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의 이런 얘기 저런 삶> 내 친구 녀석




굉장히 오랜만인 친구 녀석을 만났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 이 녀석과는 말이 꽤 잘 통해서, 둘이서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줄곧 땡땡이를 치곤했다. 분식집에서 떡볶이 한 접시를 두고 몇 시간이고 수다 떨기도 하고, 여름엔 선생님은 모르시는 비밀 아지트에 모여 소심한 비행을 하기도 하고, 뭐 그런 사이였다.
당시엔 거의 잠자는 시간만 빼곤 하루 종일토록 붙어 있는데다가, 대한민국 고교생이라면 거의 열에 아홉은 ‘대입’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기 때문에, 실상 둘이 수다 떠는 내용들도, 네 일, 내 일이 아닌 ‘우리 일’인 것이 대부분이었다.
같은 반에 얌체 짓을 하는 계집애 욕을 할 때도, 따로 상황 설명하지 않아도 이름만 대면 척이었고, 모의고사가 너무 쉽게, 혹은 너무 어렵게 나왔을 때도 이번 언어 말이야, 까지만 말해도 단박에 그치? 그치? 바로 공감 멘트가 날아온다. 비슷한 환경에, 비슷한 목표, 거기에 둘이 성적과 성격까지 비슷해 버리니, 아주 그냥 짝짜꿍이 제대로 맞은 셈이다.
사실, 이 친구와는 서로 무리가 달랐다. 내 친한 친구 무리에는 이 아이가 없었고, 이 아이는 이 아이대로 몇몇 다른 친구들과 무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게 또 묘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를 꼽자면, 분명 다른 아이들 이름 몇몇이 떠오르는데, 내 속마음을 가장 많이 터놓은 아이는 바로 이 친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가장 친한 친구’ 무리에 속하지 않음을 질투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꽤 의지하는, 뭐 그런 사이였다. 나는 이 아이와 그런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에 굉장히 만족스러워했고, 아마 그건 이 친구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대입의 문 앞에서 이 친구와 나는 드디어 갈림길을 맞이했다. 성적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해도, 이 친구와 내 적성과 관심까지 비슷할 순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바라던 대로 법대로 진학했고, 이 친구는 유아교육학과로 진학했다.
어린 아이들을 보면 스트레스를 받는 나와 달리 이 친구는 아이를 유달리 좋아했다. 유아교육학과를 진학해서, 결국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이 친구가 “어린이 여러분~” 하며 뽀미언니처럼 구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또 전혀 안 어울리는 듯한 모습이다. “너 때문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어둡다.ㅋㅋ 유년시절의 환경이 그렇게 중요하다던데.” 내가 깔깔거리며 놀리면, 이 친구는 넉살 좋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받아쳤다.
수능 후 대학 입학 전, 그 짧은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나와 이 친구도 꽤 오랜 시간을 서로 떠올릴 생각도 못하고 서로의 생활에 바쁘게 지냈다. 그리고 며칠 전, 우연찮게 이 친구를 고향에서 만나게 되었다.
어! 야! 오랜만이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폴짝폴짝 한바탕 난리를 치곤, 근처에서 차 한 잔 하게 되었다. 많이 변한 모습, 길었던 머리는 단발이 되었고, 이 녀석 눈엔 없던 쌍꺼풀이 하나 생겼으며, 남자가 싫네 무섭네 했던 주제에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서 동그라미 하나가 빛을 발했다. 그를 두고 농을 쳤더니 수줍은 기색도 없이 줄줄이 남친 자랑질이다. 2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래그래 백년만년 사랑하다가 결혼해라, 했더니 또 깔깔깔. 저 웃음소리는 고등학교 때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구나, 생각하며 같이 웃는다.
길에서 만나 잠깐 인사하고 지나치기 아쉬워 차 한 잔 하려 한 건데, 이게 또 속수무책으로 길어진다. 몇 시까진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일단 그럼 너희 집이 우리 집 방향이니 가는 데까지 같이 걷자고 제안했다. 집을 코앞에 두고, 또 한 동안 폭풍수다.
결국 친구의 어머니께서 어디냐 전화를 하셨고, 집 앞인데 지금 신영이를 만났다, 조금 얘기하다 들어가겠다, 알리고 나서야 우리는 놀이터에 앉아 본격적으로 수다를 재개할 수 있었다.
대체 몇 년 만인지, 쌓이고 쌓인 얘기를 풀어놓는 게 힘이 들 정도로 이야기 할 것은 많고 시간은 터무니없이 빨리 흘렀다. 마치 서로 이야기 해주기 위해 지금껏 소재를 모아온 것 마냥, 그렇게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역시 꽤 잘 맞는 친구다 속으로 생각했다.
뽀얗게 화장한 얼굴에, 쌍꺼풀진 눈꼬리엔 전에 없이 눈웃음이 맺히고 말씨도 이젠 서울 여자애처럼 새초롬해졌는데도 이 친구를 마주하고 있자니 마치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 친구가 변한만큼, 나도 많이 변했을 테지만, 변한 게 없는 것만 같은 느낌.
놀이터에 앉아 깔깔 거리길 또 한참. 목이 깔깔해질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야, 목마르지 않냐? 물으니 마침 말 잘했다는 듯 씩 웃으며, 요 앞에 편의점 있어 마실 거 사러가자. 내가 쏨.ㅋㅋㅋ 2000원 넘어가면 죽는다? 한다. 어쩜 이렇게 귀여울 수가. 스물셋 나이가 무색하게도, 정말 여고생 같지 않은가, 이 친구.
변한 모습이 미미해 보일 정도로 익숙한 친구의 모습에 나는 내심 흐뭇하다. 난 이 친구를 통해서 고교시절을 보고, 녀석도 나에 비추어 그녀 나름의 고교시절을 회상하고 있으리라.
편의점은 대낮같았다. 습하고 어스름한 바깥에서, 유리문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시원하고 청량한 공기가 대번에 우리 둘을 감쌌다. 지나치게 밝은 듯한 내부조명이 밖과 안의 경계를 더욱 뚜렷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알바생은 인사를 하는 듯 마는 듯 미묘한 느낌으로 몸을 기울이다 말았고, 우리는 그런 것 따윈 개의치 않고 곧장 음료코너로 갔다.
뭐 마실 거야? 눈짓으로 물어온다. 갖가지 음료들을 차갑게 유지하기 위해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턱 밑에 손을 대고 짐짓 중대사를 고민하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자니, 녀석이 다시 이, 천, 원, 하면서 손가락 두 개를 까불거린다. 그래놓고 자긴 3000원짜리를 골랐다. 참말 귀엽다, 이 여자.
내가 그냥 천 원짜리 바나나맛 우유(속칭 단지우유)를 고르니 요 귀여운 여자 눈이 똥그래진다. 내가, 왜, 천 원짜리 골라서 놀랐냐? 팔꿈치로 툭 친다. 그런데 이 친구 표정이 홱 진지해지더니 그거 먹지 마 한다. 무슨 소리야 난 이거 먹을래. 안 돼 이리 내놔. 영문도 모르고 잠시 실랑이를 하다가, 이 여자는 결국 내 손에서 바나나맛 우유를 빼앗는데 성공하더니만, 본래 자리에 되돌려 넣고 만다.
왜 그래? 오늘, 삼년 만에 처음 만난 이 친구가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화를 내는 것도, 엄한 것도 아닌, 그렇다고 온화한 것도 아닌 표정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묘한 느낌이 든다. 단호하긴 한데 그렇다고 매서운 정도도 아닌 것이, 딱 잘못한 유치원생을 바라보는 그런 눈빛이다.
나는 결국 바나나맛 우유의 달달함 대신 무슨 수염차인가 뭐시긴가 보리차 맛이 나는 쓸데없는 음료를 손에 들었고, 만족한 표정을 한 이 친구는 결코 친절하지 못한 알바생에게 득의양양하게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알바생이 조금만 더 남의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면, 그녀와 내가 피운 소란에 대해 조금은 호기심어린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하는 전혀 상관없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바나나 우유는 왜 먹으면 안 되는데? 내가 물었다. 바나나 우유가 아니라 바나나‘맛’ 우유! 또 다시 예의 그 단호한 표정. 그래, 언젠가 실 과일 함유가 없을시 ‘~맛’, ‘~향’의 표기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변동사항을 분명 듣긴 했다. 그게 뭐? 하는 표정으로 동글동글 쳐다보니 이 아이가 핸드폰을 주섬주섬 꺼낸다. 이거 봐. 핸드폰 안에서는, 그 친구가, 앞에 꼬마애들 몇 명과 또 커다란 보울 하나를 앞에 두고 여러분 안녕, 손을 흔들며 웃고 있다. 이건 정말 내가 생각했던 그 ‘뽀미 언니’의 모습이 아닌가. 내 친구가 그러고 있는 모습에 웃음을 참느라 입술에 힘을 줬다.
여러분, 공장에서 만든 과자를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 꼬마들 제각각 한마디씩 거든다. 배가 아파요, 이가 썩어요, 뭐 그런 내용들이 혀 짧은 발음으로 여기 저기 튀어나온다. 그 목소리들을 향해 온화한 웃음으로 굽어보는 내 친구. 그래요, 공장 과자에는 몸에 좋지 않은 화학성분이 들어 있어요. 오늘은 바나나맛 우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한번 실험해 볼 거예요. 여러분들 눈 크게 뜨고 한번 볼까요?
친구는 우유에 설탕을 붓고, 합성착향료 조금, 합성색소도 조금, 그대로 휘휘 젓다가, 빈 우유병에 채워 넣는다. 노오란 바나나 우유가 하나 만들어졌다. 우유에 온갖 화학성분을 가미해 바나나맛 우유를 만들어낸 셈이다.
숟가락으로 한 숟갈 퍼서 그대로 맛을 본다. 와 정말 똑같은 맛이에요, 사뭇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인다. 매끄럽지 못해 더욱 재미있다. 여러분 이런 화학성분을 먹고 싶어요? 아이들 일제히 아니요~. 네, 우리는 자연이 주는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해요. 뭐 그런 교육적인 내용이 조금 더 나오다가 동영상은 끝이 났다.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이게 진짜 맛이 완전 똑같아서, 그때부턴 이 바나나맛 우유만 봐도 기분이 역해. 언제쯤 아이들이 안심하고 과자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런 말을 하는 친구의 모습이 꽤 유치원 선생님답다고 해야 하나, 많이 성장한 것처럼 보였다.
친구의 변한 모습을 실감한다. 삼년이란 시간은 짧은 듯, 긴 시간이었다. 이 아이와 내가 공유했던 지난 시간들을 퇴색시킬 만큼의 시간은 못 되지만(아마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거나 혹은 우리가 할머니가 돼서 기억이 흐려지지 않는 이상은 그대로 선명하게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이 친구가 자신이 목표한 바에 한 걸음 다가갈 만큼의 시간임에는 틀림 없었나보다.
변함없이 여고생 친구 같은 이 친구의 모습도 흡족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 친구의 변한 모습 역시 흡족하다. 비단 이 친구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다른 인연들 역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겠지 생각하니 맘이 벅차다.
언제까지고 여고생 같아도 좋다. 느리게라도 나아가고 있을 테니까. 기분이 묘하게도, 어딘가 나조차 잘 모르는 부분을 위로 받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 역시, 하나도 나아진 것 없는 것 같은 나도, 실은 조금, 성장했을까 싶은 모양이다. 변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 대로, 또 변하면 변하는 대로 흡족하니, 이것만큼 좋은 일이 있을까. 바나나 우유의 달콤함이 조금도 아쉽지 않은 저녁이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