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용산’ 홍대입구 ‘새끼식당’ 두리반에선 무슨 일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까. 홍대입구역 지척인 ‘새끼 식당’ ‘두리반’은 6개월째 거대 자본이 자행하고 있는 강제철거에 맞서고 있다. 용산참사가 채 해결도 되기도 전 두리반은 용역에 의해 무참히 짓밟혔지만, 강제철거 이틀 뒤 농성에 돌입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칼국수와 보쌈, 만두전골 등으로 이 일대 직장인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던 두리반. 사장 안종려 씨와 그의 남편 소설가 유채림(‘금강산, 최후의 환쟁이’ 저자) 씨는 “점심시간이면 늘 손님들로 가득 찼었다”고 회상했다. “이 근처 어딘가에서 두리반 장사를 재개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이들 부부의 욕심이라면 욕심이다.



성탄 전야의 폭거

2005년 3월 보증금 1300만원, 권리금 1억300만원에 장사를 시작한 두리반. 안종려 씨는 식당 운영을 위해 찜질방 청소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공항철도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리면서부터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때마침 마포구청은 2006년 3월 안 씨 가게를 포함한 동교동 167번지 일대를 ‘지구단위계획지역’으로 지정했다. 2008년에는 법정에서 공방이 이어졌다. 국민 경제생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리반은 그 법에 의해 패소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10조에서 임차인은 최장 5년까지 계약갱신요구권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했지만 그 예외조항이 있었다. 동법 10조 1항의 7에서 “임대인이 목적 건물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철거하거나 재건축하기 위하여 목적 건물의 점유를 회복할 필요가 있는 경우”라는 부분이다.

공사계획이 본격화되면서 200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두리반은 강제철거 당했다. GS건설은 용역 30여 명을 앞세워 두리반을 강제로 들어냈다. 끌고 온 5톤짜리 트럭 두 대에 실린 집기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들어낸 뒤, 두리반 앞에는 철판까지 둘러쳤다. 하필 12월 24일, 모두가 들떠 있을 때여서 안 씨 부부의 슬픔은 더욱 컸다.

두리반이 강제철거당하면서 안 씨 손에 들어올 수 있는 돈은 고작 이사비용 70만원이었다. 100만원을 주겠다, 아니 300만원을 주겠다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안 씨와 남편 유 씨는 강제철거 이틀 만에 농성을 시작했다.



떠올려지는 용산

두리반과 용산참사. 여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정부의 대응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임대차보호법, 도정법 등은 용산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탐욕에 눈 먼 건설사들은 용산참사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었다. 용산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철거를 동절기에 강행한 점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안 씨 부부에 따르면 임대차보호법 관련 확정판결이 나기도 전, GS건설의 용역들은 두리반 뒤편에 있던 라틴댄스클럽 4층 건물 유리창을 모조리 박살낸 것으로 모자라, ‘위험’ ‘철거’라는 말을 휘갈겨놓는 등 노골적으로 고사시키는 작업을 일삼았다.

손님이 끊긴 클럽 측은 항소심 비용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앉아서 죽는 길을 택했을까. 라틴댄스클럽은 1심이 확정되자 3개월도 못 버텨내고 떠밀려나갔다. 제가 이 모든 걸 눈앞에서 목격했다. 법은 무질서하고 난폭했으므로 두리반은 법과 맞선 것이다.”

유 씨는 “이럴 땐 법, 저럴 땐 무법으로 삭도를 휘둘러대는 GS건설의 법 타령에 두리반은 의연히 무법으로 맞서겠다고 선언했다”며 “‘이건 아니다. 어딘가에서 영업을 재개할 수 있기 전엔 결코 나갈 수 없다’는 다짐을 했다”고 밝혔다.

건설사에 대한 비난도 이어졌다. 유 씨는 “웰컴씨티라는 유령회사를 만들어 종로구 청진1지구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던 GS건설이 실로 어떤 곳인가. 개발 시행사인 메트로피에프브이의 실제 주인인 GS건설이 실로 어떤 곳인가”라며 “두리반 일대를 개발하면서 또다시 남전디앤씨라는 유령회사를 내세웠고, 유령회사를 세울 때마다 자금이 흘러간 흔적은 있는데 되돌아온 흔적은 없지 않았느냐”고 주장했다.

유 씨는 “그러니 투쟁이라도 하지 않으면 라틴댄스클럽처럼 말라죽거나, 이미 쫓겨난 신발가게처럼 유리걸식하는 게 고작”이라며 “평당 800만원 땅을 평당 8000만원에 팔았으니 두리반 건물주는 떼돈을 벌었다. 평당 8000만원씩 주고라도 사들인 GS건설은 또 분양사업을 해서 얼마나 많은 돈을 챙길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지방선거 결과가 고무적이긴 하나 근본적인 문제를 바꾸진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반MB 전선의 의미는 있으나, 이러한 전선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철거민 농성에 힘을 실어 줄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수도권 일대만 하더라도 실제 520여 곳에서 지금도 농성이 벌어지고 있다. 선거에서 승리한 야당이 축배를 드는 순간에도 광명시와 남양주 일대에서는 강제철거가 집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때론 무혈입성 하는 용역들도 눈에 띈다.

이 때문에 유채림 씨는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유 씨는 “사회적 분위기가 변하긴 해도 본질적인 것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시절에도 철거 문제는 빈번히 벌어지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월드컵 열기와 맞물려 두리반 투쟁의 열기가 가라앉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두리반과 연대할 정도로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월드컵과 두리반의 일을 각각 다른 사안으로 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유 씨는 “우리는 소박한 단 하나의 요구만을 해왔다. 이 근처 어디선가 두리반을 재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라며 “얼마 안 되는 이사 비용 얘기는 제발 접어두고, GS건설이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힘 보태는 시민사회

두리반과 용산참사. 여기에는 삶과 죽음이라는 큰 차이가 있다. 용산은 6명의 죽음 때문에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투쟁이 지속됐었다. 반면 ‘두리반 연대’는 지금까지 비교적 밝은 모습으로 투쟁에 임하고 있다.

6개월 여 동안 이어지고 있는 투쟁 기간 중 큰 성과는 투쟁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다양한 시민사회 인사들과 일반 시민들이 두리반 사수를 위해 결집하고 있다.

‘홍대앞 거리’라는 특징 때문이랄까. 특히 홍대 일대 인디밴드들의 콘서트는 투쟁의 피드백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유 씨가 소속된 한국작가회의 회원들의 방문도 잦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작가회의 김남일 사무총장도 다녀갔다. 일제고사 거부로 2008년 해임 당했던 최혜원 교사는 이곳을 아지트 삼아 드나든다.

다채로운 행사들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월요일에는 ‘하늘지붕음악회’, 화요일에는 ‘푸른영상 영화상영회’, 목요일에는 ‘촛불예배’, 금요일에는 ‘칼국수음악회’가 열리는 등 시민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매 농성때 마다 ‘뉴페이스’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것. 물론 농성 초기에 함께 한 사람들이 절연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유 씨는 “두리반 지킴이가 고정적이면 지치게 마련”이라며 “다양한 인물과 세력들이 들쑥날쑥 하는 편이 오히려 투쟁의 활력소가 된다”고 했다.

두리반의 든든한 후원자인 인디밴드, 작가회의 그리고 다양한 시민사회 인사들은 언제든지 두리반의 정상화를 위해 기타를 들고, 펜을 들고, 촛불을 들 의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유 씨는 “이 때문인지 아직 굴삭기나 용역이 함부로 침범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두리반 해체는 자칫 민감한 벌집을 건드리는 작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예술가들이 ‘뒤를 봐주고 있다’는 우스갯말도 던진다.

유 씨는 “두리반은 더 이상 보잘 것 없는 작은 건물이 아니”라며 “빠른 시일 내에 반드시 정상화 될 것이며 이는 제 개인의 요구가 아닌 시대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두리반 정상화에 대한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당국과 GS건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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