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공중전화

"에휴∼."

입술을 비집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물먹은 해면처럼 몸이 무거웠다. 내 발걸음이 닿는 지욱마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어깨는 천근만근, 다리도 아프고 설상가상 지하철은 올 생각을 안했다.


오늘 괜히 하이힐을 신고 나왔나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앉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밖과 안의 습도 및 온도 차이로 더운 감이 있었다.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있자니 짜증이 훅 끼쳤다. 손부채질을 하기 위해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자리를 옮긴 먹다 남은 핫초코가 아직 따뜻한 자신의 체온을 전해왔다.

엄지 검지 두 손가락으로 종이컵을 말아 잡고 남은 세손가락으로 가방을 들고 있었던 나는 어서 빨리 이 거추장스럽고 뜨끈한 종이컵을 버리고 싶었다.

휴지통을 찾아봤다. 일단 내 근처에는 없는 것 같았다. 하이힐에 탑승한 발이 조금 아려왔지만 별 수 있나, 휴지통이 있으리라 예상되는 벤치 옆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벤치에 앉아있는 커플들에 가려서 그 곳에 휴지통이 있는지 없는지 보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헛걸음을 절약해 보고자 목을 쭉 빼서 그 쪽으로 걸어갔다. 휴지통은 보이지 않았다. 미간이 구겨지는 것은 이미 내 자의가 아니었다. 짜증이 곱절이 되는 것을 느끼며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듯 깔깔거리고 있는 커플들을 괜스레 흘겨봤다.


`뭐가 저렇게 좋아? 아주 전세 냈구만?`


저 둘이 조금만 좁게 앉아준다면 나 하나쯤은 엉덩이 붙일 수 있는 공간이 나올 것만 같아 인상을 팍 썼지만 그들은 내 표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냥 포기하고 반대 방향을 향해 휴지통을 찾아 걸어갔다. 무슨 이놈의 역은 휴지통도 없는 거야. 이제는 더 이상 따뜻하지 않은 핫초코를 그냥 원샷했다. 휴지통은 보이지 않았다. 지하철도 역시 오지 않았다.


"에휴∼."

다시 한 번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냥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뭔가 좀 없어 보이긴 했지만 다리도 아프고 힘이 없었다. 그나마 바닥에 퍼질러 앉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흡사 외진 골목길에 삼삼오오 모인 조금 무서운 부류의 고등학생처럼 불량하게 쪼그려 앉아 있던 내 눈에 얼핏 쓰레기통 같은 것이 보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내 좋지 못한 시력 탓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눈을 가늘게 구겨 그 휴지통으로 추정되는 미확인 물체를 바라봤다. 코너에 절묘하게 가려서 일부밖에 보이지 않지만 그 철제 몸통과 머리에 이고 있는 쓰레기들까지 쓰레기통일 확률이 높았다. 그토록 찾던 휴지통이건만 날 선뜻 일어서게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그 쓰레기통이 위치한 장소였다.


쓰레기통이 공중에 떠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바닥에서 조금 떨어진 벽면에 붙어있었다. 그런 쓰레기통이 있었나? 눈썹을 구겨가며 거의 감다시피 한 눈꺼풀 틈으로 보이는 것은 쓰레기통의 일부가 분명했다.


농구골대도 아니고 쓰레기통이 저런 높이에 있으면 불편하지 않은가?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창조적임을 내세우는 모 회사의 TV광고처럼 농구하듯 쓰레기를 던져 넣는 그것인가? 응차, 소리를 내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조금은 두근거리는 맘으로 코너의 그 쓰레기통에게 다가갔다.


"헐!"
코너에서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창의적인 쓰레기통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중전화였다. 내 나쁜 시력이 그것을 그저 뭔가 얼룩덜룩한 쇳덩어리로 인지하게 만든 탓에 쓰레기통으로 착각하게 된 것이다.


쓰레기통의 정체를 확인하고 나니, 내 생각을 알아챈 사람도 없을 테지만 혼자서 굉장히 쑥스러워졌다. 다만 그 공중전화가 머리에 이고 있던 것들 때문에 그런 멍청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고 스스로 변호할 수밖에.


공중전화를 앞에 두고 정신줄 놓은 사람처럼 혼자서 볼을 붉히다가 공중전화를 다시 찬찬히 쳐다봤다. 공중전화가 머리에 잔뜩 이고 있는 형형색색의 포장을 자랑하는 쓰레기들. 손에 들려있는 내가 가진 또 다른 쓰레기를 흘낏 바라봤다. 나도 그냥 여기 둘까?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었다. 내가 미쳤나보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더 부끄러워졌다.


쓰레기통화 된 공중전화가 우리나라의 시민의식을 반증하고 있는 듯 했다. 거기에 쓰레기를 버린 사람과, 그를 보면서도 제지하거나 대신 버릴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들, 또 그렇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쓰레기 수를 하나 씩 더했을 사람들.


덧붙여 그걸 보면서 잠시나마 `나도?`하고 생각했던 나란 녀석의 생각까지. 경제 발전을 나타내는 숫자에 집착하면서 그것이 우리나라의 위상이라고 믿고 또 그 숫자를 증식시키는데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이런 부끄러운 모습부터 고칠 의식을 키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주 간단한 일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 알고 있던 것들을 실천하는 것뿐이다. 공공장소를 이용할 땐 타인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벤치에 앉을 때 필요 이상으로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 것,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 따위다.


뭔가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하면 누가 그걸 모르냐고 한 소리 들을 만한 일들을 그저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어디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한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한국인이 되어야한다. 우선은 다른 사람이 아닌, 부끄러운 나 자신부터 시작해야겠지.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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