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은 지금 ‘폭풍전야’

여권 내부가 심상치 않다. 침묵하던 박근혜 전 대표가 다시 청와대를 향해 포문을 열었고 이명박 대통령은 대국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 동안 텃밭으로 자임해왔던 영남 민심도 정권을 향해 비판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의 `탈당 시나리오`와 MB 정권의 ‘한여름 위기설’이 다시 회자될 정도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 입지선정 문제로 정국은 ‘폭풍전야’로 빠져들고 있다.


곳곳이 시한폭탄이다.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로 영남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충청권이 사활을 걸고 있는 과학벨트 입지 선정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입지 선정을 상반기 안에 끝내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는 가운데 호남과 영남권도 경쟁에 가세하면서 파장을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소관 부처인 지난 5일 과학벨트법이 발효됨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는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과학벨트위원회를 본격적으로 출범시켰다. 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위원회는 상반기 안에 입지를 선정할 예정이다.

“표 얻으려고 그랬다”

정치권에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 대통령에게 상당한 치명타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동남권 신공항과 과학벨트 입지 선정과 관련 이전의 입장을 180도 뒤집어 반발을 불러왔다. 정부 또한 대선 공약 여부와 상관 없이 경제논리와 특별법 절차에 따라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와 관련 “대선공약집에도 없다. 표를 얻으려고 그랬다”고 자신의 발등을 찍은 바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기존 충청권 뿐만 아니라 호남, 영남, 경기권까지 총동원돼 유치 전쟁이 한창이다.

충청권에선 ‘정권 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고 일각에선 2012년을 대비한 지역 분산 배치 주장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영남권이 신공항 백지화로 패닉 상태에 들어간 터라 과학벨트를 이 지역에 위로 성격으로 줄 것이란 정치적 해석도 존재한다.

서상기 의원은 과학벨트를 영남 호남 충청권 세 곳에 삼각 벨트 형태로 건설하자는 방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분산배치 방안에 대해선 과학계가 “말도 안 되는 정략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어 결과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위기의 ‘집권 4년차’

이 대통령의 말 바꾸기로 여권 내부조차 대혼돈 상황이다. 이미 이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관계가 정면 충돌하며 분열 수순을 밟고 있는 분위기다.

양측은 지난해 ‘세종시’를 둘러싼 불협화음으로 이미 깊은 상처를 입은 바 있다. 지난해 여름 청와대 비밀회동으로 ‘화해무드’에 들어갔지만 밀월 관계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 대통령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심 이후 박 전 대표와는 또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박 전 대표 또한 작심한 듯 청와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국민과의 약속을 어기지 않아야 예측 가능한 국가가 되지 않겠나. 동남권 신공항은 계속 추진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신뢰성을 겨냥한 박 전 대표의 발언은 사실상의 ‘이별 선언’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도 가만 있지 않았다. 그는 “(박 전 대표가) 지역구인 고향에 내려가서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을 이해한다”며 “그러나 내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다는 것도 아마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력한 차기 대권 주자인 박 전 대표를 지역 대표 의원으로 폄하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친박계는 ‘도가 넘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친박 진영 인사는 “박 전 대표를 무시하고 가겠다는 선전포고”라며 “말로만 충돌이 아니라고 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들이 누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남권 친이계도 이번엔 상황이 난처해질 수 밖에 없다. 친이계 핵심이자 이 대통령의 측근인 조해진 의원도 “신공항 문제에 있어선 박 전 대표와 같이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임장관을 지낸 친이계 주호영 의원은 이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문에 함께 했다.

친박계 이한구 의원은 “주민들의 의사를 대변해 그런 의견을 제출한 사람들이 많다”며 이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가 영남권의 민심임을 주장했다.

역대 과거 정권에서 집권4년차는 레임덕의 신호탄이 시작되는 위기의 시기였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집권 4년차가 되면 대통령이 무리한 정책을 추진하게 되고 그러면 여당으로부터 탈당 얘기가 나오는 게 순서”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안팎으로 코너에 몰리는 가운데 폭풍의 핵인 과학벨트 입지 문제가 어떻게 귀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결별설이 나도는 친박 진영의 대응도 관심을 모은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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