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수면위상지역 증후군

90도. 혹은 270도. 안정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에 좋아하는 각도다. 그렇지만 분침과 시침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90도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


여름도 다 가고 밤바람이 꽤나 차갑게 피부를 스친다. 창문을 닫을까 생각하다가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리기에 그냥 카디건을 꺼내 걸쳤다. 90도가 조금씩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새벽 3시 5분. 벌써 며칠째 밤늦게까지 잠을 못자고 있다. 밤마다 아기울음소리로 울어대는 고양이는 같은 놈인지 아니면 매일 제각각 다른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익숙하다 못해 반가울 정도다.

불면증은 아니다. 불면증은 잠들지 못하거나, 혹은 잠이 들더라도 자주 깨는 얕은 수면 때문에 고통스러운 증상이다. 나 같은 경우엔 잠이 들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면시간이 길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에게 `미녀도 아닌 주제에 잠꾸러기`란 소리를 들어왔다.


사실 최근 며칠은 잠꾸러기라는 소리를 듣기가 억울할 정도로 근면한 정도의 수면시간을 지켜오긴 했다만, 그렇다고 평균치에 미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수험생이 듣는다면 부러워서 피눈물을 흘릴 수면시간을 유지하는 건 방학기간 대학생의 필수 덕목이라는 생각이다. 어쨌거나 요는 내가 본의 아니게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은 불면증 때문이 아니라는 거다.


간단하고도 골치 아프게 설명하자면 `수면위상지연 증후군` 때문이다. 이 길고도 어려운 증상을 쉽게 풀이하자면, 내 몸 속에 있는 생체시계가 어긋나 제 시각을 가리키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밤 12시가 되었는데도 내 몸이 12시, 자야할 시간임을 모르는 것이다. 다들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며칠 밤늦게 까지 일을 한다든지 술을 마신다든지 하는 생활을 반복했더니 일찍 잠들고 싶어도 잠이 안 오는 경험. 잠이 안와 억지로 잠을 청해보고자 침대에 누워 지루한 책도 읽어보고 눈감고 평원 위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떼의 숫자를 세어 봐도 결국 잠이 드는 시간은 늦은 시각이다.


늦게 잠이 들었으니 다음 날 아침 기상시간도 당연히 늦어질 수밖에…. 특히 억지로 일어날 일이 없는 방학 때는 태양이 이글이글 아스팔트를 달굴 때까지 늘어지게 자버리곤 한다. 그러니 밤엔 또 다시 잠이 안 오고, 이런 식의 반복. 

방학 때는 낮 11∼12시에 일어나도 크게 문제될 일이 없었으니 새벽 3~5시에 잠들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오히려 늦게 잠들어도 일어나는 시간이 비슷비슷한지라 더 늦게 잠드는 편이 이로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개강도 한 상태다. 계속 이런 패턴으로 가다가는 수업시간인지 수면시간인지 분간이 안 갈 지도 모른다. `눈 떠보니 강의 끝`, 심지어 `눈 떠보니 강의 끝, 근데 나는 이불 속`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빨리 생체시계를 교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박신영 그림^^

오늘도 일찍 잠들지 못했다. 내일 아침엔 기를 쓰고 일찍 일어나야 할 텐데. 귀신의 농간인지 항상 눈을 떠보면 수개의 핸드폰 알람과 멀찌감치 둔 자명종 알람도 모두 off되어 있고, 난 그 많은 알람을 끈 기억이 없다. 그것들은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무의식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 같다.


`수면위상지연 증후군`이라는 거창한 말을 몰라도 이와 같은 시도는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거다. 자신의 생체시계를 다시 맞추기 위한 몸부림. 나처럼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기(혹은 둘 중 하나만이라도)를 시도한다든지, 여의치 않을 때는 아예 밤을 꼴딱 새고 다음날 밤에 일찍 기절하듯 잠드는 방법을 추천하는 분들도 있다. 나는 추천한 방법을 시도하다가 오히려 못 견디고 평소보다 더 늦은 시간에 잠드는 바람에 생체시계가 더 많이 어긋나 버린 웃지 못 할 기억도 있다.


그렇지만 일찍 자기, 일찍 일어나기, 밤새기 모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포기하긴 이르다. 마지막 비장의 카드가 남아있다. 앞서 언급한 것들 보다 훨씬 쉽고 간단한 것이다. 바로 광합성. 

햇빛 쨍쨍할 때 나를 빨랫줄에 널어 뽀송뽀송하게 말린다는 심정으로, 아니면 내 머리카락, 피부세포 하나 하나가 다 작은 나뭇잎인양 맛있게 햇볕을 쬐는 것이다. 솔직히 아직은 피부에 내리꽂히는 자외선이 쪼~끔 부담스러운 계절이지만, 햇빛 들어오는 창가에 등을 마주 대고 책을 읽고 있노라면 노곤 노곤한 것이 꽤 평화스러운 기분이 든다.

이렇게 광합성을 하는 것이 어떤 과학적인 메커니즘으로 내 생체시계를 바로잡아주는 건지는 자세히 잘 모르겠지만 혼자서 생각해 보건대, 내 생체시계도 늦어지고 싶어서 늦어지는 건 아닐 거란 말이다. 얼마나 자연스럽지 못한 일인가? 그런데 이 주인이란 사람은 하루 온종일 덥다고 실내에만 콕 박혀서 매일 매일 조금씩 늦게 자니 `어? 지금이 잠드는 시간인가보네?`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지금의 상태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 때 햇빛을 쨍 하고 쬐면 이 시계도 `아 지금이 햇빛이 쨍쨍할 시간이었구나! 속았다!` 하고 자체적으로 시간을 조정하게 되는 거겠지. 너무 유치한가? 아무렴 어떤가. 잠만 제시간에 오면 그만이지.

내일은 자신은 없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청소도 하고 옥상에 올라가서 이불을 널어야겠다. 그리고 옆에 의자 하나 두고 커피 한 잔 하면서 햇빛도 담뿍 마시고 와야지. 광합성 이벤트!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날씨가 화창했으면 좋겠다. 내가 광합성만 좀 하려고 하면 날씨가 흐리더라.

어느새 4시가 다 되어 간다. 소풍 전날의 아이처럼 잠을 청해야겠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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