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사람들을 찾아서> MB 다녀간 이문동 골목상가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 경제`를 살리겠다는 취지로 한국외대 인근에 위치한 이문동 골목상가 시장을 찾았다. 지난 6월 25일의 일이다. 이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찾은 건 지난 겨울 이후 처음이다. 당시 재래시장 상인에게 목도리를 선물한 사실을 일부 언론에서 보도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인들이나 그곳을 찾는 서민들의 형편이 나아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이 대통령의 행보에도 상인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시장을 찾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시장을 오고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대통령이 이곳에 다녀간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그나마 그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들도 오히려 인상을 찌푸렸다. 족발가게 주인 아주머니에 따르면 "여기가 MB가 다녀간 시장이야!?"하며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는 손님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이문동 시장은 간판이 없는 골목상가시장이다. 상인들의 수로 봐서는 시장이라고 일컫기조차 모호해 보인다. 골목 상가로도 불리는 이유다. 이 자그마한 상가에는 분식집, 마트, 화장품 가게, 과일 가게 등이 듬성듬성 줄을 잇고 있다.

상가 초입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떡볶이를 사먹어 `유명해진` 분식집이 눈에 띈다. 취재 나왔다는 얘기에 주인 아주머니의 표정이 금새 어두워진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데요? 저는 아무것도 할 말이 없습니다. 나중에 오세요."
아주머니는 그렇게 몇 마디 던지고 빨간 양념 속에서 뒹구는 떡볶이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러나 이 짧은 몇 마디에서도 내뱉지 못한 말들이 많이 숨어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통령의 방문도 반가운 일이 아니었지만 민주당 소속 한 의원의 "떡볶이집 가지 마십시오. 손님 떨어집니다"라는 말도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이 떡볶이집 주인 아들은 인터넷에 올린 글을 통해 "우리 집이 정말 망하면 책임지실 거냐"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분식집을 나서던 몇몇 대학생들의 반응도 싸늘하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건지…. 그냥 하던 대로 하시지. 아무런 도움도 안될 거면서 시장은 왜 자꾸 돌아다니는 겁니까. 솔직히 서민들한테 관심 없는 거 이미 `뽀록` 났잖아요. 시장에 오면 겉으로는 상인들이 웃겠죠. 안 그러면 `차지철`이 같은 놈이 상가를 엎어버릴지도 모르니까요. 이 대통령이 서민을 위하고 싶다면 정책을 바꿔야죠. 저는 도통 모르겠어요. 정말 서민을 위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위하는 척만 하는지…."



분식집 옆에는 오래된 문구점이 있다. 문구점 주인은 정말 사람들이 이 거리를 들르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눈치다. 철 없는 아이들도 대통령의 `정체`를 간파했다는 얘기도 덧붙여진다.

"솔직히 이명박 대통령 지지도는 땅에 떨어진 상태잖아요. 오죽했으면 우리 애들까지 대통령을 `껌`으로 보고 있어요. 하기는 지금까지 서민들 위한다는 공약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은 걸 애들도 다 알고 있는 상태니…. 용돈 안주면 그것도 대통령 책임으로 돌린다니깐요. 왜? 대통령이 경기회복 시켜주기로 했는데 못하고 있대나 어쩐대나…."



주인 아저씨는 문구점이 잘 되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고 말한다.
"요즘 애들 모조리 컴퓨터에 빠져 살잖아요. 여기서 장난감 사들고 가는 것도 지들끼리 시시하다고 놀려요. 글도 아직 못 깨우친 어린 아이들이나 엄마 손잡고 여기 와서 장난감 사가지 머리 좀 큰 애들은 돈 안 되는 공책이나 연필만 사가는 실정입니다. 유일하게 팔리는 게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도구들인데 요즘은 이 조차도 교보문고나 대형마트에서 다 구입하잖아요. 며칠 전에 대통령이 상가에 와서 뭐가 가장 힘드냐고 물었을 때 몇몇 상인들이 대형마트가 자꾸 생겨서 큰일이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말하나 마나 아니겠나요. 하면 뭐합니까. 이미 다 생기고 말았는데. 또 앞으로 더 생길텐데 대통령은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네요."



골목 중간에는 대통령이 다녀갔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는 상황이지만 상가 구석구석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상인들은 대통령이 다녀간 소식조차도 못들은 눈치다.

"여기 아니에요. 저 쪽 석관동 가는 시장에 들렀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여기서는 대통령 본적이 없어요. 뭐 들른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나요. 청와대에만 있기가 심심해서 가끔 한번씩 나오는 거겠죠."

과일가게 아주머니의 얘기다. 아주머니는 이 골목 상가는 규모도 작고 골목도 좁아서 별로 알아주는 이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와봤자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거리도 아니라는 반응이다.



"그냥 지나가다가 잠깐 들른 거겠죠. 큰 의미가 없다고 봐요. 대통령이 다녀갔다고 갑자기 손님들이 줄을 지어서 과일을 사간다면 모를까 무슨 의미가 있나요. 대통령이 누군지 모르는 나라도 있다는데 지금 장사하는 사람들 심정이 대통령이 누군지 모르는 심정일 거에요."

아주머니는 이곳에 터를 잡은 지 20년이 됐다고 한다. 20년동안 대통령이 이곳 상가를 다녀간 것은 당연히 처음이 아니겠냐고 답한다. 그러나 그 어떤 자부심이나 영광이라는 식의 표정은 찾아볼 수 없다.

곱창을 볶고 있는 곱창가게 아주머니 역시 무심한 표정이다.
"대통령이 다녀갔죠. 그런데 결국 남은 건 저기 큰 현수막뿐입니다. 사람들이 대통령 다녀 간 거 종종 묻는데 솔직히 그게 뭐 큰 대수도 아니고…. 대통령이 누가 되던 힘든 건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사람들이 참 재미있는 게 대통령한테 무엇을 자꾸 바란다는 거예요. 역대 대통령한테 기대해서 장사하는 사람들한테 뭐가 남았나요. 장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장사만 잘하면 돼요. 대통령이 여기 와서 깔아놓은 판 뒤집어 놓지 않는 한 대통령이 누가 되던 서울 시장이 누가 되던 관심도 없어요."



아주머니는 정치에 무관심하다기보다는 정치의 속성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정부가 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해주는 것은 없잖아요. 지금까지도 없었고요. 정책만 몇 개 내놓으면 그만이죠. 물론 말도 안되는 황당한 정책 내놓으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당혹스러운 정책들로 곤욕을 치러 본 적은 없어요. 정치인들이 서민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정책 내놓는 것이고, 설사 그 정책이 좀 잘못돼서 세금을 좀 더 걷는다손 치더라도 나가는 돈 얼마 차이 안납니다. 세금 좀 더 낸다고 굶어죽는 것도 아니고… 뭐 좀 더 내면 위에서 받아 챙기는 사람이 있긴 할 것입니다만 어쩌겠어요. 그냥 이러고 살아야지. 어쨌든 살고 싶으면 각자 알아서 살 생각을 모색해야지 정치권에 무엇을 바래서는 안될 것 같아요."

이명박 대통령의 떡볶이 먹는 모습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이후 이문동 골목시장은 잠시나마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수에 있어 차이가 없다. 국정쇄신 요구가 먹혀들지 않는 이상 이명박 대통령이 어떤 시장을 찾든 서민들의 돌아간 등을 다시 돌려놓긴 어려울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이 다녀갔다는 분식집 주인이 가게 앞에 `이명박 대통령이 떡볶이를 먹고 간 분식집`이라고 써 놓을 수 없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사진은 서버 문제로 잠시 뒤 올려질 예정입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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