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판 ‘삼국지’ 한창

“일단 청문회 정국부터 넘기고 보자.” 이명박 대통령의 8․8 개각 이후 해당 인사들에 대한 X파일을 모으기 위해 분주했던 민주당이었지만 지방 곳곳에선 작은 전투가 여러번 오갔다.

오는 10월 3일 개천절 열리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세균 전 대표와 손학규 정동영 고문이 본격적인 선거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쉽게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판세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민주당의 ‘새 선장’ 찾기가 쉽지 않다.

정 전 대표는 온화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관리력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개인적 인지도나 대선 경쟁력엔 의문 부호가 따라붙는다. 정 고문은 확실한 지지층이 있는 대신 견제 세력도 뚜렷하고, 대선 패배와 탈당 전력이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여론조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손 고문 또한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불식시키는데엔 부족하다는 평가다.

한나라당이 친이 대 친박으로 전선 형성이 확실하다면 민주당은 이 또한 불분명하다. 최근엔 ‘주류’와 ‘비주류’라는 말이 자주 나오지만 이 또한 시기에 따라 변화가 심한 단어일 수 밖에 없다.

정 전 대표의 ‘주류계’, 정 고문을 중심으로 한 ‘비주류’에 친노 그룹, 구 민주계, 옛 열린우리당 중진, 재야 등 출신 성분도 다양하다. 계파만 보면 한마디로 ‘춘추전국시대’를 연상케 한다. 절대적인 강자 또한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막판 합종연횡 변수”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내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각종 조직과 모임은 계산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김근태 전 의장의 ‘민주연대’, 박상천 의원의 ‘신송회’, 반 정세균 연합 모임인 ‘민주희망쇄신연대’, 쇄신연대에 반대하는 ‘진보개혁모임’, 친노 인사로 구성된 ‘청정회’ 등 10여개에 이른다. 여기에 486세대 모임 등 연령층에 따른 모임도 별도로 있다.

민주당 전대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건 이들 모임이 여러 성향의 인사들이 뒤섞여 있어 확실한 우군이라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는 “현재로선 누가 되도 확실히 당을 장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며 “선거 운동 막판 합종연횡이 결국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문회 정국 속에서 당원들도 일단은 관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선은 친노와 386, 열린우리당 중진 출신들로 이뤄진 정 전 대표와 정 고문, 천정배 박주선 의원의 쇄신연대로 크게 형성돼 있다. 여기에 손 전 대표가 틈새를 노리면서 3각 구도로 흘러가는 형국이다.

합종연횡 분위기도 아직까진 구체적으로 가시화되고 있지 않다. 당장 전대룰 조차도 쉽게 정해질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의와 상관없이 계파가 분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지층이 겹치는 정 전 대표와 손 고문쪽이 특히 그렇다.

장수들도 ‘헤쳐 모여’

3각 구도로 진행되는 현재의 상황을 삼국지에 빗대는 얘기도 나돈다.

정 전 대표는 강력한 카리스마는 없지만 인화력 만큼은 라이벌들도 인정하는 장점이다. 오히려 전투력이 부족하다는 게 약점으로 손꼽힐 정도다. 때문에 삼국지에서 현실감각이 뛰어났고 유능한 관리자였던 ‘손권’에 비유되곤 한다.

정 고문은 화려한 정치 경력과 정통성을 이유로 ‘조조’와 가깝다는 평이다. 뛰어난 언변과 다양한 임기웅변 능력이 그렇고 무소속 출마 뒤 당에 돌아온 대담함도 장점이다. 하지만 팬클럽 ‘정통’으로 대변되는 아군과 적군의 호불호가 뚜렷한 게 약점으로 손꼽힌다.

손 전 대표는 유비와 가깝다. 모나지 않은 언변과 이미지가 두루뭉실했던 유비를 떠올리게 한다. 이상적인 지도자형으로 꼽은 이들이 있는 반면 정치 색깔이 모호하다는 비판도 공존한다.

삼국지처럼 절대 강자가 없는 상황에서 장수와 같은 의원들을 자기 세력에 끌어들이는 일은 더 없이 중요한 일이다.

정 전 대표 진영에선 강기정 최재성 의원을 비롯 김민석 전 최고위원과 우상호 한병도 윤호중 전 의원 등 486 세대가 핵심이다. 열린우리당 출신인 김진표 전 최고위원이 캠프를 지휘하고 있고 장영달 전 의원과 노영민 전 대변인이 측면 지원하고 있다.

정 고문 진영엔 최규식 의원과 염동연 김낙순 정청래 노웅래 전 의원 등이 뛰고 있다. 박영선 우윤근 강창일 장세환 의원 등도 거들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의 경험과 노하우, 조직을 다시 재가동시킬 계획이다.

당내 조직력보단 여론조사 등 ‘민심’에 의존하고 있는 손 전 대표는 박양수 전 의원과 차영 전 대변인 등이 선봉에 선 가운데 박은수 송민순 전혜숙 서종표 이찬열 김동철 정장선 우제창 의원 등이 가세했다.

최근엔 당 내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친노그룹 일각에서 손 전 대표쪽으로 기울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광재 강원도지사와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등이 대표적이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의 전대는 대부분 양대 구도나 독주로 진행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 민주당 전대는 특이하게도 ‘대세론’이 사라진 가운데 치열한 3파전이 될 전망이다. 삼각대결 구도에선 확실한 비주류인 정 고문측이 유리하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지만 마지막까지 안심하기는 이르다. 정 전 대표와 손 고문 측을 잇는 연합 시나리오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대는 차기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점에서 빅3에게 포기할 수 없는 전장이다. 세 사람이 던질 ‘승부수’에 관심이 모아진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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