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벌, 벌, 벌과의 한철 여덟 번째 이야기


# 달개비


길이 막혀서 얼마나 늦어질지 모른다는 후배 녀석을 기다리며 부탄가스에 커피나 끓여 마시는 짓을 얼마나 했던가. 갑자기 어디서 여성성의 높은 음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아저씨”하는 구체적인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실제로 여인의 모습이 멀리로 비치는데 나를 바라보며 거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게 웬 묘령의 여인인가.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깬 것은 사실이지만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여인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귀를 쫑긋 세우고 목을 길게 빼고 눈도 잇달아 깜짝깜짝 해가며 그저 보고만 있는데 어마 뜨거워라, 나를 찾아주러 온다기보다는 혼내주러 오는 사람 같다. 가까워질수록 얼굴 표정이 선명해지는데 그 색깔이며 일그러짐이 범상치가 않다. 이마에는 내 천(川)자가 열 개도 넘어 보이고, 눈꼬리는 한껏 치켜 올라갔고, 양쪽 볼에는 보조개는 분명히 아닌데 움푹 들어간 것이 아무래도 나를 물어뜯기 위해 이를 갈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보세요, 아저씨. 아니 도대체 뭔 권한으로, 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사는 마을 앞에 벌통을 이렇게나 수백 개씩이나 늘어놓고 말이에요, 네? 내가 그냥 어저께부터 경찰에 신고할까 하다가 큰 맘 먹고 말이에요. 아저씨, 생각 좀 해보세요, 네? 생각할 줄 몰라요?”


# 비비추


속사포도 이런 무대포적인 속사포가 또 있을까.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는 아마 십여 미터 정도나 될 것이다. 처음부터 혼자서 뭐라고 계속 말을 쏟아내며 씨억씨억 달려오던 그녀는 서로의 얼굴 표정을 확실하게 인식할 정도로 가까워지자 그렇게 마구 일방적으로 대포알을 쏘아대고 있었다. 사전에 약속을 한 사이도 아니고, 기다리던 사람 또한 아닌 까닭에 나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시선 처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허둥거리다가 겨우 한 마디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확확 달아오를 정도의 형편없는 ‘소리’였다.
“아니 대체, 왜, 왜 그러시는데∼요?”
“왜 그러시냐고요? 하핫 참, 내 참, 아니 그렇게 인상 팍 찡그리고 보면 어쩌실 건데요? 네? 어쩌실 건데요?”
“아니, 제 말씀은 그게 아니고, 일단 내용이 뭔지부터 말씀을 하셔야…….”
“내용이 뭐냐고요? 아니 도대체 아저씨는 생각을 하고 사시는 거예요? 아니면 남이야 어쩌거나 말거나 나만 좋다면 다 좋다는 정도까지만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말해보세요. 누구 소개를 받고 여기에 이런 벌통을 수백 개씩이나 앉혀놓고 사람을 못 살게 하는 거예요, 네?”
갈수록 오리무중이요 첩첩산중이었다. 살다살다 그렇게까지 본론은 뒤로 저만치 밀어놓고 서론으로 사람 애간장을 녹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벌통이 수백 개라니, 겨우 팔십여 통밖에 안 되는데 수백 개라니, 과장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과장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나중에야 벌들이 날아다니면서 병아리 눈물만큼씩 내놓는 배설물들이 자동차 위에 떨어져서 깔끔한 자동차 외양이 아주 지저분해진 까닭에 참지 못하고 달려 왔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그 한 마디를 듣기까지 적어도 십여 분이나 소요되었고, 그 바람에 나는 가해자(?)쪽 사람이면서도 피해자 못지않게 속이 부글부글 끓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어쨌든 그녀는 말했다. 금방이라도 내 멱살을 잡아서 끌어낼 듯한 표정에 목소리로 이렇게.
“여러 말 할 것도 없어요. 따라와 보세요.”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씨억씨억 하는 투로 돌아서더니 왔던 길을 되짚어 가고 있었다. 그래, 어쩔 것인가.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졸래졸래 따라갈 수밖에. 그래서 따라갔는데, 가서 보니 아닌 게 아니라 좀 그랬다. 공장에서 출고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되었을 것 같은, 임시번호를 달고 있는 작고 하얗게 귀여운 자동차 ‘모닝’의 본네트며 유리며 지붕에 먼지 같은 것은 한 톨도 안 보이는데 벌똥이 마치 주근깨처럼 깔려 있었다.


# 참나리


게다가 벌똥이라는 것은 이게 아무래도 꿀 성분이 들어 있는 까닭에 일반적인 세차 방식으로는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었다. 야아 이것 큰일났다. 여기서 아차 한 마디만 잘못 지껄이면 나는 죽는다. 죄송이라든가 미안 같은 말로는 해결이 안 된다. 고개를 살짝 수그린 채로 자동차 위의 벌똥을 손톱으로 긁어가며 정신없이 남몰래 머리를 굴리는 나, 그때 어느 순간 기발한 어떤 것이 휙 날아가다가 내 손에 잡혔던가 어쨌던가. 오오, 궁하면 통한다고 해서 궁즉통이라고 했던가.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자발자발 말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렇다고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고,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말들이었다.
“아아, 이것이 이렇게 하니까 채취도 가능하군요? 이것이 말이에요. 이 벌똥이란 것이 항상 나오는 것은 아니거든요. 벌이란 동물은 이슬과 꿀만 먹고 살기 땜에 기본적으로 똥이 없어요. 다만 3월에서 6월까지 약간씩 똥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이건 한방에서도 아주 귀한 약재로 쳐주거든요. 과거 왕조 시대에 궁궐의 중전이나 공주님들만 사용하는 화장품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 벌똥 성분이에요. 그런데 이것을 채취할 방법을 저희가 아직 몰라서 속이 상했었거든요. 왜냐하면 벌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아무 데나 싸버리니 받을 수가 있어야죠. 그런데 오늘 보니까 야아, 이것 참, 이렇게 하면 채취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었네요∼잉?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비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속으로 땀을 삐질삐질 흘려대며 떠벌이기를 얼마나 했던가. 그 사이에 그녀는 나 보기를 마치 무슨 신기한 마술사 보듯이 했고, 떨떠름한 손님 보듯이 했고, 그리 썩 싫지는 않지만 좋다고 말하기도 싫은 이웃집 남자 보듯이 했고, 그러다가 마침내는 입이 살포시 벌어지는가 싶더니 그 안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있었다.


# 채송화

“어머 이것이, 그러니까 이것이 궁중에서나 쓰던 그런 것이라고요?”
아, 됐다. 당장은 됐다. 다음에 무엇이 오든 그것은 그때의 일이다. 그렇게 마음이 완전히 풀어진 그녀에게 내가 또 무슨 근거 불충분한 말을 얼마나 했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다만 그녀와 내가 사이도 좋게 자동차 위의 벌똥을 정성스레 긁어내서 색깔도 예쁜 작은 보시기에 담아내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은 적시해 두기로 하자.
그렇게 나란히 서서 자동차 도색이 망가지지 않도록 플라스틱 해라를 이용해서 살금살금 긁어내기를 얼마나 했던가. 그러는 동안 그녀가 나에게 뭔가를 묻고, 나 또한 그녀에게 뭔가를 묻고, 그렇게 저렇게 서로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고나 할까, 하여튼 이야기꽃을 피우는 참인데 길이 막혀 늦어진다는 후배 녀석이 드디어 도착했다. 그것을 본 내 안에서 뭔가 실망 같은 것이 삐져나오는데 글쎄, 그것을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사이에 나는 그녀와 좀 더 함께 있고 싶다는, 좀 더 친해지고 싶다는 지경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아쉬움을 쇠고랑처럼 발목에 달고 떠나야지. 그렇다고 대뜸 그냥 떠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자상하게 친절하게 벌똥의 활용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이것 말이죠. 전자레인지 같은 데 넣어서 살짝 녹인 다음에 맛사아지를 한 번 해보세요. 아주 좋아질 거예요.”
“네에.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꿀 따면서 로열젤리 나오면 그것도 좀 드릴게요.”
“어머, 정말이에요?”



“프로폴리스도 있지만 저희 사정상 그것까지는 채취를 못하거든요. 하지만 로열젤리 정도는 굳이 채취를 안 해도 필요할 때 따기만 하면 되니까 언제든지 말씀만 하시면 십여 개 정도씩은 드릴게요.”
“어머, 정말이요? 그거 비싼 건데∼에.”
“맞아요. 값싸게 아무 때나 구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요. 기대할게요. 죄송해요. 아까는, 화내서.”
로열젤리 건은 사실이었다. 벌통을 열면 아래층 산란실에 왕대가 수도 없이 달렸으니 언제라도 몇 개쯤 따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벌똥을 전자렌지 같은 것으로 익혀서 마사지를 하라는 말은 나도 그게 무슨 뜻이지 알 수 없었다. 혹시 그렇게 하면 뭔가 유익함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감’이 있을 뿐이었다. 어쨌든 벌똥이란 그 성분을 따져보자면 기본적으로 독은 아니었다. 독은커녕 약이 될 개연성이 아주 높은 물질이었다. 그리고 열에 접촉하면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벌집처럼 벌똥도 전자렌지 속에 들어가면 녹으리라는 자신이 있었고, 여왕의 애벌레인 로열젤리가 인체에 이로운 것으로 과학적인 검증까지 끝나있는 것처럼 벌똥 또한 해로움보다 이로움이 많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요컨대 그녀의 신체에 무슨 위해는 주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불안감조차 없는 것은 아니어서, 채밀을 하는 내내 그쪽으로 가는 시선을 나도 어쩔 수는 없었다. 봉장에서는 그녀가 보이지도 않건만, 주책도 없이 자꾸 보이지도 않는 그녀를 찾아서 고개를 돌리곤 하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마 다 잊어버렸을 것이다.



채밀을 끝내고 점심을 먹고, 인천 어디에 있다는 ‘산적부부’를 찾아가서 만나고, 다시 고창에서 온 ‘대성양봉원’ 주인의 봉장을 찾아가서 구경도 하고, 동동주도 몇 잔 마시고 하는 동안 그녀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잊지 않고 손꼽아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음날 일찍 잠자리를 빠져 나와 봉장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이.”
이건 뭔가. 어제 아침의 정나미 떨어지는 목소리와는 너무도 다른 음성에 나는 그만 어안이 벙벙해져 버렸다. 하루 사이에 그녀는 그렇게 변해 있었다. ‘다정’이라는 말로 밖에는 번역이 안 되는 표정으로 그녀는 사뿐사뿐 씩씩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불현듯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로열젤리를 주겠다고 한 약속을 내 스스로 파기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하여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이 그제야 생각난 것이었다.
“아이고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하도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느라 그만 로열젤리 드린다는 약속을 잊어버렸었네요.”
“네에.”



살짝 실망기가 있는 그 목소리가 애틋했다. 갑자기 엄청나게 아름다워 보이기 시작했다 해도 뭐 틀리지 않았다.
“이제라도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리시면 되거든요.”
“작업도 다 끝나셨잖아요. 그런데도 로열이 있는 거예요?”
“아 그놈의 로열이라는 것은 꿀하고 상관없이 그냥 있는 거예요.”
사실이었다. 아래층 산란실에는 왕대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 왕대라는 것은 생각하면 참 서글픈 면이 있었다. 여왕이 엄연히 활동하고 있는데도 다른 여왕을 만들겠다고 일벌들이 달려들어서 따로 밥을 먹여서 키우는데 그것을 사람은 왕대라고 불렀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것은 곧 로열젤리인데, 이것을 즉시즉시 제거해 주지 않으면 애벌레가 결국 성충이 되는 것이니 새로운 여왕이 탄생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패가 갈라지고, 싸움이 시작되어 일을 못하게 된다. 그래서 여왕 스스로 부지런히 왕대를 못 쓰게 만들어놓기도 하지만, 한 개라도 더 많은 알을 낳아야 하는 임무를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여왕으로서는 고역도 그런 고역이 없는 셈이다.



“이게 사실은 애벌레거든요. 아시죠?”
“저도 말은 들었어요.”
“그러니까 눈으로 확인하려 하지 마시고 통째로 그냥 씹어서 드세요.”
산란실에서 왕대 열 개쯤을 칼로 싹둑싹둑 잘라서 그녀에게 주었다. 그런데 두 시간쯤 뒤에 그녀가 뒤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를 접시에 담아 가져왔다. 간식거리를 만들었는데 나눠먹고 싶어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빨래거리 있으면 세탁기 돌릴 때 함께 해줄 테니 달라고 한다. 허헛 참, 빨래라니. 빨래보다는 요새 며칠 공기 목욕만 하고 물을 끼얹어보지 못해서 온 몸이 근질근질 환장하겠는데 목욕탕이나 좀 빌려달라는 말이 금방 나올 것 같았지만, 혀끝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역지사지라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그놈의 것이 그랬다. 내가 만일 집에서 느닷없이 목욕탕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면, 그러자고 할 수도 없고 안 된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 그야말로 사방이 꽉 막힌 완전한 딜레마가 되고 말 것 같기도 한 것이었다.
“근데요, 아저씨∼이, 그 벌똥은 말이에요. 그것은 여기서 채취가 안 되는 거예요?”
“아 그거요. 어제도 말씀 드렸잖아요. 자기 집에서 똥 싸는 동물이 글쎄요, 뭐가 있을까요. 벌도 그래요. 똥도 별로 없지만 자기 집에서는 안 싸요. 근데 참, 어제 그것 해보셨어요?”
“아뇨, 오늘 한 번 더 긁어서 해 보려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 걱정스러워지고 있었다. 아 그래, 그것 참,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내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마는, 벌똥이 미용에 좋다고 해버린 어제의 그 말을 언제 어떻게 주워 담아야 내가 맞아죽지 않으려는지, 걱정과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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