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역사 현장 탐방 30 - 삼청각


# 삼청각에서 바라본 북악산 서울성곽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호에선 과거 절대 권력의 요정에서 시민들의 공원으로 탈바꿈한 삼청각을 둘러봤습니다.


# 삼청각’의 중심 건물인 ‘일화당’.
7,4 남북공동성명의 주역들이 이 곳에서 만찬을 했다고 한다.

성북동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삼청각’은 한 때 권력층의 요정 문화를 대표했던 곳이었다.
삼청각이란 이름은 원래 도교에서 신선이 사는 집을 의미하는 태청, 옥청, 상청에서 따왔다고 한다. 하지만 산 맑고 물 맑고 인심 좋은 산청, 수청, 인청의 의미가 더 어울리는 곳이다.
맑을 청이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보여주듯 삼청각에선 도심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맑은 기운이 넘쳐난다. 서슬푸른 권력은 일반인들의 출입을 드물게 만들었고, 그로 인해 사람의 발자국과 손에서도 비교적 보호를 잘 받았다는 느낌이다.




# 뒤 쪽에서 바라본 ‘일화당’과 현판.

산청,수청,인청

청와대 뒤쪽 삼청터널을 지나거나 성북동 쪽에서 올라가는 두 코스가 있다. 주위가 군사보호지역이어서 자연 경관도 비교적 보존이 잘 된 곳이다. 맞은편엔 서울성곽길이 북악산 줄기를 따라 이어져 있다.
1972년 건립된 삼청각은 1970년대 여야 고위 정치인의 회동이 열렸고 1972년엔 남북적십자회담도 개최했다. 7?4 남북공동성명 직후 남북적십자대표단의 만찬이 이 곳에서 열렸다. 삼청각은 또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장소로 사용됐던 곳이기도 하다. 각 기업들도 수출에 전력을 다하던 때라 외국 바이어들에 대한 접대 장소로도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 관광객 등 외국인을 상대로 ‘기생관광’의 본거지란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유신 시절 요정정치의 산실이었덤 삼청각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른바 ‘방석 문화’가 쇠퇴하고 ‘룸살롱`이 서서히 활개를 펴가던 밤문화의 변화 속에서 삼청각은 여전히 일반인들에게 선뜻 다가서기 힘든 장소로 남았다.




# 삼청각 정문과 담장

1990년대 중반 예향으로 이름을 바꾸고 일반 음식점으로 전환했지만 이 역시 경영난으로 1999년 말 문을 닫았다. 2000년 5월 서울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시설상 문화시설로 지정해 리모델링 공사를 마쳤다. 2001년 가을부터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운영은 세종문화회관이 맡고 있다.
중심건물에선 한국의 명인 명무들의 공연과 국제회의, 세미나가 열린다. 다례, 규방공예, 가야금, 판소리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마당극, 야외놀이마당도 가능하다.
공연장과 한식당, 찻집, 객실 등의 용도로 쓰이는 6채의 한옥으로 구성됐으며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셔틀버스가 운영된다. 시민들이 직접 가려면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전통문화공연장과 ‘도심 속 전통문화체험공간’이란 역할을 생각한다면 교통의 불편함은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기자는 성북동에서 올라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옛최순우선생집, 간송미술관, 심우당을 거쳐 산길을 올라가다보면 왼쪽으로 북악산 서울성곽이 보인다.




# 일년 내내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천추당’ 

맞은편은 ‘북악산 서울성곽’

정문 앞에서 본 삼청각은 마치 왕이 살던 궁궐의 화원에 온 듯한 느낌이다. 정겨운 담장 너머로 한옥의 고운 처마와 녹색 정원이 자태를 뽑낸다.
삼청각 관계자는 리모델링과 관련 “역사적인 장소를 가능한 한 훼손하지 않고 전통미를 그대로 살리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았다”며 “특히 울창한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리고 기존 조경시설을 유지하면서 살짝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런지 각 건물에 쓰인 단청은 경복궁과 창덕궁에서나 볼 수 있는 그것과 흡사한 느낌을 준다.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유하정’이란 정자다. 북악산의 노을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지어졌으며 몸과 마음을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좋다.
일화당은 삼청각의 중심건물로 지상 2층, 지하 2층의 구조다. 한옥의 당당함과 아름다운 정원이 조화를 이뤄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7?4 남북공동성명 직후 대표단의 만찬이 열렸던 곳으로 현재는 다양한 전통문화공연이 열리고 있다.
일년 내내 청정한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천추당’과 봄의 맑은 물소리로 마음과 정신을 씻는다는 ‘청천당’도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 북악산의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유하정’

일화당 아래쪽으론 별채 형식의 정겨운 두 건물이 있다. 선비의 글 읽는 소리가 들려올 듯한 ‘취한당’과 동녘의 상서로운 기운을 전해주는 ‘동백헌’의 고즈넉함은 하룻밤쯤 이 곳에 머물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만든다.
그윽한 분위기의 ‘청천당’은 봄의 맑은 물소리로 마음과 정신을 씻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청천당, 취한당, 동백헌

독재 정권 시절 요정 정치의 이미지를 탈피해 새로운 문화 쉼터로 탈바꿈한 삼청각과 수려한 경관속에서 여유있는 하루를 보내는 건 어떨까. 그러다 보면 6월의 무더운 하루도 금새 지나갈 듯 싶다. 풍성한 수목은 눈을 씻어주고 시내의 맑은 물소리는 귀를 씻어준다. 그러다 보면 깨끗해진 마음 한 구석에선 풍악이 울린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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