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알바’ 청소년 심각한 노동인권 실태

‘88만원 세대’보다 더 ‘비참한’ 세대가 나타났다. 10대 청소년 아르바이트생들을 일컫는 ‘44만원 세대’이다. 이 말은 아무리 고생하며 일 해봤자 버는 돈이 월 50만원도 채 안 된다는 데서 비롯됐다. 이들 알바생들의 근무 조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20대 비정규직 청년들보다 훨씬 심각했다. 어리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다. 공부를 포기한 학생으로 낙인찍고 부려먹기 일쑤다. ‘알바생’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은 예사다.



“나름대로 공부와 일 병행”

성북구의 한 주택가. 김성우(16. 가명) 군은 오토바이를 세우고 빌라 3층을 순식간에 뛰어올라갔다. 배달이 늦으면 업주로부터 야단을 맞기 때문이다.

김 군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무조건 30분 안에 배달해야 했다. 김 군이 일하는 곳은 다름 아닌 ‘도미노피자’. 지난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30분 배달제’는 폐지된 상태. 2개월 전 10대 배달 알바생이 ‘30분 피자배달 보증제’를 지키기 위해 오토바이 과속주행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쟁업체인 피자헛도 30분 배달제를 폐지, 20년간 국내 대형 피자업체들에서 시행돼 온 30분 배달제는 사라지게 됐다.



김 군은 “30분 배달제는 주문 후부터 집까지 배달되는 시간이 30분을 넘기면 가격을 할인해주거나 피자 값을 받지 않는 제도”라고 했다. 업체 간 과다경쟁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희생되는 이들은 다름 아닌 10대 알바생들이었다. 30분을 넘기면 결국 자신의 월급에서 피자 값이 깎인다는 김 군의 설명.

김 군은 “30분 배달제가 사라졌더라도 이처럼 빨리 움직여야 업주로부터 군소리 듣지 않는다”며 “암묵적으로 업체간 경쟁은 계속되는 셈”이라고 했다. 오토바이 면허증이나 차량 면허증도 없는 김 군은 때론 경찰에게 ‘딱지’를 떼이는 대신 ‘꿀밤’을 맞기도 한다.

“청소년이어서 딱지는 못 끊어요. 대신 공부 안하고 어디 돌아다니느냐고 핀잔을 주는 동네 순경들이 있어요. 사실 공부하기 싫어서 배달 알바 하는 게 아니거든요. 용돈을 벌면서 공부하는 것이 요즘 추세거든요.”



가정 형편이 나빠서가 아니다. 1년째 피자배달을 하는 김 군은 “방과 후인 오후 시간대에 알바하고, 주말엔 공부하기 위해 (알바를) 쉰다”고 했다. 김 군은 “다만 청소년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배달이나 음식점 알바 밖에 없는 것 같아 아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 대학로 공연티켓 판매 알바를 했다는 김 군은 “한창 추울 때 하루 종일 밖에 있다 보니 감기 몸살에 걸려 일을 시작한지 8일 만에 그만뒀다”고 했다.

피자업체나 중국음식점 등 외식업체의 배달은 상당 부분 청소년 아르바이트생들이 맡고 있다. 최근 5년간 오토바이 사고 산업재해자가 7081명이고 이 중 73%가 음식 배달 중 일어난 사고였을 정도로 배달 아르바이트생들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한수진(18. 가명) 양은 3개월간 혜화동의 유명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양은 “스스로 용돈을 벌어보고 싶었고, 올 여름 부모님이 보내주기로 한 해외여행 경비에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한 양은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패티를 굽고 감자를 튀겼다. 카운터를 보기도 하고, 홀 청소를 담당하는 날도 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매니저를 제외하고는 한 양과 같은 또래였다. 매니저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카운터를 볼 때 손님을 웃으면서 대하지 않거나 정해진 인사말을 하지 않으면, 등짝을 때리거나 주먹으로 어깨를 때렸다. 때때로 가벼운 손찌검도 했다. 한 양은 “어리다고 쉽게 다룬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유명 패스트 푸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은 10대 청소년이 대부분이다. 임금은 법정최저임금을 보장했지만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경우도 많았다. 근로기준법에는 ‘15세 이상 18세 미만인 자의 근로시간은 1일에 7시간, 1주일에 40시간을 초과하지 못한다. 다만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따라 1일에 1시간, 1주일에 6시간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다’(69조)고 돼 있다. 그러나 한 양은 7시간을 넘게 일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합의도 없었다. 매니저의 일방적인 지시로 초과 근무를 한 것이다.



애초 한 양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라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겨울방학이 시작된 직후였다. 계약서를 쓰면서 “6시간 일하면 시급 4000원씩 하루 2만4000원을 벌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매니저가 오후 3시나 4시에 퇴근하라는 날도 많았다.

“멋대로 일찍 끝난 경우도 많고 초과 근무를 한 날도 많았어요. 제 시간에 끝난 날이 손으로 꼽을 정도입니다. 근로계약서는 그저 종잇조각일 뿐이죠. 퇴근도 매니저가 ‘가라’고 지시해야만 가능했어요. 초과근무 시간은 시급으로 쳐 줬지만 친구들과 약속을 잡기도 어려웠어요. 또 영어학원에 갈 수 없는 날도 많았어요. 알바생들은 공부 안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은데, 전혀 안 그렇거든요. 학원 가야한다고 하면 무시해요.”

“급여인상? 해고당할까봐 말도 못해”

박현석(16. 가명) 군은 동대문의 한 카레 가게에서 평일 저녁 시간마다 서빙 일을 한다. 저녁 시간대에 하기 때문에 학교 수업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학교 수업이 끝나면 잽싸게 일터로 향해야 한다. 아무리 빨리 도착해도 저녁을 먹는 시간은 고작 20분. 보통은 10여분 만에 후다닥 먹어 치운다. 그나마도 손님이 많으면 식사 시간도 한없이 미뤄진다.

박 군은 “평소 카레를 좋아했는데 이젠 보기만 해도 질린다”고 했다. 질릴 정도로 일하고 번 돈은 한달에 고작 30만원 남짓이다. 박 군은 “적어도 1년간 저녁마다 일해야 한다”며 “알바비는 주로 미술 도구를 사는 데 할애한다”고 밝혔다.



박 군은 시급 4000원을 받는다. 4000원은 법정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박 군은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받고 있지만, 그보다 훨씬 낮은 돈을 받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동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노동부가 지난해 1~2월 조사한 청소년 근로 사업장 실태를 보면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은 4%에 그쳤다. 청소년 알바생 상당수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데도 노동부는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성북구 한 패스트푸드점의 신우영(17. 가명) 양은 제대로 된 식사시간도 없어 요령껏 눈치봐가며 점심을 먹어야 한다. 신 양은 “1000원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 이상은 내 돈을 내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4110원, 2011년 법정 최저임금은 4320원이다. 그러나 신 양은 시급 2500원의 임금을 1년째 받아왔다. 그렇게 주말만 근무해 버는 돈은 월 10만원 정도. 그나마 평일에도 학교 마치고 일해 달라고 연락 오면 20만원 정도를 번다고 했다.

보수 올려달라는 말을 왜 못했느냐는 질문에 신 양은 “처음부터 얘기했으면 모르겠는데 1년째 일해와 말하기가 좀 그렇다”고 했다. 괜히 급여조정 얘기를 꺼냈다가 해고당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기색도 보인다.

신 양은 5분 늦었다는 이유로 하루 일당에서 5000원이 깎인 적도 있다. 근로계약서에 ‘지각 5000원 차감, 무단결근 20만원 차감, 불성실 근무 1회 적발시 3000원 차감’이라는 자의적인 조항이 적혀있었던 것이다.

최저임금 모르는 청소년 많아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지난해 전국 청소년 145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52.3%가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시간당 3000원 미만을 받고 있는 청소년도 15.1%나 됐다. 최저임금법을 어긴 고용주들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그런데도 고용주들이 ‘대담하게’ 최저임금법을 어기는 것은 청소년들이 법정 최저임금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 따르면 응답자 37.4%가 최저임금제 자체를 알지 못했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배경내 활동가는 “사실 일하는 청소년 문제에 있어 가장 큰 한계는 청소년 운동그룹이 부재하다는 것”이라며 “실업계 청소년들의 경우 자신은 대학을 진학할 예정이라는 이유로 현실의 불합리함에 눈감아버리거나 계속 일해야 하기 때문에 찍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배 활동가는 “청소년들에겐 단순히 실습생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난 예비 노동자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인식전환을 바탕으로 단위학교, 지역에서 청소년 노동과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