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이른 새벽의 단상

이 계절에는 새벽부터 바쁘다. 05시, 겨울이면 아직 캄캄 밤중일 시간이지만 이 계절에는 손을 대면 만져질 듯한 여명이 뽀얗고 파름하게 마당 가득 넘실거린다. 부르면 금방 신선이라도 얼굴을 내밀 것 같은, 동양화풍의 마당을 찻잔 하나 손에 들고 어슬렁거리노라면 작은 새들이 마치 인사라도 하듯 울타리 여기저기에서 포롱포롱 날갯짓을 한다.


#가로등이 빛을 잃어가는 시간

부지런한 뻐꾸기는 그새 소풍 준비를 하느라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서로를 불러대고, 대나무 숲을 침실로 사용하는 때까치와 까치들은 경쟁적으로 푸드득 푸득 날개를 털어대며 밖으로 나왔다가는 들어가고 다시 나왔다가는 도로 들어가며 왜 이렇게 날이 안 새느냐고 푸념을 한다. 새 중에서도 뻐꾸기의 소리는 유별나다. 한쪽에서 뻐꾹, 뻐꾹, 뻐꾹, 숨넘어갈 듯이 잇달아 소리를 내면 한참 뒤에 다른 한쪽에서 뻐뻐꾹 하는데 아마도 암수가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것 같다.


#새벽5시의 지붕


하늘 동쪽에서는 별 중에 별, 왕 중에 왕 금성이 깜빡거린다기보다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큰형처럼 살짝 피로한 모습으로 떠 있다. 이 별을 한참 보고 있노라면 내가 우주의 중심부로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별을 너무 오래 보고 있으면 안 된다. 상상은 좋은 일이지만 그 상상이 착각으로 전이되어서는 곤란하니까.

손에 든 찻잔 속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안마시고 뭐하냐고 나무라는 것 같다. 한 모금 마시고 다시 걷는다. 걷다가 또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다시 어슬렁거리는 자세로 걷는다. 푸른 어둠 속을 주인이 그렇게 어슬렁거리고 다니노라면 개들이 의아해서 끄응끙 소리를 낸다.


#먼동이 틀 즈음



가까이 다가서면 인사를 차리느라 앞다리를 길게 뻗고 허리를 곧추세우면서 으응, 소리와 함께 기지개를 켠다. 꼬리를 흔들 때의 그것과는 다른, 각별한 친밀감을 드러낼 때 개는 기지개를 켠다. 이 독특한 인사방식의 기원이 어떻게 되는지는 내가 아직 모른다. 흥미진진한 공부가 될 거라는 예감은 있다.

그러나 새벽은 머리로 공부하는 시간이 아니다. ‘너’와 ‘나’의 어떤 것을 온 몸으로 나누는 어떤 느낌의 시간으로 만족해야 한다. 사람과 새벽의 관계는 어쩌면 그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느낌, 그래, 그것이 있다. 찻잔을 손에 들고 서서히 걷히는 어둠 속을 걷노라면 이윽고 눈이 밝아진다는 느낌이 든다. 소리만 들리던 작은 새들이 보이고, 이제 막 피어나는 꽃들이 마치 옷을 벗는 사람의 동작 하나하나인 듯이 눈에 다 보인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갑옷을 벗듯이 뚜껑을 열고 피는 양귀



#옷을 다 벗은 직후의 양귀비



#만개 상태의 양귀비


#새벽에 보는 불두화 혹은 수국


실제로 양귀비는 갑옷 같은 두꺼운 옷을 벗는 방식으로 꽃이 핀다. 다른 꽃들은 대개 꽃봉오리 시절의 봉오리 자체가 꽃잎으로 피어나거나 꽃받침으로 남아 마지막을 같이하지만 양귀비는 꽃과 봉오리가 완전히 다르다. 갑옷 같은 딱딱한 껍질을 벗어 던지는 방식으로 피는 것이다. 그래서 꽃이 피는 이른 아침에 한참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시리도록 부릅뜨고 발이 저릴 때까지 가만 서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옷이 벗겨지는 어느 한순간이 사진에 찍히듯이 눈에 딱 보이기도 한다.


#온갖 꽃들에도 새벽이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 양귀비의 특성을 제거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마약 성분을 제거하고 꽃만 피우게 할 수 있었을까. 육종학의 현주소는 한편으로 경이롭고, 다른 한편으로 공포스럽다. 필요에 따라, 혹은 어떤 사명감에 의해 유전자를 임의로 조작해서 전혀 다른 모양을 만들어내는 육종학의 현주소는 노자의 가르침에 따르자면 작위(作爲)가 된다. 작위의 끝은 그리 썩 아름답지만은 않다.

어느새 찻잔 속의 차가 다 비워졌다. 빈 잔을 들고 다시 걷는다. 금성은 벌써 퇴근을 완료했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은 급격하게 그 빛을 잃어간다. 이제 곧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갈 것이다.


앞집에서는 병원 구내식당에 직장을 둔 아주머니가 출근 준비를 하느라 물소리를 내는 한편 상0이 아부지, 상0이 아부지, 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밥을 안치랴 국거리를 준비하랴 목전에 다가온 농사철 생각을 하랴 입고 나갈 옷을 고르랴 동분서주하는 그 모습이 한눈에 고스란히 보이는 듯하다. 멀리서 누군가는 벌써 트렉터를 몰고 나와 논갈이 준비를 하느라 엔진 소리를 낸다. 개구리들도 뒤질 새라 개골개골 부지런을 떤다.


#아침을 기다리는 해당화

오래된 감나무에서 따라라라락 소리가 난다. 마치 드럼을 치듯이, 장구채를 놀리듯이 그렇게 음악을 연주하는 딱따구리의 삶은, 먹을 것을 찾아내는 그 방식은 경이롭다 못해 숭고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귀로 들을 수도 없는, 오래된 나무의 저 깊은 어딘가에서 꼬물거리는 애벌레를, 세속에 한 번도 노출된 적이 없는 그 비밀에 쌓인 무슨 원소의 덩어리 같은, 생명의 기원인 것도 같은 뽀오얀 애벌레를 딱따구리는 그렇게도 아름답게 음악을 연주하는 방식으로 찾아내서 먹는다.

아름은 앎이요, 앎은 곧 삶이라고 했던가. 모르면 못 한다. 아니까 한다. 알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때도 한다. 앎에의 의지에서 나오는 행위는 그래서 아름이 되고 우리는 그것을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노동이 즉시 음악이 되는, 음악은 곧 노동이 되는 딱따구리의 삶은, 그 생애는 도무지 아름답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한 집 건너 옆집 할머니


드디어 동쪽이 물들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금방이라도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릴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할머니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아침 식전이면 어김없이 고추밭을 한 바퀴 둘러보고 들어가서 아침을 준비하는, 한 집 건너 옆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께서는 가끔 ‘콩밭 메는 아낙네야’로 시작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언덕바지를 올라오곤 하신다.

“일찍 나오셨네요. 너무 늦지 않게 비가 내려줘서 정말 다행이에요.”

“아이고 그렁게라. 내가 그냥 몇날며칠이나 잠을 못 잤는디.”

할머니는 구부렸던 허리를 펴고 손으로 탁탁 두드리며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는다. 고추모종을 끝낸 뒤로 보름이 넘도록 빗방울 하나 듣지 않았었다. 농사철도 아닌 이른 봄에는 그리도 자주 내리던 비가 정작 농사철이 되면서부터는 한 방울도 비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여기서 저기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모터를 수리하는 등으로 부산을 피웠다. 그러나 할머니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장비도 없고 경운기도 없기 때문이었다. 마을의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밭에 물주기가 다 끝나면 도와드릴 테니 기다리라는 말만 믿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어린 고추 모종이 말라서 타 버리기 전에 비가 내려 주었다.


#왜 그러냐고 묻는 듯한 개


할머니의 입에서 절로 노래 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할머니는 그렇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시금 언덕바지를 올라간다. 거의 구십도로 휘어진 허리를 오른손으로 탁탁 두드려가며 올라가는 할머니, 그 모습을 보아온 지도 벌써 오 년이나 되었다. 처음에 그 모습을 보고는 철없이 안타까워서 여쭤본 적이 있었다. 평생을 농사만 짓고 사셨는데 이제 그만 하시고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이고 모르는 소리 마시오. 누가 돈 보고 일한다요. 내가 살아 있으니께 일도 하는 것이제. 방구석에 우두커니 앉았으믄 병만 생긴당게라.”

그때 알았다. 아니 알 것 같다는 마음이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노동이 무엇인가를, 사람과 노동의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를 어렴풋이나마 알겠다는 마음이었다.


#희망처럼 물들어가는 아침햇발

다시 딱따구리의 따라라라락 하는 경쾌한 음악 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아랫집에서는 출근하는 아주머니의 스쿠터 소리가 멀어져 간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해가 솟았다. 아직 짝을 구하지 못한 뻐꾸기는 뻐꾹, 뻐꾹, 뻐꾹, 자지러드는 소리를 내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을 한다.

동양화풍의 시골 아침은 이렇게 열리고, 이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은 늦여름에 수확할 옥수수를 심어야겠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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