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쌀값 대란에 분노하는 '농심'



쌀값 폭락으로 농민들이 신음하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50만톤의 쌀이 남아돌고 있다. 이로 인한 공급과잉으로 쌀값은 연이어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대북 쌀 지원이나 해외 원조 등의 방식으로 공급과잉을 해소하고, 쌀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대안도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는 강 건너 불 구경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위클리서울>은 전국 각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심각한 상황을 들어보았다.


올해 전국적인 쌀 생산량은 468만톤 규모. 지난해의 484만톤에 비해 16만톤 가량이 줄었다. 반면 소비량은 437만톤에 머물러 올해에만 31만톤의 쌀이 남아돌 전망이다. 여기에 재고 물량도 더해졌다. 현재 농협이 보유하고 있는 쌀 재고량은 20만8000톤으로 총 50만톤 가량의 쌀이 남아돌 전망이다.  
공급과잉으로 쌀값 하락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 지난 5일 기준 산지 쌀값은 80kg 한 가마에 14만6976원으로, 지난해 16만2416원에 비해 9.5%가 하락했다. 최근 산지 벼값은 지난해의 40㎏ 5만4250원에 비해 8000∼1만원, 2007년 대비 3000∼5000원 낮은 4만5000원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농민들은 지난 7월부터 올 가을에 쌀값 대란이 일어날 것을 예측했다. 전농 등 농민 단체들은 농림수산식품부에 쌀값 대란을 우려한 의견을 전달해왔지만 농림부는 묵묵부답이었다. 전농에 따르면 당시 농림부 관계자는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도숙 전농 의장은 "지금까지 농림부는 어떤 상황인지 파악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며 "기자회견이나 집회 등을 통해 자료를 들고 나타나니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꼬집었다.
한 의장은 "농림부는 시장의 재고물량 중 10만톤을 농협을 통해 사들이도록 하면 심각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며 "정말 몰라서 그랬다면 농림부 구성원들은 자격이 없는 것이고, 알면서 방관했다면 정책상 쌀값을 떨어뜨리려고 한 의도이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남은 50만톤은 쌀막걸리, 쌀국수 생산 등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려해도 처리할 수 없는 양"이라며 "북한이나 외국에 원조를 하면 되는데 정부가 쉽사리 응하지 않는 것은 쌀값을 계속 떨어뜨리겠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까지 매년 재고미 40만∼50만톤을 줄여왔던 대북지원 쌀은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 경색과 함께 중단됐다. 수확을 했지만 북에 보낼 수 없게 되자 최근 전남 광주시 광산구 본량동 풍숙마을 한 농가는 벼논을 갈아엎기도 했다. 이곳은 광주시 농민회가 대북쌀 지원을 위해 마련한 통일쌀 재배단지였다. 정상적으로 수확했다면 갈아엎은 2300㎡ 면적의 벼논에선 40kg쌀 40포대 가량이 산출될 예정이었다. 

쌀값 하락 농협은 웃고…

농민들이 거둬들인 나락은 농협미곡처리장에서 도정과정을 거친 뒤 대형마트 등을 통해 소비자의 손에 건네진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최근 쌀값 대란의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최종 소비단계에서 가격 변화가 크지 않다는 것은 결국 중간 유통단계에서 큰 마진을 보고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농민들은 "농협 미국종합처리장 조합들이 겉으로는 저가미에 대해 걱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쌀값이 떨어질 수록 이익이 커지기 때문에 농민들과 함께 가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또 "농협이 재고 쌀을 처리하려고 홍수 출하를 하는 바람에 쌀값이 폭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밖에 쌀의 공급초과 원인으로 매년 줄어드는 국민들의 쌀 소비량 흐름도 지적된다.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 2002년 87㎏에서 2007년엔 76.9㎏으로 감소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전농은 ▲ 정부의 쌀 대북지원 재개 및 법제화 ▲ 농협 미곡종합처리장의 저가미 판매중단 및 수매량 확대, 출하시기 공동 조정 ▲ 농협자체 수매가격 5만원 선지급 후 이듬해 3월 정산 등을 요구했지만 정부의 대책은 전혀 다르다. 정부는 최근 쌀 시장 과잉물량 10만톤 추가격리와 함께 수확기 벼 매입량을 270만톤으로 지난해보다 23만톤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농협과 자치단체들은 매입 자금 조기지원과 공공비축미 확대 등 과잉물량의 특별처분 대정부 건의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들이 공급량 초과로 불거진 쌀값 폭락의 근본처방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쌀값 폭락에 대한 농민들의 저항이 거세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전국적으로 반발 시위 확대

경북 상주의 장창훈 씨는 "지금 면세유가 계속 가격이 오르고 배정량은 자꾸 떨어지고 있다"며 "사실상 자포자기한 상태다. 어쩔 수 없이 산다"고 말했다. 장 씨는 "한편으로는 쌀 값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며 "대부분의 농민들이 이러한 위기감에 봉착해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4000평 짜리 땅에서 농사짓는 경우 1년 고생해야 500만원 벌기도 힘들다"며 "지난 해에는 다른 해와 마찬가지로 그나마 괜찮은 편 올해는 정말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다. 본격적인 수확철이 오면 여기저기서 `곡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씨는 "농사라는 게 한번 실패하면 그 해 농자재값, 비료값 등의 끊임없는 폭등으로 2∼3년에 걸쳐 후폭풍이 지속된다"며 "쌀 농사 이외에도 몇 가지 작물을 만지긴 하지만 사실상 소득을 올릴 물건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북 의성의 김상건 씨는 마늘 농사를 시작으로 12년 정도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중 마늘 협상 이후 마늘 파동이 일어나면서 6∼7년 동안 빚에 허덕이며 살아왔다. 김 씨는 "지금도 쌀 농사 때문에 1억3000만원 정도 빚이 있는데 정말 농사를 지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 중"이라며 "쌀값 대란이 오면 본전의 3분의 1도 챙기지 못하고 더 많은 빚더미가 쌓이게 된다"고 우려했다.
김 씨는 6학년, 3학년, 3살배기 자녀를 키우고 있는 가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처한 상황 때문에 학원도 못보내는 등 자녀들 교육 여건도 좋지 않다. 김 씨는 "빈부 격차가 도시와는 크다는 것을 느낀다"며 "교육의 질에서 나오는 격차도 있겠지만, 사교육에 대해선 급격하게 차이가 나니까, 경쟁력을 가질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면 단위의 경우 농사꾼 자녀들의 50% 정도가 동네 할머니 밑에서 자라고 국·영·수를 포기한 중학생이 한 반에 절반이 넘는다"며 "농업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천박하다 보니 농촌 가정의 악순환은 대대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경기도 여주군에서 농사를 짓는 김주철 씨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쌀 50만톤을 보내지 못하는 것은 국민적 여론이나 자신들의 지지층에 부담을 느끼는 데서 비롯된 게 아니겠는가"라며 "어쨌든 북한에 보내나 어디를 보내나 국민들을 설득하지 않으면 농민들 다 죽는다"고 호소했다.
김 씨는 "올해 날씨가 상당히 불규칙해서 지금도 생산량 때문에 다 죽을 맛"이라며 "이렇게 어려울 때 쌀값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해주지 않으면 농민들은 목숨을 걸고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경북 안동에서 농사를 짓는 김창호 씨는 "1년 소득은 주로 도지와 생산비로 지출된다"며 "지난 10년간 쌀값이 거의 동결됐는데 비료값은 200%나 오르는 등 농사짓는데 어려움이 크다. 그 과정에서 현재 순소득도 30% 떨어지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실제 소득은 1년에 400만원 정도 밖에 안 된다"며 "아이들은 커가고 생활비는 올라가고 있으니 앞날이 캄캄할 따름"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전북 전주의 김영재 씨는 "농민들 중 70%가 소작농"이라며 "동학농민운동이 100년이 더 지났는데, 100년 전의 모습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격앙했다. 그는 "앞으로 100년 후의 모습도 똑같을까봐 두렵다"며 "1년에 1000명의 농민들이 약을 먹고 자살하는데 이러한 객관적 수치가 과연 무엇을 말해주는지 정부로서는 고민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국회 앞 삭발투쟁, 벼논 갈아엎기, 그리고 농협종합미곡처리장 봉쇄투쟁까지, 농민들의 쌀값 폭락에 대한 반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8일에도 광주에선 농민들이 벼논을 갈아엎었고, 전남 곳곳에서 농협미곡종합처리장 봉쇄투쟁이 이어졌다. 쌀값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에 향후 정부의 태도에 귀추가 주목된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