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백운동 계곡의 여름

꾸미지 않아서 참 좋다! 계곡의 첫인상이다.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은 여느 곳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다른 피서지와는 다른 점이 있다. 바로 가식이 없다는 점이다. 다른 피서지에 가보면 사람들의 힘으로 만들어놓은 시설물부터 눈에 들어온다.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시설물이지만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가 그 한계를 넘기 때문에 더 불편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곳은 그런 시설물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어서 좋다. 자연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계곡 옆에는 건물 두 어 채가 들어서 있을 뿐이다.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배가 고프면 이곳으로 찾아와 식사를 한다. 메뉴도 복잡하지 않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백숙을 비롯 서 너 가지뿐이다. 더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편리한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숫자를 늘려가는 것은 결국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지, 편리함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한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생활을 단순화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지름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백운동 계곡. 흰 백(白)에 구름 운(雲)자를 쓴다. 하얀 구름이 일어나는 계곡이란 뜻이다. 얼마나 소박한가? 화려한 장식이 언뜻 보기에는 아름다운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깊이 분석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이내 느낀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소박함과 투박함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원초적인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본디 모습에서 참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백운동 계곡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백운동 계곡은 전북 진안군 백운면에 위치해 있다. 계곡이 그렇게 깊지 않아서 물놀이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오염되지 않은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있노라면 부러울 것 하나 없다. 신선이 된 기분이다. 세상사 미련 없이 놓고 하얀 구름에 맡겨버리니, 그냥 그대로 좋다.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다. 무엇 하나 정답지 않은 것이 없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는 세상은 따스함 그 자체다. 억울함도, 미움도 떨쳐버릴 수 있다. 아픔도 마찬가지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도 멀어진다. 자존심도 마찬가지고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모든 것들을 놓아버리니, 그 것들은 흔적도 없이 멀어진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 때에는 무겁게 자리하고서 몸과 마음을 짓눌렀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막상 놓아버리니,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하얀 구름에 털어버리니, 모든 것이 비어 있다.



계곡에 몸을 맡기니, 더위도 사라진다. 곁에서 그렇게 못살게 괴롭히던 더위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신기하다. 절대로 떨어질 것 같지 않았던 더위마저도 하얀 구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된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불어오는 산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희망이 숨 쉬고 있다. 살만한 세상이다. 아니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었다.



부정적인 측면만을 바라보면, 세상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세상은 달라진다. 구족되어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경이로움에 감동한다. 백운 계곡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어 좋았다. 하얀 구름에 몸을 맡기니, 그 것으로 충분하였다.

여름호수

호수라고 하기에는 조금 작지만 산란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충분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진다. 호수의 끝이 한 눈에 들어오기에 더욱 더 정감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감추어질 것이 없다. 모든 것이 훤하게 드러나 보인다. 뭔가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하다.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눈에 다 들어오니, 믿을 수 있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곳은 전북 김제시에 있는 오리 방죽이다. 금산사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여름이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여름의 열기를 피하기 위하여 즐겨 찾는다. 사람들이 앉아서 호수를 바라볼 수 있도록 정자도 2동이 마련되어 편리하다. 정자에 앉아서 호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더위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진다. 신기하다. 사는 것이 원래 기적의 연속이라고 하였던가? 시원한 바람 앞에서 신선이 된 기분이다.

오리 방죽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는 천 년 전 사람 도선대사에 의해서다. 풍수의 대가이기도 한 스님은 앞일을 훤히 꿰뚫어보는 고승이었다. 이곳을 본 스님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하였다고 한다. 천년 뒤에 이곳에 오리들이 넘쳐날 것이라고. 그런데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지금은 여름이라 오리를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겨울이 되면 이곳은 오리들의 천국이 된다. 스님의 예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이 있는 곳에 철새인 오리가 날아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란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스님의 생각에 감탄하게 된다. 사는 것이 모두 다 이와 같은 것이 아닐까?


금산사가 있는 모악산은 정기가 넘치는 신령스러운 산이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가 이곳에서 태동하였다. 호수의 끝자락에는 웅장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근래에 지어진 건물인데, 이곳에서 발생한 신흥 종교의 연수 시설이라고 한다. 건물이 웅장하여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통하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거짓이나 속임수로는 아무 것도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속셈이 없이 진심으로 대한다면 무슨 일이든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인생사가 아니겠는가?

문득 사랑을 생각해본다. 사랑이 없는 삶은 건조하고 삭막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랑이 있어야만 우리의 삶은 부드러워지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그 어떤 아픔도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에 사랑이 없다면 순간순간이 고통이요, 지옥이다. 무슨 일을 하여도 괴롭고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그렇다면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호수는 말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주저하지 않고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우리는 행동을 결행할 때 많은 조건을 생각하고 이해타산을 계산한다. 계산이 끝나기 전까지는 주저하게 되고 망설이게 된다. 결정하지 못하고 행동을 머뭇거리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바다를 보면 주저 없이 뛰어드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이다. 바다에 뛰어드는 것에 무슨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의 삶에서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니까 행동하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는 것에 무슨 특별한 이유는 필요 없다. 조건은 더욱 더 필요 없다. 투정 없이 즐기면 된다. 아무런 요구 없이 신바람을 내면서 살아가면 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는 더욱 더 없다. 삶의 주인은 나요, 주인으로서 권리를 누리면 된다. 그렇게 살아가는데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없다. 열심히 살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잔잔한 호수를 바라보면서 나를 본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다본다. 사랑하면서 열심히 살았는지 되돌아본다. 텅 비어 있는 마음을 바라보면서 그냥 웃는다. 호수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여름 더위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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