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 노동자들의 ‘이유 있는 저항’

“누군 좋아서 이 일을 하는 줄 아나요. 생존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인권이 있어요.”

영등포역 인근 집창촌 성매매 여성 노동자들의 생존권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경찰의 집창촌 거리 단속 강화로 이미 10여 군데 업소가 문을 닫았고 일부 성매매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었다.

성매매 노동자들은 집창촌과 근거리에 있는 대형 쇼핑몰 타임스퀘어와 신세계백화점의 압력으로 집창촌 거리의 경찰단속이 강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노동자는 “신세계백화점과 경찰서가 함께 움직인다”며 “직장을 폐쇄하려는 자본 권력에 죽을 각오로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 없는’ 집중 단속에 저항

지난 17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앞에서 집창촌 성매매 노동자들은 온몸에 붉은 물감을 칠하고 팬티만 입은채 시위를 벌였다. 온몸에 휘발유를 붓는 등 분신 퍼포먼스를 시도하기도 했다. 시위는 영등포의 대형 쇼핑몰 타임스퀘어와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이루어졌다. 성매매 노동자들은 지난 한주 신세계백화점과 타임스퀘어를 오가며 연일 집회를 이어갔다.

성매매 노동자들은 이 대형 쇼핑몰과 백화점이 당국에 압력을 넣어 집창촌을 폐쇄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3월 초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성매매 업주와 건물주에게 3월 말까지 영업장을 폐쇄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했다는 이유에서다. 신세계백화점과 타임스퀘어 측은 “집창촌 단속은 우리와 관계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경찰은 4월 1일부터 집창촌 출입구를 모두 막은 뒤 24시간 순찰하며 이 일대를 집중 단속해왔다. 이에 손님들은 업소에 발길을 끊었고 영등포 집창촌 10여 군데 업소가 문을 닫아 기존 성매매 노동자들의 수입이 끊겼다. 이에 반발한 성매매 여성들은 “경찰이 밥줄을 끊는다”며 생존권 보장을 요구해왔다.

성매매 노동자 김슬기(가명) 씨는 “3월 중순에 공문서 한 장 달랑 보내고 4월 1일부터 경찰이 거리순찰을 했다. 장사를 못하게 막은 셈이다. 경찰차가 있으니 누가 들어오려고 하겠는가”라고 토로했다.



김 씨는 “제가 영등포 관할서 정보과 형사랑 친하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 커질지 정보과 형사도 몰랐다더라”며 “정보과 형사들도 눈치를 못 차릴 정도로 조용하게 이뤄진 작전”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분명 정치권, 신세계백화점 사주, 경찰 고위직이 한 팀일 것”이라며 “아마 백화점 측은 집창촌 때문에 주변 분위기가 안 좋을 것이라고 여기고 이곳을 당장 없애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또 “대한민국 경찰이 제대로 성매매를 단속하려면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단란주점이나 인터넷 상에서 성매매 알선하는 곳부터 들쑤셔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우리도 잘 한 것은 없지만, 비록 음지라도 이 바닥에서 가장 정직하게 일해 온 노동자들”이라고 강조했다.



김 씨는 “우리의 요구조건은 간단하다. 시간을 조금만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차피 우리도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이곳도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라며 “그렇다면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 경찰과 당국은 우리와 원만한 대화를 통해서라도 여유 자본을 확보할 시간을 줘야 한다. 최소한 2년은 기다려 달라”고 호소했다. 김 씨는 “이곳에 다른 건물이 들어설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일종의 철거 문제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며 “상황이 어찌됐든 용산참사 피해 당사자들과 우리 성매매 노동자들의 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집장촌도 건축물이다. 전반적인 철거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생 학비, 부모님 병원비…”

“우리가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면 아마 사람들은 그럴 겁니다. 이때까지 돈 안 모으고 무엇을 했느냐고. 다른 일 하면 되지 않느냐고.”

성매매 노동자 박선영(가명) 씨는 “우리가 요구하는 2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고 했다. 박 씨는 “이렇게 말하면 그 동안 돈 안 모았냐고 묻는다. 왜 하필 2년이냐고 한다”며 “하지만 우리들이 몸 팔아 모은 돈으로 명품을 사러 다니겠는가. 해외여행이라도 다니겠는가”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우린 ‘된장녀’처럼 살지 않는다. 성매매 여성들은 대부분 가정형편이 어렵다”며 “흔히 돈 벌면 동생 학비, 부모님 병원비 등에 쓰인다. 그래서 지금부터 2년 정도 시간을 더 달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나중에 포장마차라도 하나 차릴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타임스퀘어 명품점 사건’에 대한 해명도 이어졌다. 지난 15일에는 160만원 상당의 가방을 사러온 성매매노동자들과 팔 수 없다는 타임스퀘어 측의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박 씨는 “얼마 전 동료 생일이었다. 십시일반으로 그동안 모은 동전을 보태 타임스퀘어에서 가방을 사주기로 합의했다”며 “타임스퀘어에 동전 항의를 하는 것처럼 비춰졌지만 우리는 소비자 입장에서 돈을 지불하려 했을 뿐이다. 가방을 팔지 않은 타임스퀘어가 일종의 상거래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노동자들에게 사람들은 다른 직업을 구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박 씨는 “사실 저도 동물보호사 자격증, 미용사 자격증이 있다”면서도 “가정을 꾸려나가기 힘들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집에 돈만 많으면, 부양할 가족만 없으면 당장 일 그만두고 자격증 따라 살 수 도 있다”고 밝혔다.



박 씨는 “여기 여성분들 모두가 그렇다. 누가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겠는가”라며 “지금까지 안 해 본 일이 없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죽을 각오로 성매매 업소를 택한 것”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흔히 여성부에서 자활센터 운운하며 다른 직장을 권유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앞뒤가 맞지 않다”며 “자활센터에선 당장 성매매를 그만두고 입소하라고 한다. 40만원이 지원된다. 당장 먹고 살 길이 없어지는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박 씨는 “여성부는 자활센터 명목으로 990억원 챙겨서 뭐했나. 그 돈으로 해외여행 가시지들 않았느냐”며 “990억이면 우리 문제 해결하고도 남을 금액이다. 그런데 여성부는 가끔 집창촌에서 와서 컵라면 몇 박스 주고 가는 게 고작”이라고 주장했다.

“성매매특별법이 족쇄”

성매매 노동자들은 지난 4월 현대리서치연구소에 의뢰해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매매특별법 관련 국민의식 조사 결과보고서’를 만들었다, 박 씨는 “응답자의 50% 정도가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2004년 9월 이전 대비 우리 사회 성폭력 범죄가 증가했다고 답했다”고 강조했다. 이에 박 씨는 “전국적으로 30개가 넘는 집창촌을 성매매방지특별법으로 폐쇄한다면 음성적인 성 거래를 원하는 남성들은 더욱 늘어나고 성폭력도 증가할 것”라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 전반의 성매매 시장의 증감 여부를 알아본 결과 23.2%는 ‘증가’, 19.8%는 ‘감소’, 49.9%는 ‘변함없음’이라고 각각 답했다. 이는 성매매특별법이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것이 입증한다는 지적이다.



성매매특별법 존치 여부를 묻는 항목에는 ‘개정해야 한다’는 답변이 73.3%로 가장 많았고, 현행 유지가 20.7%, 폐지가 3%로 각각 나왔다. 이 때문에 성매매 노동자들은 설문 내용을 토대로 이 법안의 신속한 개정이나 폐지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씨는 “이처럼 문제는 오래전부터 예견됐다.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 여성들의 인권을 억압하기에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7년째로 접어들면서 성매매 여성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신분 노출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이렇게 농성을 이러가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알지만, 우리 입장을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다”고 토로했다.

박 씨는 또 “여성부에서 내놓은 보조금과 재활 프로그램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정책”이라며 “앞으로 무분별한 단속이나 설득력 없는 폐쇄에는 생존권 차원에서 투쟁을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이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 죽을 각오로 힘들게 결정한 것인데 동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기도 한다”며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성매매특별법을 즉각 개정하던지 폐지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