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아얀 히르시 알리/ 옮긴이 추선영/ 알마

 ‘새장에 갇힌 처녀성(The Caged Virgin)’의 저자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얀 히르시 알리는 독자의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리는 자서전을 통해 무장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재에 이르는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들려준다. 소말리아 내전을 피해 난민이 된 그들의 끔찍한 삶과 사우디아라비아, 케냐, 에티오피아의 이슬람 전통 속에서 교육받았던 유년 시절, 난민 신분으로 네덜란드로 가서 지성에 눈뜨고 활동가로 거듭난 일을 비롯해 네덜란드 하원의원이라는 정치인이 되기까지의 행보를 솔직하고 담대하게 기술해나간다.
저자는 문화적 특수성에 기인한 악습과 폐단을 고발한 이슬람 여성들의 인권에 관한 영화 ‘복종’을 테오 반 고흐와 함께 만들었다. 영화에는 간통했다는 이유로 채찍으로 맞는 여성, 지긋지긋하게 싫은 남자와 결혼한 여성, 일상적으로 폭행당하는 여성, 삼촌에게 강간당하고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여성, 이렇게 네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가해자들은 여성들의 몸에 새겨진 꾸란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의 학대행위를 알라의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이 네 여성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십만 이슬람 여성의 상징이다. 이후 테오 반 고흐는 이슬람주의자에 의해 피살당했으며, 히르시 알리는 협박과 무장경호 속에서 살고 있다.
품위 있고 도드라져 보이는 정치계의 샛별이자 사상의 자유를 옹호하는 투사의 인생을 다룬 이 책은 출간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모아왔다. 히르시 알리는 날카로운 시선과 정확하면서도 때로는 모순된 문장으로 자신이 가졌던 신념, 강철같이 굳은 의지,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평등과 싸우겠다는 결의의 과정을 되새긴다.
보수적인 이슬람과 극우 정치인들에게는 ‘악마’라는 낙인이 찍혔고, 가족과 가문으로부터 쫓겨난 알리는 여전히 위협에 시달리고 있지만 침묵하기를 거부한다. 아얀 히르시 알리는 오늘날 유럽에서 많은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만 논쟁도 많이 불러일으키는 문제 인물 중 하나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적 이상과 종교의 압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는 지금, 이만큼 시의적절하고 의미심장한 회고록은 없을 것이다.
621면/ 22000원 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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