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다녀왔다. “요즘 애들은 무슨 수학여행을 제주도까지 가?”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부모님 세대 때만 해도 수학여행은 무조건 경주였다고 하니 말이다. 요즘 대부분 학생들은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경주, 중학교 땐 강원도, 고등학교 때는 제주도에 간다.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의 제일 남쪽 제주도로 갔다. 도착과 함께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빠는 ‘그래, 잘 놀다와’라는 답장과 함께 ‘올레길이라고 아빠가 가보고 싶은 곳인데, 선생님한테 가자 그래라’라고 하셨다. 올레길? 처음 들어보는 곳. 텔레비전 광고에서 ‘올레!’라고 하는 소린 들었지만 ‘올레길’이란 건 생소했다. 아무튼 수학여행 일정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는 법. 아쉽지만 다음에 올 기회가 있으면 가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수학여행 일정표를 보고 있던 기자의 눈에 발견된 ‘올레길!’이란 문구!! 아∼우리 아빠가 선견지명이 있으셨구나, 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하필이면 가장 힘든 일정을 다 마친 뒤 제일 마지막으로 방문하게 되어 있는 코스.
길은 끝이 없었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정말 아빠의 추천 장소답게 풍경이 예술이었다. 오른쪽으론 투명하고도 파란 바다가 보이고 왼쪽으로는 갈대숲이며, 도시에서는 보지 못하는 희귀한 나무들도 많았다. 아마 몸이 덜 지친 상태였다면 그 길이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다른 아이들은 ‘올레길’이 악몽의 길이라고 했다. 어쨌든 기자 입장에선 제주도를 갈 기회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굉장히 아쉽단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준 것이 있다. 바로 지금부터 소개할 이 책이다. 바로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제주도에 ‘올레길’을 처음 만든 서명숙 씨가 쓴 책이다. ‘올레길’이 생긴 과정과 만들어지는 데 도움을 준 사람들, 또는 ‘올레길’에서 도움을 받고 간 사람들, 게다가 ‘올레길’의 모든 아름다운 모습들을 사진으로 가득 담아놓았다. 사진으로만 봐도 얼마나 아름다울지 짐작이 된다. 이런저런 것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몇 가지를 풀어보겠다.
먼저 멋진 군인들의 이야기다. 당시 올레길 만들기에 돌입한 서명숙 씨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걸 느끼고 고민에 빠졌다. 그 때 반가운 전화 한통. 군인들이었다. 서명숙은 그 군인들에게 부탁했다. 흔쾌한 승낙.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길을 냈다. 한창 일을 하던 중 서명숙 씨는 그들에게 선물까지 받았다. 바로 조그마한 바위로 만든 간이의자. 더운 날씨에 일하기도 힘들 텐데 이런 애교도 보일 줄 아는 센스만점 군인들이다. 한 군인의 말이 생생하다. 서명숙 씨가 힘들텐데 미안하다고 하니까 “아닙니다. 나중에 아내와 아이와 함께 와서 아빠가 만든 길이라고 자랑할 생각을 하니 기쁩니다”라고 했다.



다음은 유명인사에 대한 이야기다. 20대의 롤모델 한비야 씨다. 서명숙 씨의 친구인 한비야 씨. 그는 아름다운 ‘올레길’에 푹 빠졌다. 아예 자신의 글을 ‘올레길’에서 썼을 정도다. 그만의 멋진 독서실도 생겼다. 바로 ‘올레길’ 바닷가. 앉으면 몸에 딱 맞는 바위의자도 있다. 그는 그곳에서 누구의 간섭도, 누구의 소리도 듣지 않고 오로지 시원한 바람소리와 푸른 파도소리만 들으며 글을 썼다. 그는 서명숙 씨에게 “명숙아,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라고 했다.
‘올레길’은 ‘올레꾼’이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그 매력에 빠진 사람이 많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도 ‘올레길’을 걷다가 사이가 좋아졌다. 무뚝뚝하고 반항적이던 아들이 아빠와 함께 길을 걷다가 “아버지, 가방 무거워 보이는 데 제가 들어드릴까요?”라며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일도 생겼다. 이것이 바로 ‘올레효과’가 아닐까. 아름다운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자연스런 그것 말이다.
이 책은 단지 ‘올레길’을 광고하고자 하는 책이 아니다. 놀멍 쉬멍(놀며 쉬며) 걷는 길, 꼬닥꼬닥(느릿느릿 천천히) 걷는 길, 잘 걷든 못 걷든, 느리든 빠르든, 각자의 속도대로 걸으면서 길 위에서 치유 받고, 위로 받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진정한 행복을 맛보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월요일이 두렵기만 한 바쁜  직장인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주의할 사항 한 가지. 너무 ‘올레길’에 빠져 지금 하는 일을 때려치우고 당장 제주도로 떠나는 건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하하)
정다은 기자 panda1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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