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벌과의 한 철-일곱 번째 이야기


# 글라디올로스

서울에서 재보궐선거 관련 ‘찌라시’를 만들어내느라 정신없이 바쁘다고 하는 후배녀석은 틈만 나면 전화를 해서 물었다.
“우리 근로자들 상태가 좀 어떻습니까요.”
“아이고 회장님. 잘들 하고 있습니다요. 죽을둥 살둥 그저 뼈가 으스러지도록 열심히 일들을 하고 있다니까요. 아무래도 내일쯤은 채밀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어쩌실랑가요, 회장니-임?”
내 딴에는 심통이 나서 이죽거리는 소리였지만 사실이었다. 꿀 들어오는 소리가 내 귀에 막 들린다는 느낌이었다. 밖에서 들어오는 벌들마다 배가 불룩하게 솟아 있었다. 한 마리를 잡아서 배를 지그시 눌러보니 걸쭉한 액체가 나오는데 달디단 꿀물이었다. 그것을 벌통 안에 저장하고 벌들이 밤새 씹었다 뱉었다를 반복하면 상품 가치 최고 수준의 벌꿀이 되는 거였다.
뱃속에는 그렇게 가득 꿀을 채우고, 다리에는 또 가득 화분을 달고 들어오는 벌들이 쌩쌩 소리를 내며 부지런을 떨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면 하늘이 온통 벌들이었다. 벌 한 마리가 한 번 작업을 나가서 물고 들어오는 꿀의 양이 얼마인가를 생각하면 사실 기가 막혔다. 주사기에 설탕물을 넣고 살짝 누르다가 말았을 때 바늘 끝으로 날름 맺히는 방울 하나, 딱 그만큼인 것이다. 딱 그만큼인 그것을 먹겠다고, 빼앗아먹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밤에 잠도 못 자고 감시하고 있는 나 자신을 문득 돌아보니 어이가 없었다.


# 다발로 핀 상사화


# 이슬비 내리는 저녁의 상사화

그런 어이없는 소심한 생각은 가능한 한 안 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그런데 나는 그날 어쩐 일로 그런 한심한 생각을 해버리고 있었다. 대체로 봐서 인간이란 그런 소심한 생각에 발목이 잡히기 시작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한숨에 자괴감에 비애감 같은 것들 속으로 빠져들기 마련이어서, 이런 것들을 곱다시 달래고자 한다면 그 어떤 ‘미친짓’에 빠져들어야만 한다.
그것을 달랜다고 서툴게 술 같은 것을 마시게 되면 소위 청승이란 놈이 와락 덤벼들어서 나를 잡아먹으려 한다는 것쯤은 나도 이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정서에 빠지는 날에는 술 대신 그냥 발가벗고 달밤에 이슬로 목욕을 하며 체조를 하는 것이었다.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바로 앞에 인가도 있는데다 낚시터 저수지를 둘러싼 유흥가에서 뻗쳐 나오는 불빛에 사방이 제법 환하기도 해서 두렵기도 했지만, 그렇지만 어쩔 것인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데 어쩔 것인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비도 오지 않고 눈도 내리지 않는 ‘무신날’에 발가벗고 달빛을 받아보기는 그날이 처음이었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는 이유로,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린다는 이유로 옷을 벗고 마당으로 나서는 것이야 뭐 상습이 되어 있었지만, 정지용의 어느 싯귀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날에, 그것도 생전 처음 밟아본 낯선 땅 시흥에서  발가벗고 달밤체조를 할 줄은 정말이지 몰랐다.


# 수국

그렇다고 사람들이 깨어 있는 시간에 그 짓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도 딴에는 남의 눈 무섭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서, 사람들이 대부분 잠들었다 싶은 02시에 나섰다. 잠자리로 빌린 시의원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나올 때도 옷은 다 입고 있었다. 그렇게 옷을 다 입은 채로 마치 벌들의 상태를 살피고자 하는 자세로, 주변 사방을 안 보는 듯이 살피면서 봉장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일단 봉장으로 들어가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거의 없었다.
커다란 오리나무와 아카시아 그리고 보리수 따위들이 담장을 치듯이 둘러싸인 봉장 한켠에 마련된 쉼터에 가만히 서서 심호흡을 몇 차례 한 다음 옷가지들을 하나씩 둘씩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이 가만가만 조용히 벗을 때의 느낌이란 뭐라고나 할까, 소설가 이제하 씨의 표현을 빌려 “잡담 제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말하자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정도쯤이나 될 것인데, 아아, 정말이지 그렇다. 벗은 살갗으로 썬득썬득 와 닿는 5월의 야기(夜氣), 그것을 어찌 감히 문자로 표현한다고 나설 것인가 말이다.
그렇게 홀랑 벗은 몸으로 조용히 차악 가라앉은 공기 속을 걸을 때의 느낌은 또 어떤가. 발자국 소리도 나지 않게 조용히, 그렇다고 도둑이나 염탐꾼처럼 살금살금도 아닌, 공공기관 내부에서 흔히 쓰는 말로 하자면 ‘정숙하게’, 소리를 내지 않으면서도 활달하게 걷고 있노라면 두 팔이 절로 움직여지고 두 다리가 또한 걸음만이 아닌 어떤 액션을 취하게 되는데 이것은 또 무엇인가. 살풀이라든가 혹은 승무 같은 것에나 비견함직한 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니,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나를 가리켜 나라고 말할 수 있으랴.


# 벌통 배치모습

그렇다. 나는 이제부터 내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이 되어간다. 그렇다고 그 무엇이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다. 내 안에 들어 있는, 나도 미처 몰랐던, 평상시의 나를 A라고 가정했을 때 B라고나 해야 할 다른 또 하나의 나를 내가 끄집어내는 순간 A는 장막 뒤로 물러나는 무대 위의 배우처럼 사라지고 B가 주인공으로 나선다. B는 소심한 A와는 달라서 거침이 없다. 다리를 쭉쭉 뻗어 허공을 걷어차는가 하면 두 팔을 쫙쫙 벌려서 무수하게 반짝이는 하늘의 은하수를 마치 앵두 서리라도 하듯이 무식하게 훑어 내기도 한다.
살아오면서 감격적으로 듣거나 보았던 지젤이니 호두까기인형이니 백조의호수 같은 발레모션으로 시작된 B의 ‘몸풀기’는 스카이콩콩을 타기도 하고 땅따먹기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고 품바품바 각설이 흉내를 내보기도 한다. 저 까마득한 유년기에 보았던 무당춤을 어떻게 기억해서 그 흉내를 내보는가 하면, 작두에 올라서는 새끼무당의 오들오들 떠는 발짓을 시연해 보기도 한다. 80년대를 풍미했던 이애주 교수의 심장을 자근자근 담금질하는 춤사위를 불러내 보기도 하고, 두드리다가 죽어도 좋다고 외치는 어느 타악그룹의 리듬을 따라서 양손으로 허벅지를 미친 듯이 두드려 보기도 한다.


# 낚시꾼의 출항

그래서 무엇이 되었는가? 아니다. 그 어느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금방 될 것 같으면서도 안 되는 것, 오래 전 소설가 이인성의 작품 제목처럼 ‘미치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같은 꼭 그런 상태가 되고 말았다. 온 몸에서 땀은 줄줄 흘러내리고 입 안에서는 물을 달라고 아우성인데 이것은 또 무엇이냐.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다. 다리도 풀려서 자꾸 눕자고만 한다. 어쩔 수 없다. 발랑 드러누워서 숨을 씩씩거리며 하늘에 작은 별과 희미한 달을 동무삼아 빌기를 얼마나 했던가. 어느새 B는 사라지고 A가 돌아왔다.
아이고 큰일났다. 벌써 먼동이 터 오고 있네?
벌떡 일어나서 정신없이 옷가지들을 챙겨 입는 나. 그러나 후회는 없다. 후회는커녕 기분이 아주 날아갈 것만 같아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잠을 안 잤어도 잔 것 이상으로 상쾌하고, 무엇이든 거침없이 해낼 것 같다.
상쾌한 기분으로 물왕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밤새 잠도 안자고 낚시찌나 바라보고 앉아 있는 낚시꾼 옆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뭐 좀 잡았습니까?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고, 소주병을 끌어안고 잠들어 있는 취객 옆에 가만히 서서 무슨 꿈을 꾸었습니까?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그런 맹랑한 질문을 던져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저렇게 아무 볼 일도 없이 한가하게 돌아다니기를 한 시간도 넘게 하고 나니 동쪽 하늘에 붉은 기운이 퍼지고 있었다.


# 느긋한 참개구리

봉장에 쭈그리고 앉아 커피 한 잔을 맛나게 끓여 마셨다. 동쪽 하늘은 더욱 붉어져 있었다. 채밀을 한다고 일찍 온다던 후배 녀석은 아직 기척도 없었다. 또 한 잔의 커피를 끓여 마셨다. 그래도 후배 녀석은 오지 않았다. 채밀은 가능한 한 일찍 시작해서 일찍 끝내야지만 벌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그래서 해 뜨기 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전화로 다짐에 또 다짐을 한 사람은 내가 아니고 후배 녀석이었다. 그랬던 녀석이 해가 떠오르도록 코빼기도 못 비치고 있는 이 사건은 대체 무엇이냐.
전화를 했더니 지금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30여분 뒤에 다시 전화를 해보니 아직도 여전히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어디쯤 오고 있는 거냐고 물으니 아직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단다. 뭐야, 아직도 서울? 부부간에 그냥 팍 잠들어 버렸던 것이냐? 짐짓 화를 내고 있는 나, 그 소리에 특유의 너털웃음을 한참이나 웃어대던 후배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이 가관이다.
“길이 꽉 막혀 버렸어요. 에이 씨이 차암 나 이거, 이것도 강남 사는 죄라고는 하지 마시오, 잉?”
“잘했다, 잘했어. 차라리 그 자리에서 꼼짝 말아 버려라.”


# 벌개미취

출근 차량에 휩쓸려서 빨리 오고 싶어도 못 온다는 후배 녀석의 푸념을 듣고 나니
내 안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더불어 쓴웃음도 나왔다. 강남, 그놈의 강남으로 이사를 한 뒤의 후배 녀석은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직살나게’ 해 오고 있었다. 하는 일이 기껏 ‘찌라시’나 찍어대는 출판업이다 보니 을지로에서 살다시피 하는 녀석이었다. 그 계통 사람들이 술을 좋아하는 데다 후배녀석 자신 또한 술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매일 대리운전 아니면 택시를 타야 했다. 그렇게 날리는 돈이 아마 그 집 생활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터이었다.
그렇다고 돈이 많아서 강남에 사는 것은 아니었다. 돈이 없어서 강남에 산다는 게 녀석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녀석이 사는 집은 아파트인데 무슨 15층이나 20층 레벨의 현대식 아파트가 아니었다. 80년대 중반에 지어진 5층 아파트였고, 그것도 자기 집이 아니었다. 억대를 홋가하는 전셋집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월세였다. 그렇다고 평수나 많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11평이라던가 12평이라던가 하여튼 화장실에 들어가서 양치질 한 번 하자면 엉덩이가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치는 그런 형편없는 움막이었다.
그런 움막 레벨의 집이라면 을지로에서 가까운 곳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강남을 선택해서 그런 개고생을 돈들여 가면서 하고 자빠져있었다. 그렇다고 월세 가격이 저렴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이름도 유명한 강남에 집을 둔 부동산임대업자가 헐값에 집을 내놓는다면 그 사람을 아마 제정신이 아니라고 해야 할 터이다.


#범부채

도대체 너는 무슨 억하심정으로 강남 같은 데로 이사를 해서 그런 개고생을 하는 것이냐? 내 입에서 그런 질문이 아마 열 번도 넘게 나왔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후배 녀석은 열 가지도 넘는 이유를 순식간에 쏟아내곤 했다. 학군이 좋아서, 있어 보이고 싶어서, 맹자의 어머니를 추종하고 싶어서, 등등 헤아릴 수도 없는 이유가 녀석의 입에서 줄줄이 나왔다. 자동차를 굳이 미국산 크라이슬러로 산 것도 결국 그런 맥락이라고 봐야 했다.
맹자의 어머니에게서 배우는 바가 많다는 주장은 뭐랄까, 어이가 없다 싶으면서도 일견 그럴 듯해 보이는 점이 있기는 있었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동네에 살면 자식들이 가난을 숙명으로 받아들일까 두렵다나 뭐라나.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하루에도 몇 번씩 타워팰리스 같은 최고급 아파트 앞을 지나갈 때면 자기도 모르게 “나도 조만간 저기에 입주한다”하는 생각이 들면서 불끈불끈 힘이 솟는다는 거였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녀석은 꼭 부록 하나씩을 붙였는데 그 부록이라는 것이 이랬다.
“아 너무 그러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봐요. 형도 이제 쓰고 싶은 소설만 쓸 수 있는 그런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 아니냔 말이에요. 그걸 내가 해준다니까아?”
그놈의 사탕발림에 속아온 세월이 얼마였던가. 돌아보니 어언간에 십여 년이었다. 잊을 만하면 나타나서 형님, 아 형니임, 하는 식으로 내 목에 개목걸이를 걸어대는 녀석과 나의 관계는 굳이 정리하자면 아마도 악연이라고나 해야 할 터이다. 악연,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만, 이번 한 번만 하는 식으로 끌려들어가는 것. 돈 몇푼 일시에 생겼다고 남몰래 미국 이민이나 획책하는 그런 녀석을, 꿈만 꾸다가 이민도 못가고 사기나 당하는 그런 녀석을, 그 성심성의하게 정성 가득한 거짓말을 나는 왜 그렇게도 매번 달콤하게 넙죽넙죽 받아먹는 것인지, 하아 참, 말을 말아야지.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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