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많은 우리 시대 사내의 이야기

 감정과 이성이 공존하기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인간 세상. 그곳은 훈훈한 남동풍이 불기도 하고 살을 에는 듯한 북서풍 칼바람이 휘몰아치기도 한다. 세상의 한파가 더욱 절실히 느껴지는 요즘, 거친 파도를 헤치며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오랜 군생활을 바탕으로 인간사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낸 작가 이기원의 ‘바람 나그네’(도서출판 한솜)이 그것.
이 책은 해방 직후 사생아로 태어나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바람 잘 날 없는 세상에서 모진 운명을 이겨내 성공을 이룬 위인의 일대기도 아니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비참한 삶의 기록도 아니다. 가장 평범한 남자의 삶, 어쩌면 우리 아버지 세대 대부분의 남자가 겪었을 인생 여정이 진솔하고 담담하게 서사되어 있다.
새벽 4시가 넘어 심야 할증이 풀리는 시간이 되었건만 도무지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한 평 남짓의 보금자리가 없어 전깃줄에 걸쳐 앉은 새처럼 동이 터오길 기다리고 있는 걸까? 동이 트면 날개를 퍼덕여 푸른 창공으로 솟으려는지 모른다. 아니면 가장 거리가 먼 시내버스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며 나름대로의 추억 여행을 즐기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행인들을 의식한 듯 까만 모자를 눌러쓴 채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또 다른 세상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문 9쪽)
파란만장한 개인사와 더불어 ‘바람 나그네’에는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역사가 담겨 있다. 해방 직후와 전쟁, 격동의 80년대, 90년대 말의 경제 공황, 그리고 현재의 연속선인 21세기까지 인생의 마라톤을 달려온 한 사내의 생은 어둡고 침체된 경기와 더불어 황량해져 버린 독자들의 마음속을 나직이 쓰다듬어 줄 것이다. ‘괜찮다’고. 강해지지 않아도, 온전히 혼자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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