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의 삶의 향기 폴폴> 장수 한우랑 사과랑 축제 현장에서




시골의 작은 축제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다. 작은 시골마을의 축제이니 한산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시골의 풍광을 보고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전북 장수를 찾았다. 그런데 의외였다.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다. 자동차 주차할 곳을 찾기가 힘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축제를 이곳을 찾아 즐기고 있었다. ‘장수 한우랑 사과랑 축제’ 현장이다.
장수는 청정한 고장으로 이름이 나 있다. 이 고장의 특산품이 바로 사과이고 한우이다. 이 고장 사람들이 한 해 동안 열심히 땀 흘려 수확한 특산품을 널리 홍보하기 위한 축제였다.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찾은 사람들의 수가 엄청났다. 이 고장에서 사는 이들은 물론이고 인근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북적이는 틈에서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축제의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였다.
“사과 맛이 들었나요?” “알이 작은 것은 책임 못 지고요, 굵은 것은 보장할 수 있습니다.”
사과를 판매하는 농부의 말이었다. 계속되는 비로 인해 일조량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어려움이 많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알이 굵은 사과에 대해서는 농부의 명예를 걸 수 있다고 말하는 표정에서 믿음을 읽을 수 있었다. 순박하고 진솔한 농부의 말에 믿음이 갔다. 직접 심어서 기른 농부의 말을 믿지 않으면 누구의 말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두 상자를 주문하였다.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한 상자 당 4만5000원이었다.
값을 치르니, 주인이 오토바이를 가지고 나왔다.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까지 친절하게 배달을 해주었다. 가을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상태에서 사과 상자를 들고 운반한다는 것은 큰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농부의 넉넉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사과 상자를 옮기고 자동차에 싣고 나서 축제의 이 곳 저 곳을 둘러보았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곳은 한우를 싸게 사다가 그 자리에서 직접 구워먹을 수 있는 식당이었다. 이곳까지 왔으니, 한우를 맛보고 싶어서 그 곳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한참동안을 두리번거리면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보았으나,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축제의 주인공인 한우의 맛을 볼 수 없다니, 아쉬움이 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축제엔 다른 볼거리도 아주 많았다. 이곳저곳을 살피다보니 문득 고향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오일장을 찾은 느낌도 들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장 구경을 즐겼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되살아났다. 시골의 작은 축제에서 고향의 정을 느낄 수 있어서 아주 좋았다. 한우 맛은 볼 수 없었지만 이것저것 돌아다니며 군것질을 하는 맛도 괜찮았다.
축제 장 안에 만들어진 작은 모형 논에선 아기 오기들이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축제장 내부에 만들어놓은 논의 모습도 경이롭지만 실제로 벼들이 심어져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곳에서 놀고 있는 아기 오리들의 모습이었다. 여러 마리가 집단으로 논의 이곳저곳을 종횡무진 후비고 다녔다. 거침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친환경농법의 실제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실제를 전시한 것이다. 농약의 피해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넘치는 병해충으로 인해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유기농법은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아기 오리들의 몸짓에서 유기농법의 소중함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자연이 무너지고 있다. 기후 온난화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상태다. 자라고 있는 수종이 달라지고 있고 기후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겪어야 하는 혼란도 아주 심각하다. 올해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였다. 폭우라든가 태풍 그리고 긴 장마로 인해 농작물이 자라지 않고 사람 또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 올 여름만 하여도 예년에 없는 자연 재해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축제장의 내부에 만들어진 논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아기 오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올 여름의 자연 재해를 생각한다. 아기 오리들의 자유로운 몸짓이 나비 효과가 되어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기농법의 확산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기후 온난화를 극복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하나는 작지만 그것들이 모아진다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뛴다.
앙증맞은 아기 오리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논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전체의 논에서 아기 오리들이 자유를 만끽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논에서 아기 오리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면 경천동지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논농사의 전부가 유기농법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이란 말인가?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뛴다.
시골의 작은 축제장에서 만난 아기 오리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꿈을 꿔본다. 우리나라의 농민들이 모두 다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농민들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기 오리들의 자유로운 몸짓을 바라보면서 먹을거리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가을 햇살

덥다. 가을에 들어선 것이 분명한데, 가을 같지가 않다. 아니 여름보다 더 덥다. 정작 여름에는 더울 틈이 없었다. 계속되는 비로 인해 일조량이 많이 부족하였다. 그런데 가을에 들어서면서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연일 폭염주의보가 발령될 정도로 더위가 사람을 잡는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아침저녁에는 가을 기운이 제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한낮의 무더위가 하루 종일 이어진다면 견디기 힘들  게 분명하다.
매미 소리 사이로 기승을 부리는 햇살의 심술이 고약하다. 스멀스멀 배어나는 땀을 주체하기 힘들다. 높아지는 불쾌지수에 짜증이 난다. 가을이 가을다워야지, 왜 이렇게 더운지 알 수가 없다. 햇살의 심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벗어나고 싶다. 햇살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피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햇살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사 마음먹기에 달린 일 아닌가? 햇살의 심술만 생각하다가 생각을 달리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동안 일조량 부족으로 인해 과일과 곡식들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였다. 생명은 햇살을 받아야 성장이 가능하다. 햇살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서는 아무 것도 살아남을 수 없다. 그동안 과일이고 곡식이고 간에 상관없이 일조량이 엄청나게 부족하였다. 부족한 일조량은 고스란히 곡식이나 과일에 악영향을 주었다. 사과는 빨갛게 익을 수 없었고 배는 자라지 못해 작은 상태로 남아 있을 뿐이다. 고추는 빨갛게 익기도 전에 탄저병으로 썩어가고, 배추나 상추 또한 그 피해가 이루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석에 햇과일이나 햇살을 내놓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모든 결과가 서민들의 삶에 영향을 주어 그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천정부지 솟구치는 물가로 인해 서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물가가 오르지 않아도 서민들이 살아가기에는 힘이 들고 어렵다. 그런데 물가까지 급등하고 있으니, 서민들은 난감하기만 하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가을 햇살까지 심술을 부린다. 그런데 문득 저 햇살의 심술이 결코 심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뜨거운 열기가 여물지 않는 곡식들의 열매를 채워주는 것이다.
“하루 햇살이 농민에게는 금과 같습니다.” 고추 농사를 짓는 농민의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가을 햇살은 그동안 비로 인해 고통 받던 농작물에게는 희망과 같은 것이다. 가을 햇살이 뜨거워야 농민이 살아날 수 있다. 아! 얼마나 고마운 햇살인가? 그렇게 고마운 햇살에게 심술을 부린다고 생각하였으니 어리석은 일이다. 가을을 찬란하게 채워주고 있는 햇살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니, 흐르는 땀방울도 기쁨이 된다.


실상사의 반송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보통 소나무가 아니다. 보통 소나무는 줄기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난 뒤에 갈라진다. 그런데 이 소나무는 그렇지 않다. 아예 바닥에서부터 갈라져 있다. 한 뿌리에서 여러 줄기로 나뉘어져 자라고 있다. 푸른 빛깔로 빛나는 솔잎이 돋보이고 그 정기가 전해지고 있어 아름답다. 소나무의 빼어난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우뚝한 형태가 마음을 잡는다.
실상사 명부전 앞에 서 있는 반송은 세월이 덜 묵은 것이고 보광전 앞에 있는 반송은 더 많은 세월을 함께하였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오랜 세월 명부전과 보광전 앞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고뇌와 갈등을 해소시키지 위해서 산사를 찾는 이들의 마음을 하나하나 어루만져주었을 것이기에 더욱 더 정감이 가는 지도 모른다.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었을 것이기에 정이 더 간다.
‘반송은 키는 10m까지 자라며, 소나무의 한 품종이다. 그러나 줄기 밑동에서 굵은 가지가 10~30개 정도 갈라져 나와 나무 생김새가 우산 같은 점이 다르다. 흔히 정원수로 많이 심고 있으며, 줄기가 많이 갈라지기 때문에 만지송(萬枝松)이라고도 한다’라고 사전에 풀이되어 있다. 보통 소나무와는 품격을 달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산사를 찾는 이들의 가슴에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일본 황궁 정원에 심어져있던 소나무들이 생각난다. 일명 흑송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얼마나 정성을 다하여 가꾸는지 보기에 아주 좋았다. 소나무도 관리하는 사람의 정성에 따라 저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생각하였다. 흑송의 아름다움은 꾸밈에서 나온다. 자연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공적인 아름다움이어서 썩 마음이 가진 않았다. 자연미가 아니라 가식미였기에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반송은 다르다. 반송의 아름다움은 자연미다.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않은 아름다움이다. 태양의 기운으로 자라고, 바람의 횡포를 견뎌냈기에 돋보인다. 어디 그뿐인가? 흘러가는 세월에 비도 내렸을 것이고 눈보라가 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 모든 어려움과 역경을 당당하게 몰아내고 완성된 아름다움이다. 사람의 힘으로는 창조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이 세삼 보는 이들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반송의 아름다움에 취하게 된다.
반송처럼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눈보라에 밀리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꾸며내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살아가고 싶다.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는 반송을 보며 지나간 세월을 후회하게 된다. 흘러가버린 시간은 어쩔 수 없지만 남아 있는 시간은 달리 살아가야겠다. 반송처럼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다. 기상이 저절로 배어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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