은 여기로 와. 왜냐하면 설명 전달 빠르니깐. 지금 방산시장에 손님들 많이 떠나버렸어. 늦은 시간엔 손님이 없어. 예전에는 넘쳤는데 말이지.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재래시장 입구에 술판 벌이잖아. 입구를 그렇게 가로막는다고. 보면 김 새버려. 그러니 누가 시장에 들어오고 싶겠어?"



주차장 문제도 언급된다.
"노점도 단속하고 해야 하지만, 여기 주차장이 없거든. 그래서 밖에 주차하려면 차 주차 못하게 단속하고 그러니깐 누가 들어오고 싶겠어? 그리고 (이명박 시장 시절 교통체제 개선하면서) 차 노선 바꿔서 여기로 오던 버스들을 다른 쪽으로 돌려버렸거든. 번호가 다른 버스가 들어오니 오려고 했던 손님도 불편해서 안오는 거지."
벽지와 장판을 다루는 한 젊은 가게주인은 그나마 형편이 낫다고 한다. 경기가 나빠도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단다.



"무엇을 파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가게들 장사가 점점 안되긴 해요. 요즘 사람들 다들 마트로 가서 편하게 살려고 하니깐. 그리고 여기 사람들 단합이 안돼요. 개인들이 하다보니깐. 사람들이 뭐가 잘못됐는지 모르겠는데…."

방산시장은 여타 시장에 비해 깔끔한 편이다. 손님이 없어서 거리가 깔끔해졌다는 억측도(?) 제기된다.

"시장을 깔끔하게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오지 않아요. 왜 그런지 몰라. 뭐가 잘못됐는지… 너무 안오다 보니깐 거리 청소할 내용도 없네요.(웃음) 여기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주택가가 있기도 한데 사람들이 여기로 오지 않아요. 물론 경기가 안 좋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일상생활하면서 큰 불편이 없으니 여기서 뭘 사서 득이 될게 없는 이유도 있겠죠. 생필품이 많지만 1차적이라기 보다는 2차적인 생필품들이거든요."



경기가 안좋은 탓도 있지만 방산시장이 조용한 이유는 아무래도 판매하는 내용들이 일반적으로 `절실히 필요하다. 사러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 용품들인 이유도 클 듯 싶다. 상인들은 각각 가게 안에 꼭꼭 숨어서 나오지 않고 손님들도 그저 바쁘게 지나치는 풍경만이 일관되게 연출된다. 방산시장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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