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빅3’, 제각각 행보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진땀을 흘리는 순간에도 조용히 미소를 짓고 있는 이들이 같은 진영에 있었다. 김 후보자와 함께 한나라당 차기 대선 주자로 꼽혔던 쪽들이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단독 회동 이후 더욱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 최근 청와대와 치열한 신경전을 펼친 김문수 경기지사, ‘킹’과 ‘킹메이커’ 사이에서 고민중인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제각각 다른 행보를 펼치며 ‘보이지 않는 전쟁’을 준비 중이다. 김태호 후보까지 낙마한 지금 이들은 남몰래 함박 웃음을 짓고 있다.



청와대를 다녀온 후 더욱 입이 무거워졌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박 전 대표는 26일 열린 이현동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 청문회에도 불참했다. 지난 6월, 세종시 수정안 표결에 대한 반대 토론 이후 지속된 침묵이 “분위기 좋았다”는 청와대 회동 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표 관계자는 “인사청문회 불참 원칙을 이번에도 이어간다”고 전했다. 이런 이유로 청문회 관련 자료 요청도 하지 않았고, 보좌진들도 청문회를 준비하지 않았다.

“인사청문회는 NO”

박 전 대표가 청문회에 불참한 이유는 성격 자체가 직접적인 사람 평가를 좋아하지 않는데다 이 대통령의 인사 행위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회동에서 “정권 성공과 재창출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한 요인이다. 박 전 대표가 어떤 식으로든 참석해 질의를 할 경우 불필요한 정치적 해석이 난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박 전 대표는 재정위 전체 회의에서도 개각과 입각 후보자들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 침묵과 미소로만 일관했다. 개헌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입을 꼭 다물었다. 당내 이공계 출신 의원들과 함께 한 오찬 자리에서도 복지정책을 살짝 언급했을 뿐 청문회 정국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이 대통령과의 회동 내용 또한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다. 국정운영의 책임자와 차기 대권 후보 0순위인 인사가 만났음에도 큰 줄기만 알려졌을 뿐 세부적인 내용은 베일에 싸여 있다.

박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 특임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여권은 당초 이 후보자를 향해 단단히 별렀지만 청문회를 얼마 앞두고 김 총리 후보자에게로 핵심 목표물을 급선회했다.

이 후보자는 청문회 자리에서 ‘직접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며 모호한 대답을 남겼다. 최소한 직접 도전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지 않은 것은 의미가 있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이 후보자의 측근은 “일단 현 정부의 성공이 가장 중요하다”며 “대통령은 하늘과 국민이 선택하는 것이지 개인이 욕심 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성공 여부와 지지율 추세에 따라 얼마든지 대선 출마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후보자는 7월말 재보궐 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국회에 귀환했고, ‘특임장관’이라는 별동대 소임을 맡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특임장관의 활동 반경은 개인이 움직이는 역할에 따라 유동적인 자리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 후보자 주변에서 이미 캠프가 가동되고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재보선에서 이 후보자가 “나 홀로 싸우겠다”며 자신감을 내비친 것도 이런 역량과 조직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핵심 측근들은 “지금 그런 게 중요한 때인가. 캠프 같은 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축하고 있다.

“국가 리더십 위기”

이들과 달리 김 지사는 청와대와 ‘난타전’을 벌이며 조금씩 중앙정치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 한 포럼에서 “이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보다 통이 작다”며 정부의 보금자리 주택정책 등 신도시 정책을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너무 조심을 하니까 소규모, 무대책, 난개발로 돼 버렸다”며 “세종시로 국력을 낭비했다. 리더십 자체가 지금 큰 문제에 부딪혔다”고 청와대에 직격탄을 날렸다.

김 지사의 질주에 청와대도 가만 있지 않았다. 핵심 관계자는 “자신이 해야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리지 못하고 있다. 낮은 인지도를 돌출발언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치기가 엿보인다”며 “본업인 경기도부터 잘 챙겼으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청와대의 제지로 강도가 낮아지긴 했지만 한번 열린 김 지사의 포문은 계속 이어졌다. 김 지사는 “국가의 리더십이 혼미하다”고 다시 한 번 이 대통령을 지목한 뒤 “우리가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누구 손을 잡고 누구와 맞설지 혼미하다. 친서민이라고 하는데 서민하고 친한 게 아니라 서민이 한나라당에 들어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지사의 강경 드라이브가 김 총리 후보자 등장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주목할 만 하다. 김 지사는 총리 지명 직후 “우리나라는 자고 일어나면 총리라고 나타나는데 누군지모른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일침을 놓은 바 있다.

한편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스스로 대권 반열에 들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의에 “아직 그런 생각을 안 해 봤다”고 답했다.

개각 이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는 여권 내 대권 경쟁이 ‘청문회 정국’을 계기로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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