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미아동 숭인시장

강북구 미아동에는 두 곳의 숭인시장이 있다. 한 곳은 간판이 없이 입으로만 지칭되는 숭인시장이고, 어엿하게 간판을 달고 있는 `숭인시장`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두 곳은 서로 인접해 있다. `숭인시장`은 음식점과 먹거리가 시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숭인시장과 차별화된다. 그래서 `숭인먹거리시장`이라고도 불린다. 이번 호에는 숭인먹거리시장을 찾았다.

시장은 대낮이라 크게 붐비지는 않았다. 몇몇 가게를 제외하고는 한가로이 저녁상을 준비하듯 요리 재료를 다듬는데 여념이 없었다. 무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지만 에어컨도 없는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아직까지는 많다는게 국수집 아주머니의 얘기다.



"지금부터 준비해야죠. 저녁에 손님들이 붐빌 테니. 아직까지는 밤 공기가 선선해서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많아요.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지요. 날이 더워서 요즘은 국수를 많이 찾아요. 비빔국수, 열무국수 등이 잘 팔립니다." 

아주머니는 본격적인 여름으로 진입해 실내가 좀 무더워지더라도 매출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말한다.

"젊은 사람들이야 더운 거 못 참으니까 자리가 있으나 없으나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지요. 그런데 나이 드신 분들이 시장을 많이 찾으니 그 틈을 그 분들이 다 메워줍니다. 여름이나 겨울, 큰 차이는 없습니다. 겨울에는 오히려 노인 분들이 발길을 돌릴 정도로 젊은 사람들이 자리를 꿰차고 있어 문제가 되기도 하지요. 또 노인들은 추위를 타니 잘 안나오는 경우도 있고 하니 날이 추우나 더우나 매출에 큰 차이가 없는 셈입니다."     



시장 인근 사무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몇몇 손님들이 국수를 주문했다. 점심시간엔 인근 사무실에서 찾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전언이다. 김치와 단무지를 더 달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막걸리 한 병 2000원. 흔치 않은 가격이다. 이 가게 주인 역시 저녁 손님을 기다리며 한참 요리 재료를 다듬고 있다. 한쪽에서는 다른 아주머니가 식탁을 닦고 있다. 상호는 없지만, 주인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했다고 한다.



"여기 시장에서는 우리집이 가장 유명하지요. 우선 막걸리가 2000원인데다 안주도 1만원 넘어가는게 거의 없지요. 물론 푸짐하게 나오구요. 언제부턴가 입소문을 타서 다른 지역 사람들도 지하철 타고 이곳까지 온답니다."

이 집의 주요 안주는 장어구이와 닭똥집구이. 물론 대부분 손님은 나이가 지긋이 든 노인들이다. 아주머니는 저녁이면 손님들이 붐빌 것에 대비해 술안주 재료는 항상 푸짐하게 준비해둔다고 한다. 



"매번 달라요. 어떤 때는 안주가 평소보다 2배 가량 나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절반도 안나가요. 그날 그날 오는 손님들 성향에 따라 다르죠. 안주를 많이 즐기는 손님들의 경우 술을 많이 안드시고, 반면 술을 많이 드시는 손님들의 경우 안주를 거의 안드시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부르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겠죠. 특히 노인들, 술값 아낀다고 안주도 아껴먹는데 결과적으론 술값이나 안주값이나 비슷해요. 건강 생각해서 안주라도 하나 더 집어드시던가…."

이렇듯 장사가 잘되는 점포가 있는 반면, 경제 위기가 곧 점포의 위기로 대변되는 곳도 자주 목격된다.



"분향소요? 노무현 대통령 서거하셨지만 분향소 갈 엄두도 못내요. 새벽까지 장사하고, 낮에 일어나서 언제 분향소 가고 언제 장사 준비하나요. 가신 거야 안타깝지만 당장 내가 죽게 생겼으니…."

국밥집 아주머니의 한숨소리다. 그래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대통령 중 재래시장과 가장 어울리는 대통령이라는 데에는 상인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 중에서는 가장 서민적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우리한테 해준 것은 없지만 가게에 오면 계란 같은 것 안던지고 국밥 한 그릇 따뜻하게 대접해 드리고 싶었어요. 한편 서민들과의 약속 안지킨게 밉기도 했지만 속마음까지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국밥집 아주머니는 그나저나 원자재 값 때문에 걱정이라고 하소연한다.
"시장 안에 음식 재료 파는 점포가 많거든요. 다들 친하고 하니, 단골가게에 수수료 없이 주문해서 음식을 만들지만 도통 경기가 회복될 조짐이 보이질 않으니…. 산나물 한바구니 사는데도 손이 벌벌 떨리니…."



원자재를 구입할 수 있는 점포들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세요. 장사되는 집이 있는지…. 며칠째 안팔려서 썩을까 걱정되는 야채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요. 싼값에라도 식당에 넘기던가 해야지 원…. 저녁에 주부들이 찾곤 하는데 야채 상태를 유심히 살피거든요. 손으로 집어서 냄새 맡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가버려요. 싸게 준다해도 쳐다보지도 않고 가버린다니까요."

야채장수 아주머니는 `떨이` 하는 날이 많아졌다고 한다.
"`떨이` 하면 가장 좋아하는 곳이야 주변 식당들이죠. `우리 사정도 이거 살 형편은 안되지만…` 하면서 다 사가요. 얄밉지만 어쩌겠어요. 서로 다 같이 살자고 하는 짓인데…."

그러나 이 시장에서 진정 `떨이`를 해야할 곳들은 의류 점포들인지도 모른다. 가게를 왜 차린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점포 사장들은 무기력해 보였다.

"새 주인이 생기면 당연히 그만둬야죠. 임대료만 까먹고 있어요. 접어야 할 때 접었어야 하는데 내가 지금까지 왜 이러고 있나 한심스러울 뿐이네요."

아주머니의 한숨이다. 아주머니는 장사가 잘되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10년 전에 처음 차렸는데 그때만 해도 먹고 살만했죠. 사람들이 IMF 직후라 백화점 옷 안사입었거든요. 시장 와서 싸게 싸게 사입는데 국가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고 있었던 우리 국민들 아니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뭐 장사 일찍 마치고 촛불집회 나가도 매출에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네요. 뉴스에서는 현 상황이 IMF보다 더 심하다고 하는데 백화점 장사는 불티난다고 하더군요. 이제는 IMF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거라 생각하고 위기의식이 없어진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나 하나쯤이야 막 쓰고 살아도 나라 안망한다`, 뭐 이런 계산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실제 그렇기도 하구요. 사람들이 똑똑해져서 나라 망한다고 협박당하더라도 이제 안통해요. 금모으기 백날 해봐야 소용없는 거 다 알고 있고…. 지금은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딱 이 두 부류인 것 같아요. 백화점이랑 친한 부류는 백화점만 다니는 것이고, 시장이랑 친한 부류는 시장만 다니는 것인데… 문제는 와야할 하층민들이 시장조차 겁이 나서 못오는 상황이라는 거죠. 저도 그래요. 시장에서 애 양말 하나 사입히는데도 이것저것 따지고 그러니…."



무더워지는 날씨만큼이나 시장 상인들의 불쾌지수도 높아져만 가고 있다. 땀방울의 대가 없이 끝이 없는 사막에서 무작정 걷고 있는 듯 딱한 처지에 놓여 있는 상인들이지만 재래시장에 대한 대책마련은 요원하기만 하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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