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군수와 군의회 의장의 성희롱 문제가 불거진 이후 나를 돌아보니 내가 참 바보였다. 시골에서는 그런 자질구레한 문제로부터 해방될 줄 알았다. 세상을 살면서도 어떻게 살 것이냐고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그런 고통의 시간이 시골에서는 하나도 없을 줄 알았다.

도시에서는 그런 소모적인 고민이 너무도 많았다. 이게 사는 것인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공부랍시고 하는 것은 태반이 내 자신의 내적 자산을 위한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일회성 시험용일 뿐이었다. 돈을 쓰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쓰는, 돌아도 돌아도 끝나지 않는 쳇바퀴 속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나 자신이 너무도 불쌍했다. 그래서 과감하게, 정말이지 너무도 과감하게 도시탈출을 감행했다. 그리고 탈출에 성공했다. 이제 됐다고 생각했다. 오직 행복만을 노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 이런 바보가 있었다니.


#문과 문이 겹칠 때

하긴 무인도에서라면 그런 행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굳이 무인도가 아니라도 조지 소로우처럼 깊은 숲속 호숫가에 세 평도 안 되는 오두막 하나 달랑 지어놓고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에만 천착할 수 있다면 그런 행복이 가능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아무나 살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속담은 이런 데서 위력을 발휘한다.

밤에는 전깃불을 켜고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를 하며 인터넷이 없으면 하루도 못 살 것 같은 삶을 살면서 조지 소로우 운운하는 것은 정말이지 가당치도 않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문득문득 그런 삶을 원한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마땅찮아서 눈을 감고 싶을 때, 귀를 막고 싶어질 때면 나도 모르게 그의 삶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문을 지나면 또 문이 있더라

도시와 시골의 상징적인 차이를 말하자면 아무래도 문을 예로 들어야 할 것이다. 도시의 문은 항상 닫혀 있지만 시골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대문 같은 것은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잠금장치가 거의 없다. 집을 새로 짓거나 대대적인 수리를 할 때 구색을 맞추느라 대문을 달기는 하지만 이내 거추장스런 존재가 되어버린다. 때문에 시골의 대문은 태반이 담벼락에 딱 붙어선 채로 마치 눈물을 흘리듯이 시뻘건 녹물을 흘리며 썩어가거나 넝쿨장미 같은 꽃나무들의 지주대로나 이용될 뿐이다.

대문이 아예 없거나 있다 해도 항상 열려 있다는 것은 사람의 출입에 허락이 따로 필요치 않다는 얘기가 된다. 누구든지 언제라도 집주인이 있거나 없거나 잠시 들어와서 물 한 바가지 정도는 마시고 가도 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것은 그만큼 지킬 것도 감출 것도 없다는 얘기인 한편 ‘네가 나를 원한다면 언제라도 너에게 나를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문을 통해 문을 보다

도대체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서 죽는 줄을 알면서도 죽는 순간까지는 죽지 않고 살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엄숙한 질문 앞에서 무엇을 감출 것이며 무엇을 지키고자 할 것인가. 보물은 무엇이고 보물이 아닌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스스로 때를 알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때가 되면 죽을 줄을 아는 대자연 전체가 재산이 아닌가 말이다. 시골에서는 굳이 공부를 하고자 하지 않아도 이러한 삶의 철학이 저절로 가슴에 새겨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아무 거리낄 것이 없이 자유분방하면서도 타인을 해치는 자유에까지는 이르지 않는 절묘한 삶의 철학에 평지풍파를 일으켜놓는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정치를 첫손에 꼽아야 할 것이다. 정치는 크거나 작거나 굉장히 많은 비밀로 이루어져 있다. 비밀과 음모의 총체라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정치인들은 그들 자신이 수수께끼이면서 수수께끼 자체를 먹고 살아간다. 물론 모든 정치인이 다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보기 드물게 진실로 자기 개인의 출세욕망이 아닌 다중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고민하는 정치인이 있기는 하다.


#시골살림은 꼭 이와같다

문제는 그런 진실한 정치인이 너무도 적다는 데 있다. 지방자치 제도가 전면적으로 실시된 이후 수많은 지역 정치인들이 출현했지만 그 점수는 초라하다 못해 처참할 지경이다. 그나마 도시에서는 감시의 눈길이라도 있어서 그 정도가 덜하지만 시골에서는 그것조차도 아니다. 감시의 눈길은커녕 상대편 진영이 아닌 한 의심조차도 거의 하지 않는다.

데카르트는 자기 자신조차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시골 사람들에게 있어 의심이란 아무 ‘쓰잘데기 없는’ 정신의 낭비일 뿐이다. 지역 정치는 바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이른바 토호로 분류되는 세력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토호 자신이 선출직에 출마를 하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때문에 토호가 아닌 사람은 당선이 되었다 해도 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 여간한 강단이 아니고서는 보이지 않는 손에 맞서 싸울 수도 없다.


#안에서 보는 밖은 항상 환하지

이 보이지 않는 손들의 조정능력이 어느 정도인가는 갑자기 새로운 도로가 뚫렸을 때 그 주변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도무지 길을 내야 할 이유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장소에 새로운 차도가 뚫렸다면 반드시 그 주변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손들의 일가친척이나 그 선후배 중 누군가의 대형 사업장이 있거나 아직 없다면 새로 들어서게 되어 있다.

신기한 일은 지역 주민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라 다 안다는 점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라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준다는 점이다. 몰라서 당하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당해주는 것이다. 주변에서 누군가 심하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도 사정은 별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이러니저러니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내 보이지 않는 손들의 공작에 의해 하나의 결론으로 치달아 간다. 심하게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사실은 하나도 억울할 게 없구나 하는 식의 결론이다.


#열려 있어야만 하는 우리집 대문

도시에서 살다가 시골로 탈출해 온 자의 눈에 이러한 일들은 참으로 어이없고 괴상하고 낯선 풍경이었다. 무슨 이런 패배적인 보수주의자들이 다 있는가. 그런 생각으로 하다못해 의정감시단 같은 것이라도 하나 조직하자고 나서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을 잘 모르는 자의 서툰 객기일 뿐이었다.

지난 오륙 년 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지역 주민들에게 있어 정치란 으레 그런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정치란 ‘그들’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삶의 미세한 떨림을 음미하며 살고자 하는 대다수 시골 사람들에게 있어 이것은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에 관한 문제였다. 아무리 고친다고 해봐야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 하는 식의 패배주의가 뼛속에 새겨지고 유전인자에까지 각인된 탓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시각을 조금 달리해서 보자면 하나의 초월 내지는 달관 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열리지 않는 문

하나의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있더라. 그 문을 열면 끝나겠지, 이제는 마지막이겠지 하고 열었는데 또 다른 문이 앞을 가로 막더라.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얼마나 산다고 평생 문만 열다가 말 것인가.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마음 편하게 유유자적 하고 싶다. 그러면 그런 세상을 그대로 물려받게 될 후손들이 불쌍하지 않느냐고? 후손은 후손들 나름의 몫이 있는 법이다. 지금을 사는 사람이 어찌 후손들의 일까지 관여하겠는가. 이것이 내가 그동안 관찰한 시골 사람들의 세계관이었다.

이러한 세계관의 옳고 그름을 여기서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분명한 역사적 교훈 하나는 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명목상의 주인인 유권자들이 실질적인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그런 도피적인 관용정신이 파시즘을 낳고 파시즘의 칼날은 궁극적으로 내 목을 겨누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러니 어찌 함부로 눈을 감을 수 있으랴. 어찌 귀를 막을 수 있으랴.


#이 문을 열면 무엇이 있을꼬

그러나 괴롭다. 눈을 감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눈을 감고 싶고, 귀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문득문득 귀를 막고 싶어지는 지역의 정서가, 그 나른한 관용정신이, 그 패배주의가 못내 괴로워서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쪽 문에서 보는 저쪽 문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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