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한 바구에 턴워언, 가지 파는 아저씨

사무실을 나섰다. 숭인동 길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이다. 그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상야릇한 소리.
"한바구에 턴워언!!"
소리는 컸다. 끊임없이 반복됐다. 무슨 소릴까.
길레스토랑 쪽으로 걸음을 조금 옮겼다. 실체가 드러났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 언젠가 한 번 보았던 그 얼굴이다. 붉다. 아니 검다고 하는 게 맞겠다.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40대는 돼 보이는 남자다.
그 남자 앞에 리어카가 있다. 리어카 위에는 고추와 가지 등이 쌓여있다. 리어카 아래 에도 있다. 아스팔트 도로위다. 바닥에 아무 것도 깔지 않은 채 그냥 무더기로 펼쳐놓았다.
"한바구에 턴워언!!"의 의혹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고추와 가지 위에 쓰여져 있는 글귀. "한바구니에 천원"이 남자의 입을 거치면서 변질돼 나오는 것이었다.
길레스토랑 테이블에 앉았다. 거기서도 남자는 훤히 보였다. 익산떡이 "그 때 봤던 그 놈"이라고 얘기해줬다.
`그 때 봤던 그 놈`은 도로에 실례를 했던 사람이다. 숭인동 길레스토랑에 와서 술 달라고 어거지를 부렸던 사람이다.
그러고보니 `그 때 봤던 그 사람`은 그 때, 그러니까 한 겨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과일을 팔고 있었다. 하지만 과일 팔기는 뒷전. 어디서 술을 마신 것인지 잔뜩 취한 상태에서 보여주면 안될 여러 가지 것들을 행인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 익산떡 이랬었다.
"저 놈, 술 좀 그만 마시라고 해도 영 말을 안듣네잉."
익산떡 `놈`자를 붙이는 건 미워서가 아니다. 그저 잘 알기 때문이다. 동생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남자 익산떡을 누님으로 부른다.
그런데 그 남자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저 사람 장애인 아닌가?"
아니란다. 단지 술에 취해서 그렇단다. 어디서 마셔대는 지 낮부터 취해 가지고 다닌단다. 그래서 과일도 팔고, 가지도 팔고, 고추도 판단다. 
"저래 취해서 말도 제대로 안나오는데 어느 사람이 사가기나 하겠나."
사실 그랬다. 보기에 위태로울 정도로 잔뜩 취한 상태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호객행위를 한다. 지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는 얘기를 늘어놓는다. 물론 가지나 고추 사가라는 것일 게다. 사람들 도망친다.
그러고 있는 사이 사고가 발생했다. 골목에서 나온 차가 커브를 틀면서 바닥에 쌓아놓은 한 무더기의 가지를 깔고 지나간 것이다. 화자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 그런데 그럴 만도 했다. 골목길은 좁았고 차들이 계속해서 왕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운전자는 알 수 있었을 텐데….
남자가 자동차 바퀴에 무참히 짓뭉개진 가지를 발견했다. 범인은 이미 자줏빛 가지 위에 타이어자국만을 남긴 채 사라진 뒤였다.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목소리가 더 커졌다. 무슨 말인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가 골목길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뭉개진 가지의 잔해를 집어들더니 골목길 이곳저곳에 던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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