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키 이야기

키. 대한민국에서, 아니 비단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키는 꽤나 민감한 문제다. 얼마 전 모 TV 프로그램에서 한 여대생이 180cm 이하의 남자는 루저라고 언급했다가 큰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었을 만큼 사람들은 키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여자보다 남자의 경우가 훨씬 심하다.

내 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항상 반에서 키 작은 걸로 꼽으면 1~3등 사이에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보다 한 두 살은 어려보일 정도로 성장이 더딘 편이었다. 애가 워낙 입도 짧고 말라서 엄마의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같은 반 아이들이 내 동생더러 ‘귀엽다’ ‘아기 같다’ 하는 것이 엄마의 귀에 곱게 들릴 리가 만무했다.

어디선가 보약을 지어 오셔서는 동생에게 억지로 먹이곤 하셨는데 그 때문인지 입맛이 붙어서 진공청소기처럼 밥을 ‘마시기’시작했다. 살이 찌기 시작하고, 키도 이젠 꽤 커서 귀엽다고 부르기엔 너무 징그러워져버리고 말았다.

엄마는 그런 동생의 지금 모습이 꽤나 흡족한 모양이지만, 누나로서는 귀여운 동생이 귀엽지 않게 되어버린 것 때문에 좋으면서도 씁쓸한, 꽤 미묘한 기분이다.



동생에게 ‘이미 귀여운 건 물 건너가 버렸으니 키라도 더 커서 훈남(훈훈한 남자)이 되어라’하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지금도 170 중후반대 정도는 되는 것 같지만, 시대가 원하는 것이 180cm이상의 장신이니 동생은 아직 멀었다.

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동생은 눈을 흘기며, 이제 와서 또 크면 얼마나 크겠냐며 이제 그만 좀 하라고 한다. 나나 엄마나 희망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을 어쩌겠는가. 키가 더 자라지 않으면 누나가 깔창(신발에 까는 키높이 깔창)이라도 사주겠다며 설레발을 치면 동생은 그런 내게 “누나!!!” 소리를 빽 지른다. 그럼 나는 쌜쭉거리며 “깔창이 어디가 어때서 요즘에는 깔창도 센스다 뭐∼” 한다. 아이돌 스타들이 당당하게 깔창을 낀다고 밝히면서 키높이 깔창이 그다지 부끄러운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내 주위의 남자애들은 깔창에 대해서 ‘부끄러운 것’, ‘숨겨야 하는 것’으로 보는 부정적인 편인 반면, 여자애들은 의외로 깔창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나 같은 경우는 내 키에 맞춰주는 것 같아 배려 받는 느낌에 깔창 끼는 남자가 싫지 않다. 대부분의 여자들도 이처럼 깔창을 ‘센스 있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내 키는 168cm다. 어떤 이들은 ‘너무 크다’라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보통’이라고 말한다. 누가 내게 170정도는 되어 보인다고 말하면 나는 펄쩍 뛰며 아니라고 한다. 그건 칭찬이 아니다. 여자애 키가 170cm가 넘으면 남자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해도 큰 여자애는 귀염성이 없다.

나랑 친한 친구들은 작은 편이다. 특히 대학에 와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150대 후반이거나 160대 초반. 그중 나랑 가장 친한 친구는 나와 족히 10센티는 차이가 난다. 나한테 ‘괴물’이니 뭐니 해대서 억울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대학 와서 친해진 남자애들도 키 큰 아이들이 별로 없어서 내가 힐을 신거나 하면 곁으로 오는 것을 매우 꺼린다. 남자의 적이라고 힐난하는 친구도 있었다. 난 스스로 그렇게 큰 편은 아닌, 딱 좋은 키라고 생각하는 데 주위에서 이런 식의 반응을 보여 버리면 내 생각에 자신이 없어지고 만다. 힐을 신었다가, 잠시 생각한 뒤 운동화로 갈아 신은 적도 종종 있다. 내가 이 정도인데, 나보다 더 큰 아이들은 콤플렉스가 되기도 할 것 같다.

난 내가 높은 힐을 신어도 나보다는 큰 남자가 좋다. 물론 키가 나보다 작아도 나와 만나만 준다면 황송한 솔로부대원이지만, 이상이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내가 어떤 신을 신어도 나보다 크려면 180이 넘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키는 174cm. 180이 넘는 장신들은 10%에 불과하다. 그 10%중에 나를 만나주실 너그러울 분이 존재할 확률은 얼마나 될 것인가. 암담하다.

더 큰 문제는 여자가 170cm든, 168cm든, 158cm든 다 하나같이 이상형에 180cm이상의 장신을 꼽는 다는 것이다. 10%에 프리미엄까지 붙어버린다.

그러고 보면 이상적인 키라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가 말이다. 이러니 깔창에 대한 인식이 안 바뀔 레야 안 바뀔 수가 없지. 결코 작지 않은 대한민국 평균키의 남자라도 깔창을 끼지 않으면 이상적일 수가 없는데 어쩌겠는가. 깔창이 필수적 ‘센스’가 될 수밖에.

이건 정말 불합리한 일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솔로탈출에 제동을 거는 것도 모자라 이런 불합리에 치인 남자들이 내게로 와 ‘남자의 적’이라며 엄하게 화풀이를 하고 있으니 나로서는 영 맘에 안 드는 불합리이다.

키가 크든, 작든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물론 이상적인 키는 호감을 얻기에 쉬운 요건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향기이다. 어떤 향수를 쓰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풍기는 인간성, 내면의 향이 가장 중요하다.

훤칠한 외모와 달리 속은 구린내를 풍기는 사람, 외모는 별 볼일 없지만 샘과 같은 맑은 향기를 풍기는 사람. 곁에 두고픈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자들아, 깔창을 껴라. 다만, 그전에 자신이 어떤 향기를 풍기고 있는 지 한 번 더 생각해 주길 바란다. 정말로 ‘이상적인 사람’은 향기로운 사람이다.





psy5432@nate.com <박신영님은 경희대 법학과 학생입니다. `위클리서울` 대학생 기자로 멋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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