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마지막 가을 그리고…

마지막 가을의 선운사

단풍 비가 내린다. 환상적이고 매혹적이다. 노란 이파리가 흩날리고 빨간 이파리가 춤을 춘다. 하늘을 꽉 채우며 떨어지는 이파리들이 고운 세상을 연출한다. 시선을 따라 곱게 물들여진다. 온통 화엄세상이다. 이보다 더 고울 수는 없다. 하늘도, 땅위도 고운 이파리들로 그득하다. 정녕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다. 극락이다.



이곳은 가을 선운사다. 고운 색깔로 치장을 하고서 찾는 이의 마음에 한 아름 선물을 안겨준다. 누구라도 가리지 않는다. 검단선사가 해적들을 교화하여 소금을 굽게 한 양 선물을 내민다. 어쩌면 저리도 다양할까? 같은 붉은 색이라도 색상의 차이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 노란 색도 마찬가지다. 한 나무에 붙어 있는 이파리이지만 각각 색깔이 모두 다 다르다. 몽환적인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어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더 잡아버린다.

선운사를 곱게 물들이는 단풍 이파리들은 여느 것들하고는 다르다. 보통의 단풍 이파리들은 굵직하고 넓적하다. 물론 그 것대로의 매력이 있다. 햇살을 받으면 반짝이는 면적이 넓어서 돋보이기도 한다.



이와 다르게 이곳 선운사의 단풍은 아기 단풍이다. 아기 손을 닮아 아주 앙증맞게 생겼다. 아주 작은 단풍 이파리가 오밀조밀한 색깔로 가을 햇살에 반짝인다. 꼭 보석 같다. 수많은 아기가 손을 흔드는 착각에 빠질 정도다.

물론 작다고 하여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선운사의 아기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작아서 만이 아니다. 손짓하는 이파리들마다 표정이 있다. 바라보면 신명이 절로 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신명이란 깨달음이 빛이 날 때의 상태를 말한다. 아기 단풍의 손짓을 보고 있노라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신명이 난다. 즐겁다. 활기가 넘쳐난다. 누구라도 붙잡고 함께 하고 싶다.



어디 그 뿐인가? 아기 단풍의 색깔은 또 어떠한가? 저리도 다양할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같은 노란 색이라 할지라도 색상에 따라 그 색깔이 수십 가지로 나눠진다. 붉은 색도 마찬가지다. 연한 붉은 색에서부터 진한 붉은 색에 이르기까지 그 정도에 따라 저마다 독특한 색을 연출해낸다. 거기에 아직 물들여지지 않은 녹색도 색상의 차이에 따라 다양하게 빛난다. 자연의 색깔이 저리도 곱게 표출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우리의 고정 관념에 단풍은 한 가지 색으로 고정되어 있다. 단풍 이파리는 붉은 색, 은행 이파리는 노란 색이다. 만약 그게 실제라면 이렇게 감탄하고 감동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것은 고정관념일 뿐, 자연은 그렇지 않다. 선운사의 가을 색깔은 수 천, 수 만 가지의 색을 지녔다. 세상의 그 어떤 보석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찬란하게 빛난다.



그 안에 서 있기만 하여도 즐겁다. 바라보고 있는 눈이 호사를 누린다. 이런 호사를 누리기기가 어디 쉬운가? 세상을 둘러보면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볼 때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고통을 당한다. 외면한다 하여도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고운 단풍을 바라보고 있으니, 바라보는 것만으로 즐거워진다. 분명 눈의 호사요, 사치다.

귀 또한 마찬가지다. 소음에 시달리다 보니, 고운 소리를 듣기란 여간 쉽지 않은 요즘이다. 그런데 단풍비 떨어지는 소리가 어찌나 감미로운지, 저절로 눈이 감긴다. 쉴 사이 없이 들려오는 소음으로 인해 지쳐버린 귀에 단풍 이파리의 사각사각 춤추는 소리는 다른 세상의 그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천상의 아름다운 음악 아닌가?



곱게 물든 단풍 안에 서 있으니, 몸도 호사한다. 오염에 찌든 세포들이 하나하나 씻겨진다. 구석구석 찌들었던 먼지들이 소리 없이 말끔하게 청소된다. 도대체 얼마 만에 가져보는 맑음인가? 온몸에 붙어 있는 먼지들을 말끔하게 씻어내고 나니 훨훨 날아오를 것만 같다.

가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선운사의 가을 속에서 생각해본다.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마무리는 선운사의 몫이다. 선운사의 단풍이 그 것을 증명하고 있다. 가을 속에서 가을을 만끽한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해본다. 그리운 얼굴을 떠 올리면서 선운사의 마지막 가을을 온 몸으로 누렸다.


만추의 위봉폭포

폭포에 물이 떨어지고 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3단 폭포에 물보라가 일어난다. 장관이다. 여름에만 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을에 기대하지 못하였던 폭포수를 볼 수 있다니…. 단풍의 계절 가을에 하얀 물보라가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다니, 감동이다. 가을 빛깔과 어우러진 폭포는 장관이다.



위봉폭포. 전북 완주 8경중 하나로 옛날부터 대표적 명승지다. 대둔산 도립공원, 모악산 도립공원, 송광사, 위봉사 위봉폭포, 동상 운장산 계곡, 경천저수지, 대아저수지, 죽림 온천 금계 계곡을 완주 8경이라 일컫는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지만, 이 만추의 계절 위봉폭포의 위용은 그 어떤 곳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돋보인다. 오색의 빛깔에 하얀 폭포의 물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낸다. 가을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이전에도 위봉폭포는 여러 번 찾은 곳이다. 봄에는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의 멋이 있다. 그런데 가을에 물이 떨어지는 모습은 처음 본다. 지금까지 봐온 위봉폭포의 풍광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빼어나다. 주변의 색깔이 어찌나 환상적인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마치 내가 신선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오색의 권두운을 타고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아다니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자연의 오묘함을 새삼 느낀다.

천길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수를 바라보자니 걸어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평탄하지 않았던 길을 걸어오면서 좌절도 많이 하고 아픔도 많았다.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였던 수많은 기억들이 깊은 어둠으로 이어져 있다. 그런 어둠이 이 화려한 풍광을 통해 새로운 세상으로 화한다. 지난 슬펐던 일들이 내일의 영광을 위한 밑거름이었을 것이란 생각으로 이어지게 한다.

가을 산이 좋다. 가을 하늘이 좋다. 무엇을 더 바란단 말인가? 산은 홍엽이고, 물은 하얀 보석이다. 그 속의 나는 신선이다. 일상의 무거운 짐은 미련 없이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을을 누린다.


황진이의 마음이 이러하였을까? 고운 님 우리 님이 오시면 두고두고 보고 싶은 마음이 정녕 이런 마음 아니었을까? 위봉폭포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에 담으면서 그리움을 떠올린다. 추억의 뒤안길에서 서성이는 나이. 열정보다는 그리움의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는 나이. 산이 말한다. 이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취할 때가 아니라 가지진 것을 버려야 할 때라고. 흩어지는 물보라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고 얘기해준다. 아! 가을이다.

참 고운 빛깔의 감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열려 있는 감이 탐스럽다. 깊어지는 계절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떨어지고 남아 흔들리는 몇몇 감 이파리의 색깔도 매혹적이다. 그 어떤 것보다도 곱고 화려하다. 빨갛게 익어가는 감의 모습이 가슴에 각인된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그렇지만 가을 하늘에 익어가는 감의 모습만큼 돋보이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자신을 불태워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빨갛게 물들여주고 있는 감의 매력에 푹 젖게 된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 앞에서 새삼 무상을 절감한다. 이제 겨울이 눈앞이다. 보내고 싶지 않지만 가을은 그렇게 내결에서 멀어지고 겨울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가는 계절을 잡을 수 없으니 안타깝다. 아직 햇살은 따사롭지만 가슴은 텅 비어간다. 밀려드는 허망함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다. 그냥 그렇게 보내야만 하는 현실.

태도는 마음에 색을 칠하는 붓이라고 하였던가? 가는 가을, 잡을 수는 없지만 대처하는 태도는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무기력하게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그저 처연한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가슴이 텅 비게 된다. 시나브로 커져가는 외로움을 주체하기 어렵다. 우주에 홀로 서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바라보기만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다. 빨갛게 익어가는 감처럼 마음을 익혀 가면 된다. 텅 빈 마음을 꽉 채우면 된다. 비워버린 마음에 빨간 감도 담고, 곱게 물들여지는 이파리도 담는다. 어디 그 뿐인가? 파란 하늘도 담고 노랗게 물들여진 이파리도 담는다. 둘러보면 가슴에 담을 수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담아도, 담아도 고운 풍광은 넘쳐난다. 겨울이란 계절이 생채기를 내기 전에 가슴에 담아야 한다. 그렇게 열심히 담다보면, 외로워할 겨를이 없다. 서릿발을 세운 겨울 삭풍이 가슴을 할퀴고 지나가더라도 담아두었던 가을을 꺼내보면 상처는 이내 사라진다. 겨울의 심술이 아무리 커도 걱정할 필요 없다. 붉은 빛으로 영근 감을 꺼내면 겨울의 횡포는 말끔하게 막아낼 수 있다.



그래 가슴에 담자. 가는 가을, 아쉬워하고 있지 말자. 적극적으로 대처하자. 2010년의 가을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 잊지 않으려면 가슴에 담아두어야 할 일이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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