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감사하는 삶

유난히 더운 날이었다. 햇빛이 짜증스럽게 정수리에 따라 붙었다. 어느덧 땀이 나 이마에 앞머리가 들러붙는 느낌이 들었다. 끔찍하게도 바람조차 없었다.

손바닥으로 만든 조그만 그림자에 얼굴을 밀어 넣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연스럽게 미간에 빗금이 생긴다. 지나는 사람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빨리 에어컨 빵빵한 실내로 들어가는 것만 생각하며 초조하게 신호등의 녹색불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워 죽겠는데, 원래 이렇게 빨간불이 길던가. 크게 효용도 없을 게 분명한 손부채질만 연신 해댔다. 횡단보도 앞에는, 어느덧 나와 비슷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할아버지 한분도, 그 사람들 중 한명이셨다.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는 그저 빨리 초록불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인 내게 큰 관심사가 못되었다. 다만 곁눈으로, 몸이 조금 불편해 보이신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드디어 신호등에 녹색불이 들어왔다. 나에겐 초록불이 켜져 있는 시간은 횡단보도를 가로지르기에 충분하지만, 할아버지에겐 그렇지 않으신지 녹색불이 켜지기 무섭게 할아버지는 뛰기 시작하셨다. 물론 그 속도가 ‘뛰는’ 속도인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걷는 속도로 뛰고 계신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레 걸음이 늦춰졌다. 차마 앞질러 갈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의 등은 거의 직각이라고 봐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굽어있었다. 옆에 있을 때 알아채지 못한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 굽은 등으로 달리시려니, 뭔가 굉장히 힘에 겨워 보이셨다. 굽은 등 때문에 앞 뒤로 크게 휘젓는 팔과 겅충겅충 뛰는 두 발이 왠지 안쓰러웠다.

벌써 깜박이기 시작하는 신호등 불에 할아버지 표정이 더 조급해지셨다. 우리와 같이 서 있던 사람들은 벌써 거의 다 건너가고 이제야 뛰어드는 사람들과, 애매모호한 표정으로 뒤따르는 나만이 할아버지의 뒤에 있을 뿐이었다.

드디어 건너편 인도를 밟으신 할아버지께선, 숨고를 틈도 없이 걸음을 재촉하셨다. 뒤 따르는 내 생각으로는, 이제 횡단보도도 건넜겠다 저리 서두르실 필요도 없으신 것 같은데 가쁜 숨으로 왜 저리 걸음을 재촉하고 계신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정 없는 햇빛에 행여 쓰러지시기라도 하실까 마음만 졸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뒤에서 걷기를 몇 분, 할아버지께서 왜 걸음을 재촉하시는지 알 것만 같았다. 물론 내 추측일 뿐이지만. 할아버지께서 그 굽은 등으로 인도를 지나가면 행인들의 눈길이 할아버지의 등으로 따라 붙었다. 아마 그것이 그렇게 편한 일은 아니리라. 몇 쌍의 눈들이 ‘아이고 저런…’ ‘불쌍하기도 하시지…’ 하는 시선을 던졌다. 몇몇은 할아버지를 보고 자세를 바로 고쳤다. 할아버지께서 걸음을 재촉하신 진짜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그런 반응 앞에 오래 있고 싶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와 가는 길이 갈렸다. 조금씩 멀어지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늦췄던 걸음 속도를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아무래도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 줄곧 컴퓨터 앞에 물음표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있는 나이기에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었다. 스스로 조금 어색할 정도로 바른 자세로 걷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이다. 건강한 몸이 있어서. 아직은 건강해서. 이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조금은 기분이 더러워졌다. 난 대체 뭐로부터 안도하는 것일까.

텔레비전에서는 가끔 장애우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환자들, 너무나 가난해 삶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난 그런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자동적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된다. 그들이 실제로 자신의 삶에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그저 불쌍하게 보게 된다. 내가 불쌍하게 보는 것 때문에 그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동정 받을 사람들은 브라운관에서 씩씩하게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저 사람들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아아 불쌍해’ 하는 말이 튀어나오곤 한다.

그리고 바로 뒤를 잇는 것이 ‘난 저렇지 않으니 다행이야’ 하는 치졸한 마음이다. 사지 멀쩡하게 태어나고, 큰 병 없이 건강하고, 먹고 입는 것 크게 걱정치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의 존재로써 감사하게 된다.



이것이 너무나도 큰 감흥이어서, 인간극장이라든지 하는 프로그램을 한번 보면, 끝까지 보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난 정말 이런 프로그램을 너무나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내 스스로가 너무 치졸해보여서 그런 프로그램이 나올 때면 일부로라도 다른 채널로 돌려버린다.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남이 없는 것을 보고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것은 치졸하다. 항상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사는 사람은 모자란 이를 보고, ‘아 저들은 없는데 나는 있구나’ 하지 않는다. 당연히 내가 있으니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아량은 치졸하지 않다. 그들은 모자란 이를 불쌍히 여기고 그로부터 안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야한다. 너무 어려운 일이다. 남들은 나보다 더 월등하고 또 많이 가졌는데 상대적으로 그들에 못 미치는 내가 내 지닌 것에 감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종교들이 ‘작은 것에도 감사하라’고 말하는가 보다. 난 비록 믿는 종교가 없지만, 그 말은 정말 진리인 것 같다. 작은 것인 줄 알면서 감사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곧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오늘 길에서 뵌 그 할아버지께도 감사드린다. 이 더운 날, 할아버지께서 별일 없이 목적지까지 도착하셨길….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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