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오리


# 흩어지는 법이 없이 항상 뭉쳐다닌다.

사람이 기르는 동물 가운데 가장 겁이 많은 종을 들라면 아마도 오리를 첫손에 꼽아야 할 것 같다. 오리와 비슷한 종으로 거위가 있지만 거위와 오리는 사뭇 다르다. 거위는 자신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알아보고 멀리서 그 모습이 보이거나 소리가 들리면 환영인사를 하지만 오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
먹이 아니라 별 것을 준다 해도, 제아무리 희귀한 재미를 선사한다 해도 오리는 주인을 두지 않는다. 방금 전에 주인을 자임하는 사람이 먹이를 주었다 해도 오리는 전혀 감사하지 않는다. 저것이 어느 순간 나를 잡아먹겠지? 하는 의심으로 똘똘 뭉쳐서 여차하면 달아날 채비를 갖춘 채로 먹이를 먹는다.
뒤로 서너 걸음 냉큼 물러섰다가 기회를 잡았다 하면 앞으로 다시 서너 걸음 냉큼 다가와서 먹을 것을 먹고 다시 뒤로 서너 걸음 냉큼 물러서는데 고개를 항상 쳐들고 있다. 물론 땅에 있는 먹이를 주워 먹는 순간에는 고개를 숙여야만 한다. 그런데 고개를 숙이는 것은 그야말로 순간일 뿐이라서 거의 관찰자의 시선에 잡히지를 않는다. 눈으로 볼 수는 있지만 보았다고 말할 만한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5일장에서 오리 여섯 마리를 사다가 함께 살아온 지도 어언 6개월, 그 동안의 관찰과 분석을 종합할 때 오리는 사람이 기르고 있는, 혹은 기를 수 있는 동물 가운데 주체성이 가장 강한 동물이라는 잠정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오리처럼 실천적으로 생활 속에서 체현하는 존재가 또 무엇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오리는 틀에 갇힌 인간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어떤 사람은 닭이 인간의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군다 해서 미련하다고, 닭대가리라고 한 자락 깔고 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마 오리를 모르거나 너무 그 자유함이 광대해서 차마 거론조차 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 묶여 있는 개와 풀려있는 오리의 신경전

닭을 3개월만 길러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닭은 사람을 잘 따르는 동물이다. 열흘 정도만 같은 시간에 같은 먹이를 주면서 같은 소리를 내면 닭은 같은 행동을 한다. 요컨대 길들이기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리는 그렇지 않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오리는 망각의 천재이다. 적어도 인간과 관련해서는 그렇다. 아니 인간뿐만 아니라 잠재적인 천적에 관련해서는 그렇다.
오리는 닭이나 염소나 토끼 혹은 소 같은 동물들과는 잘 어울린다. 그러나 인간과는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 먹이를 주었다 해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법이 없고, 재롱을 떠는 법도 없으며, 저것이 지금 나를 먹이고 키워서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의심의 눈길을 절대로 거두는 법이 없다.
이쯤에서 까놓고 얘기하자면, 털어놓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오리를 사다가 키운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오리를 무슨 애완으로 기르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나는 단지, 오직 하나, 오리를 키워서 오리로스구이를 해먹겠다는 오직 그 하나의 생각으로 오리를 사다가 키운 것이었다. 그런데 한 달, 두 달, 함께하는 날수가 늘어나면서 오리를 잡아먹기는커녕 함부로 만져볼 수도 없는 상황에 몰리고 말았다.


# 생후 보름째 시장에서 막 사오던 날

물론 처음에는 약간의 낭만도 있었다. 지방선거 유세가 한창이던 지난 5월 말경 시장에 갔다가 오리 소리를 듣는 순간 그놈의 낭만이 꿈틀거렸다고나 할까. 그랬다. “이게 뭐냐. 오리 소리 아니냐. 어매, 정말로 오리네. 오리 새끼를 팔고 있네. 아고 이뻐라. 저 납작한 주둥이 좀 봐.”
어쩌고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리 구경을 하고 있는데 머릿속에 갑자기 전등불이 켜졌다.
아, 이것이다. 오리, 오리야, 오리. 내가 왜 여태 그 생각을 못했지. 오리가 연못에서 헤엄을 치고, 마당에서 꽥꽥 소리를 내며 돌아다니는, 그런 그림을 내가 왜 여태 그려보지 못했지?
그랬다. 마당에 파놓은 웅덩이 같은 연못에 가끔 등장하는 황소개구리들을 오리가 잡아먹으며 물 위를 유유히 헤엄치는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연못에 풀어놓은 비단잉어며 금붕어 같은 것들도 오리가 잡아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저 밉살스런 황소개구리만 골라서 먹어줄 것이란 생각만 하고 있었다. 오, 이 얼마나 한심하고 우매한 관념인가.
다행히도 그런 한심한 낭만은 초기에 간단히 무너지고 말았다. 어린 오리들이 아마 이동하는 동안 겁에 질렸던 모양이었다. 오는 동안에는 아무 소리도 없이 잠잠하던 녀석들이 상자를 개봉하는 순간 꽤액, 꽤액 하고 마치 멱따기 직전의 돼지처럼 엄청나게 큰 소리를 질러대며 뛰쳐나오더니 쏜살같이 달려서 꽃밭으로 수풀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였다. 소리에 놀라고 그 전광석화 같은 움직임에 놀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완전히 판단정지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우두커니 선 채로 한참이나 지난 뒤에서야 이 녀석을 잡을까 저 녀석을 잡을까, 생각할 틈도 없이 덮어놓고 달려가서 한 녀석을 잡아다가 상자에 넣고 다른 녀석을 잡으려고 쫓아가는데 상자에 넣어둔 녀석이 도로 뛰쳐나와서 아까보다 훨씬 더 큰 소리를 질러대며 마당을 주정뱅이처럼 뒤뚱뒤뚱 달려서 또 어디론가 달아나고 있었다.


# 이 안에서 유소년기를 보냈다.

“이런, 이런, 무슨 이런 빌어도 못 먹을 녀석들이 다 있냐 이거.” 어쩌고 그렇게 나도 모를 소리를 질러대며 달아나는 녀석들을 쫓아가는데 이번에는 개들이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옆집에서 풀어놓은 개 한 마리가 달려오는가 싶더니 아랫집에서도 오리 소리에 흥분한 개가 묶어놓은 줄을 끊고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겠다는 듯 헐떡거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 집 개들 역시 앞발을 높이 쳐들고 금방 숨이라도 넘어갈듯 한 소리를 질러대며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오리고 뭐고 다 포기하고 개를 상대로 욕지거리를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남의 집 개는 그렇다고 칠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집 개가 어린 오리를 보고 침을 질질 흘려대며 혀를 날름거리는 데는 뭐라고나 할까. 가슴에 주먹만 한 돌이라도 박힌 듯이 무거운 슬픔과 분노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거였다. 식당에서 가끔 뼈다귀도 얻어다 바쳤건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실망감에 배신감에 절망감까지 몰려오면서 “저것들을 그냥 확!”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 “이눔 시키들, 이 오리가 네 밥이냐, 밥으로 보여? 주인이 사랑하는 것이면 너희도 같이 사랑해줘야지, 근데 뭐야, 짜식들아.”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제 금방 데려온 오리를 사랑하고 어쩔 시간이나 내게 있었던가? 게다가 오리로스구이를 생각하고 있던 주제에 사랑은 무슨….
어쨌든 그렇게 해서 내 머릿속의 관념적인 낭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오리를 연못에 풀어놓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는 것을 오리와 개들이 내게 알려준 셈이었다. 연못이 안 된다면 마당에 풀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 오리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침 어떤 사람이 내게 맡겨놓은 병아리 키울 때 쓰는 망태(정확한 명칭을 잘 모르겠다)가 있어서 그 안에 가둬 기르기로 했다. 어느 정도 자라면 널찍한 토끼장에 풀어놓을 생각이었다.
토끼를 기르려고 지었으나 족제비와 고양이들의 공격 때문에 포기하고 방치해둔 토끼장이 평수로 치면 아마 7평은 족히 될 터였다. 이 안에 오리 여섯 마리를 풀어놓으면 그럭저럭 그림이 될 것 같았다. 드디어 오리가 어느 정도 자라서 그 안에 풀어놓았는데 이때부터 다시 개들이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 지난 9월의 어느 하루

토끼장 옆에 바로 개집이 있었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오리를 향해 개는 날마다 흥분해서 짖어대거나 낑낑거리는 소리로 내게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는 묶여 있었다. 게다가 오리는 철망으로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 모양이 재미있었다. 나를 보고 낑낑거리며 어떻게 좀 해달라고 호소하는 개를 향해 가끔 한 마디씩 놀려주는 재미가 여간 아니었다.
“날더러 뭘 어쩌라고 인마.”
오리도 처음에는 개가 무서워서 가능한 한 개가 안 보이는 곳에 몰려 있었다. 내가 먹이를 가지고 다가설 때도 꽥꽥 소리를 질러대며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는 내가 돌아서면 그제서야 다가와서 먹이를 먹는 것이었다. 그렇게도 인정머리 없는 동물은 살다살다 처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저녁에 뭔가가 오리를 습격했다. 오리가 아직 다 자라기 전이었다. 아침에 먹이를 주려고 갔는데 오리 한 마리의 머리가 철망 사이에 낀 채로 죽어 있었다. 목 언저리에 날카로운 이빨 자국이 있었다. 이빨 자국 한 번에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침입자가 족제비인지 고양이인지 알 수는 없었다. 어쨌든 침입자는 오리를 죽이는 데는 성공했으나 끌고 나가지는 못했다. 그런 정도라면 아마 오리가 다 자란 뒤에는 죽이지도 못할 것 같았다.
이것을 연구해서 알아내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오리는 닭이나 토끼와는 달라서 족제비 같은 작은 맹수들이 당황하게 된다. 빗속에서도 젖지 않는 오리의 털이 워낙 미끄러운데다 두꺼워서 일종의 철갑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오리는 또 암컷의 경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사람도 놀라서 기겁을 할 정도다. 족제비든 고양이든 그 작은 체격의 침입자들은 일단 주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리는 또 하나의 방어선을 쳐놓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 알았다. 동료 오리 한 마리가 죽은 뒤부터 오리들은 개를 가까이 하고 있었다. 저녁이면 아예 개집 바로 앞에서 잠을 잤고, 낮에도 거의 하루 종일을 개집 앞에서 놀고 있었다.


# 알았다는 듯 덤비지 않고 외면하는 개

개가 족제비나 고양이를 보면 물어 죽이려고 흥분해서 날뛴다는 것을 오리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개와 오리 자신 사이에 철망이 있다는 것도, 그리고 개는 일단 묶여 있다는 것도 오리는 알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오리가 개집 근처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개도 이제 더 이상은 오리를 향해 흥분한 소리로 짖어대지 않고 흘끔흘끔 마치 주눅 든 아이처럼 훔쳐보기나 한다는 것….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