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하얀 눈세상 속에서

하얀 세상을 바라보며

눈이 내렸다. 세상이 하얗다. 온통 한 가지 색뿐이다. 다른 색은 용납하지 않는다. 하얀 눈 세상은 아름답다. 깨끗하여 좋다. 한 가지 색으로 통일되어 있으니, 마음까지 순결해진다. 티 한 점 묻어있지 않다. 다른 색깔은 아예 용납을 하지 않는다. 하얀 세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이 따가워진다. 눈이 아파서 계속 바라볼 수가 없다. 하얀 세상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이내 실감하게 된다. 세상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허용되어야 한다. 다양한 요소들을 모두 다 용납할 때 세상은 진정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다.




하얀 세상에 첫 발을 내딛으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세상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찍는다는 일은 기쁨이다. 무엇이든 처음으로 행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 처음 만남도 그러하고 처음으로 시작하는 사랑도 그러하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일 때를 잊지 않는다. 그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기념하게 된다. 처음은 그만큼 삶에 있어서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 것이 무엇이든 처음은 삶의 족적에서 중요하다. 처음의 일은 마음에 각인되어 죽을 때까지 되돌아보게 한다. 처음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어찌 보면 비극이다. 처음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첫사랑은 아프다. 첫사랑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는 슬픔을 주체하기 어렵다. 첫사랑을 잊지 못함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사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여 중요한 사랑을 하지 못한다. 이는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다. 흘러간 사랑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사랑에 소홀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첫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첫사랑이다. 첫사랑이 이루어졌다면 첫사랑이 아니다. 그 것은 첫사랑이 아니라 지금의 사랑이다. 따라서 첫사랑은 아름다울 수는 있으나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첫사랑이 아니라 오늘의 사랑이다.



정작 중요하고 필요한 사랑은 지금의 사랑이다. 지금의 사랑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첫사랑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하얀 눈 세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이 아픈 것처럼 첫사랑은 고통일 뿐이다. 허상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첫사랑으로 인해 오늘의 사랑을 강화시킬 때이다. 첫사랑으로 인해 오늘의 사랑이 고통 받게 된다면 그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첫사랑을 아름답게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오늘의 사랑을 빛낼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첫사랑이 오늘의 사랑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얀 세상을 바라보며 첫사랑을 생각하였다. 세상일이란 모두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하얀 눈 세상이 온통 하얗다고 하여 진정으로 하얀 색깔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첫사랑은 소중하다. 그리고 아름답다. 그렇다고 하여 첫사랑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첫사랑은 지나간 사랑이다. 지나간 사랑이 현실의 사랑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 첫사랑이 오늘의 사랑을 더욱 더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할 때 내 인생은 풍요로워질 수 있다.



세상이 하얗다. 고결하게 보인다. 순결한 눈 세상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희망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의 것이다.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서 기다려야 한다. 준비하는 것이 슬기로운 행동이다. 오늘 당장 슬프다고 하여 슬픔이 영원할 수는 없다. 준비하면서 희망을 놓지 않으면 기회는 언제든지 온다. 그 때를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희망을 끈을 놓지 말고 세상을 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눈 세상의 진면목을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하다. 첫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하얀 눈 세상이 참으로 곱다.

갈매기의 선물

갈매기가 여유롭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갯벌에는 많은 수의 새들이 자유롭게 여유를 즐기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공간이 있어 넉넉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은 분명하다. 상대방이 무엇을 하던지 관심이 없다.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갈매기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참 보기에 좋다.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러나 비상에 못지않게 갯벌 위에서 노닐고 있는 모습도 아름답다.



바다 바람이 차다. 그러나 새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바람의 찬 기운이 힘을 쓰지 못한다. 새들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종종걸음을 치는 갈매기도 있고, 살짝 날개를 펴고 도약을 하는 새도 있다. 그들 각각의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한참 동안을 바라보고 있다. 새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마음을 잡는다. 감동으로 다가온다. 진정성이 배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감동으로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가식 없는 새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존감과 자만심을 생각하게 된다.



살아가는 데 자존감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자만심은 버려야 한다. 자존감과 자만심은 큰 차이가 있다. 물론 공통점도 있다. 자존감과 자만심의 공통점은 귀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인정한다는 점이다. 존중해줌으로서 존중받을 수 있다. 그런데 자존감은 나와 너를 동시에 존중한다. 그에 반해 자만심은 상대방은 경시하면서 자기 자신만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내가 귀한 만큼 상대방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있는 새들의 모습에서 자존감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자존감을 지키면서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만심으로 우쭐거린 기억은 많이 있어도 자존감을 지켜가면서 흐뭇한 웃음을 터뜨린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얼굴이 붉어진다. 부끄럽다. 자존감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도 못하였다. 감동이란 진정성이 전제되어야 가능해진다. 진정성이란 바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할 때 나타날 수 있다. 자존감이 없었으니, 진정성도 표출될 수 없었다. 진정성이 없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감동도 줄 수 없었다. 부끄러운 일이다.



차가운 바다 갯벌에서 여유롭게 즐기고 있는 갈매기들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진한 감동은 마음이 전해져 귀한 선물로 탈바꿈된다. 새해의 선물이란 생각이 든다. 새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귀중한 선물이 되고 있었다. 선물이란 경제적으로 값어치가 큰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신묘년에는 자존감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 것이 귀한 선물이 될 수 없다 할지라도, 진정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마음은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갈매기의 선물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사랑의 포만감

소한을 지나 대한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일 년 중 가장 추운 기간이다. 기온이 낮으니, 무기력해진다. 외출하기가 두려워진다. 움직이는 것이 싫고 나태해진다. 게을러서 좋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줄 알면서도 차가운 날씨에 몸이 움츠려들 수밖에 없다. 그냥 편안하게 방안에서 보내고 싶을 뿐이다. 따뜻한 방안에서 보내게 되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움직이는 것조차도 싫어진다. 게으름이 온 몸을 점령하고 만다. 게으름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 되지 않는다.



우선 식욕부터 떨어진다. 악순환이다. 게으름은 무서운 병이라는 사실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그런 줄 알면서도 게으름에 점령당한 육신은 점점 더 무기력해진다.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렇게 속절없이 게으름에 지배당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뭔가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하였다. 게으름 속에서 이리 생각도 해보고 저리 생각도 해보았다. 뭔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사람을 바라보았다. 집사람은 답답해하고 있던 터라 얼른 일어선다.



집사람은 나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천성이 부지런하다. 그러니 게으름이 접근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그러니 잠시도 실내에서 견디지 못한다. 외출할 거리가 없으면, 새로운 거리를 만들어서라도 나가는 스타일이다. 그런 집사람에게 외출하자고 하니 얼른 일어선다. 마음이 바뀌기라도 하면 낭패라는 생각으로 민첩하게 움직인다. 좋아하는 집사람을 바라보자니 웃음이 나온다. 저리도 좋을까? 온 몸에서 표출되는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집사람을 웃게 하는 일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사랑은 한 겨울에 포근함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마법이다. 찬바람이 쌩쌩 불어도 마음속에서는 따뜻한 온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이다. 밖으로 나서니, 찬 기운이 엄습해온다. 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사람의 마법을 어찌하지는 못한다. 달리는 자동차 유리창 사이로 겨울 풍광이 스치고 지나간다. 삭막한 겨울 풍광에도 낭만이 넘쳐나고 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방안에서만 있었다면 절대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외출하기를 참 잘하였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회를 시켰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이 있어서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때가 되어서 들어선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성찬이었다. 기대 이상의 푸짐한 상이었다. 순서에 맞게 나오는 음식의 가짓수가 상상을 초월하였다. 나오는 음식마다 별미였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많지 않아서 좋았다. 맛을 통해 식도락을 즐기기에 적당한 양이어서 좋았다. 먹고 나면 다른 음식이 나오니, 맛의 묘미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한 겨울에 바다를 바라보면서 생선의 맛을 만끽하는 일은 참으로 신나는 일이다. 음식을 먹는 것이 이렇게 큰 즐거움이 있을 것이란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우선 싱싱해서 좋았다. 겨울의 냉기가 회의 맛을 배가시켜주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음식들의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낙지는 물론이고 장어, 멍게, 해삼, 굴, 가리비, 피조개 등등 해산물을 골고루 맛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곰소항에서 뜻하지 않게 횡재한 기분이었다.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겨울의 산해진미를 맛보면서 겨울의 지루함을 멀리 멀리 차버릴 수 있었다. 사랑의 포만감으로 돌아오는 길은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즐거운 하루였다. <춘성 정기상 님은 전북 완주 가천초등학교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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