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두승산밑 꿀벌집 벌집아씨의 일기장-109회

이 글은 도시에서 살다 오래전 귀농해 전북 정읍시 덕천면 상학리 두승산 자락에서 양봉업(두승산밑 꿀벌집/www.beehome.co.kr)을 하며 살고 있는 벌집쥔장(김동신님)과 벌집아씨(조영숙님) 그리고 세 아이 정우와 주명이, 영섭이의 알콩달콩하면서도 소소한 생활을 아주 자유스럽게 담은 것입니다. 글은 벌집쥔장과 벌집아씨가 번갈아가며 쓰고 있습니다. 이들의 꾸밈없고 진솔한 ‘참살이’ 모습이 삭막한 도시생활에 지친 독자님들에게 청량제가 될 것이란 생각에 가급적 말 표현 등을 그대로 살려 연재합니다. <편집자주>





촌넘 서울 가다
 
고2인 우리 막둥이. 태어나 처음으로 지난해 외가댁인 성남에 혼자 가본 적이 있다. 성남이야 분당까지 가서 바로 버스타고 외가댁 앞에서 내리면 되고, 또 동생네 아들이 친구인지라 분당까지 마중 나오니 별 걱정 없이 다녀왔는데, 지난주엔 처음으로 서울을 혼자 가게 되었다. 청소년 기자인가 뭔가를 한다고 신청하고 교육을 받으러 간다고 하기에 내년이면 고3이니 니 인생을 위해 1년 죽어라 올인할 생각이 없냐고 물으니 없단다. 참말^^. 앞으로 몇 년 뒤면 인생에 있어 공부하는 것이 제일 쉬운 것임을 알게 되겠지만, 지금이야 제일 하기 싫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숭실대를 찾아가려면 어떻게 가는지 인터넷 검색을 한 뒤 출발했는데 이젠 다 컸으니 별로 걱정도 안 된다.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문자가 왔다.
“고속버스 안에서 시계를 파는데 제가 번호에 당첨되어 손을 들었는데 세금을 2만원 줘야한대요. 웃겨요.” “아들아, 사기다. 똑같은 번호 주고 제일 멍해 보이는 사람을 부른단다.” “안 샀어요. 제가 그런 바보는 아니거든요.”
숭실대 잘 도착했다는 문자와 함께 한동안 조용하더니 저녁에 다시 문자가 왔다. “찜질방에서 자려고 했더니 청소년이라서 안 된다고 해서 남자만 들어가는 찜질방에 왔어요.”



그렇게 이틀간 교육받고 온 아들 때문에 한바탕 다시 웃었다. 전철을 타기위해 구매한 1회용 전철티켓값 500원(환불용)이 문제였다. 내려서 출구로 나가려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잘도 나가는데 자기는 자꾸 문이 닫히더라는 것. 그래서 옆에 사람 하는 것보고 나갔다는데 그뿐이랴. 그 500냥 주고 구입한 것을 환불기에 넣어 환불받지 않고 그냥 집까지 가지고 온 것. 한번은 환불기에 넣고 500원을 찾아왔는데 하나는 그대로 가져왔단다.
그 소리에 “엄마도 처음 그것 나왔을 때 수원 갔다 가져왔는데 가져오면서 그랬다. 아깝게 이런 것 만들어서 한 번 쓰고 버리게 하냐고~~. 그런데 알고 봤더니 영구적인 것이더라”고. 그 소리에 “엄마는 그럼 그런 것을 미리 알려줘야지~~.”
그런데 이 촌넘보다 더한 촌아저씨들이 있었으니. 아들이 남자만 들어가는 찜질방에서 잤다는 소리에 시동생과 아빠 “그런 곳도 있냐?”
그랬던 아들이 이번엔 다시 가면서 그 500원을 찾아왔단다. 그리곤 또 하는 소리 “엄마, 일반고속하고 우등하고 뭐가 달라요?” 설명을 해주었더니 “그것이 그것이더구만” 한다. 버스요금 차이가 커서 놀랐던 모양이다.
아들아~~~. 앞으로도 니가 알아야 할 것들은 수없이 많단다. 알려주는 대로 배우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을. 세상을 향해 나가 보렴. 그 길은 니가 생각했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임을 곧 알게 될 것이다. 



 
무서운 하루
 
올 여름은 비만 오는 것 같다. 해가 뜬 날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덕분에 눈앞에 보이는 고추밭은 모두 누렇게 병들어버리고. 그래도 거름값 비싸고 농약값 비싸진 덕인지 논에 모들은 그 바람 불고 비가 내려도 쓰러지지 않고 견뎌주고 있다. 예전엔 비만 그치면 농약들을 쳤는데 근래엔 약치는 풍경을 보기 힘들다.
태풍 온다고 해서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무섭도록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안방 창문을 좀 열어두었는데 바람 불면서 비가 온 탓에 이불도 젖고 물이 잔뜩 고여 비설거지를 해야 했다. 쿨쿨 세상모르고 자는 남편, 천년만년 살 것만 같다.
태풍 지나갔다고 해서 안심했더니 이번엔 물폭탄이다. 어젠 하루 종일 1초도 쉬지 않고 들이붓는데 정말 무섭기까지 하다. 앞은 캄캄하고 천둥은 치고 번개는 번쩍거리고 비 소리는 왜 그리도 큰지 간이 콩알만 해진다. 죄짓지 말고 살아야한다.



여름내 비가 내려도 하루도 쉬지 않고 작업했던 로얄제리. 어제는 결국 채취만하고 이충은  못했다. 울 집 멍멍이 녀석들도 무섭게 내리는 비가 겁나던지 비를 피해 집 뒤쪽에 자리 잡은 채 꼼짝을 않는다. 창문을 조금도 열어놓을 수가 없다. 바람 때문에 비가 거실로 들이치기에. 우리 집이 좀 높은 곳에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벌들이 걱정되어 자꾸만 창문을 통해 마당을 내다보게 된다. 와^^ 조금 더 오면 벌통 잠기겠다. 빗물이 벌통 입구까지 넘실넘실. 이 빗속에 택배를 보내야하나 말아야하나 이것도 걱정이다. 정읍만 비가 많이 오는 것이니 고객분들은 이쪽 사정을 모르고, 결국 보내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고 내려갔는데, 우^^ 얼음 꺼내러 냉동 창고 갈일도 캄캄하기만 하다. 동네로 내려가는 길은 물이 작은 냇가를 넘어선 모습이다. 물이 한없이 내려간다. 핸폰이 불이 난다. 시내에 사는 사람들은 시내가 잠기고 정읍천이 넘실거린다며 피해 없냐고 안부를 물어온다.
밤 11시가 다된 시간 울딸 다음 첫페이지가 정읍으로 도배가 되었다며 집 안 떠내려갔느냐고 전화로 물어온다. 딸은 우리 집이 좀 높은데 있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친구들이 너희 집 괜찮으냐고 문자를 많이 보내와 자기도 걱정이 되어 전화했다고 한다. 통화중에도 딸아이 핸폰엔 연신 문자가 들어오는 모양이다. 결국 그놈의 문자 때문에 전화를 끊었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를 염려해주고 걱정해주는 분들의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 이번 비로 피해를 본 분들이 많아 걱정이다. 어제 하루 종일 넘실거리던 마당 오늘아침에 보니 물이 다 빠졌다. 이젠 제발 비가 그만 왔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오늘도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덮여있다. 항상 꿀벌집을 걱정해주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무사함을 전합니다.


울 남편은 천년웬수
 
이다음에 다시 태어난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래도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엔 조금 생각이 바뀌어가고 있다. 여자는 정신적으로 좀 더 힘들고 피곤하지만, 남자는 육체적으로 힘들뿐 요즘 세상이야 남자나 여자나 같이 벌어먹고 살아야하는 세상이니 이왕이면 남자가 더 좋을 것 같다. 하긴 내 팔자가 이렇다보니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하루 종일 같이 일하고, 그렇다고 머리라도 안 쓰고 살면 좋으련만 그것도 아니니 말이다. 편하게 살면 한도 끝도 없이 편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은 어쩔 수없이 힘들게 살아야하나 보다.
새벽에 일어나 쌀 씻어 가스렌지에 올려놓고 로얄제리 채취하고 들어오면 보통 9시. 그럼 얼른 찌개라도 끓여서 아침상을 차린다. 밥이야 울 막둥이가 해서 전기밥솥에 퍼놓고 가니 좀 수월하다. 친정엄마 오셨다가 그러는 딸보고 이러신다. 요즘은 전기밥솥으로 해도 밥이 맛있으니 종종걸음 치지 말고 전기밥솥에다 밥 해먹으라고. 세상에서 제일 입맛 까다롭고 마눌 피곤하게 만드는 신랑을 둔 것이 웬수다. 그 좋다는 남자들 다 냅두고 모 볼 것 있다고 저런 남자를 선택했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안 그랬으면 지금쯤 편하게 살 것을, 내 복을 내가 찬 것이다.



어느 날 저녁 압력밥솥에다 밥해서 주곤, 전기밥솥에다 밥했는데 밥맛이 어떠냐고 떠보았다. 옆에 있던 막둥이한테 그게 정말이냐고 확인을 하고 막둥이는 엄마편 들려고 하는데, 그날 저녁 천둥에 벼락 치는 소리가 집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렇게 압력밥솥 밥맛이 좋으면 자기가 해먹던가. 그뿐 아니다. 아침에 밥해서 전기밥솥에 넣어두었다가 저녁에 주면 절대로 안 먹는다. 밥에서 냄새가 난다나 어쩐다나 하면서. 다른 사람들 보면 밥해서 이틀도 삼일도 잘도 먹더구만. 총각땐 양은냄비에 밥해서 하루 종일 찬밥덩어리 먹고도 잘만 살더구만. 입맛이 가져진 거다. 자기가 안 해먹으니.
어떤 사람은 그런다. 왜 인생을 그렇게 피곤하게 사냐고~~. 차려준 아침 먹고 나서 난 밥수저 놓지도 않았는데 커피 줘~~. 어느 땐 얄미워서 한대 때려주고 싶을 때도 있다. 조금만 더우면 냉커피, 조금만 찬바람 불면 오늘은 뜨끈뜨끈한 것으로. “당신이 타먹어. 당신 입맛에 딱 맞게.” “에이∼난 빵숙이가 타주는 커피가 제일 맛있더라. 내가 타면 그 맛이 안나.”
으이그, 말이나 못하면. 커피도 일찍 주면 안 된다. 아님 줬다는 것 확실하게 기억하게 뜸을 들였다 타주던가, 안타준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타주어야 한다. 안그럼 언제 줬냐고 거짓말 말라한다. 먹은 것은 까맣게 잊고.



점심 먹은 뒤 일하는 도중 봄에 잔뜩 얼려놓은 딸기에 꿀 넣고 갈아서 한잔씩 나눠마신다. “어~~~이, 이것 얼마나 기다렸는데, 비타민 C랑 꿀맛으로 여름 이겨낸다니까.” 내가 먹어봐도 참 맛나긴 하다. 울 엄마 우리 집에서 이렇게 드셔보시곤 집에 가셔서 토마토랑 딸기 등 사서 꿀 넣고 갈아드신다고 한다.
일하다 풀밭을 더듬으며 갔다 와선 고추와 오이를 건네준다. “야^^ 오늘은 오이냉국 먹겠다.” 매일 먹으면서도 꼭 처음 먹는 것처럼 그런다. 여름 내내 몇 번 빼곤 하루도 빠짐없이 오이냉국을 해준다. “난 세상에서 빵숙이가 해주는 오이냉국이 제일 맛있는 것 같아.”
고구마순 김치를 해주면 또 그런다. “와^^ 시원하고 맛나다. 당신 고구마순 김치 장사해도 되겠어.”
하긴 여름내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다른 반찬은 안 해줘도 되니 편하기도 하다. 같이 살면 닮는다더니 며칠 전 울 시동생도 그런다. “형수님, 진짜 시원한 맛이 나요. 장사해도 되겠어요.”
그뿐 아니다. 울 시동생 얼마 전 휴가때 서울 집에 가면서 “꿀식초 좀 주세요, 오이냉국 해먹게” 그런다. 와^^ 해주는 사람도 질리는데 두 형제는 오이냉국 싫다는 법이 없다.
하긴 시장 갈 수 없으니 다른 반찬 해줄 수도 없고 싫어도 먹어야 할 거다. 이렇게 잠시도 쉴 시간을 안주면서 뭐^^ 책 안보고 티비 본다고~~~. 자기는 해주는 밥 먹고 일만 하면 되지만 난 같이 일하고 살림도 해야 하고. 게다가 울 신랑은 택배도 한 번 안 보낸다. 어쩌다 밖에 나갔다 택배 포장시간이 되면 전화해서 빨리 안온다고 잔소리를 한다. 이틀 전 치과 좀 갔다 친구만나 시간 보내고 들어오는데 울 신랑 투덜대는 소리 들려온다. “이 아줌마가 언제 와서 택배 포장하려구.”



내가 자기냐구요. 알아서 다하는데 이렇게 쓸데없는 잔소리까지 한다니까요. 그뿐 아니다. 15년 된 트럭 죽어도 이것은 마눌 차란다. 이 늙을 대로 늙은 트럭, 꿀 채밀 끝나고 들어올 때쯤부터 요란한 소리를 낸다. 어느 날엔 시내에 나가려다 기절할 뻔했다. 헬리콥터 돌아가는 소리가 나는 거다. 지금껏 시간 없어 못 고치고 있다가 어제서야 꿀 배달가면서 차 맡기고 들어왔다. 그런데 두 형제 벌통 페인트칠하고 손보느라고 요즘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한다. 저녁 무렵 나가보았다. 그랬더니 울 신랑 하는 말 “어, 당신 도망 안 갔어? 난 차가 없어 도망간 줄 알았지.” 으^^ 내 이런 사람이랑 산다니까. 이렇게 정신없는 사람, 정작 기억 안했으면 하는 것은 또 전부 기억을 한다.
이런 울 신랑 전생에 천년웬수 맞지요. 나도 밥하기 싫을 때 많고 놀러 다니고 싶을 때도 있고 예쁘게 화장하고 친구도 만나고 싶다구요. 아마도 울 신랑에게 나란 존재는 마눌이나 여자가 아닌, 그저 일 잘하는 일꾼으로만 보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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