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 역사 현장 탐방 38 - '김구 선생' 암살된 경무대-1회


# 기념실 입구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씨에 의해 암살된 위대한 민족지도자 김구 선생이 서거한 지도 60여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종로구 평동에 있는 경교장을 찾아봤습니다. 좌와 우, 남과 북이 심한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60년 만에 국민장(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이 다시 치러졌다는 점도 되새겨 볼 만한 것 같습니다. 경교장 이야기는 2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다음 정류장은 서울역사박물관, 경교장입니다."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던 오후, 경교장을 찾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글 쓰는 이에게 너무나 낯익은 신문로 거리. 이미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교육장소로 자리를 잡은 박물관 앞은 한낮의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북적거렸다.
`자, 그럼 경교장 표지판은 어딨지?`
이리 둘러보고 저리 살펴봐도 표지판은 없다. 국가문화재 사적 제465호라면서도 대로변에서 경교장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응급센터 옆 2층 건물

예전 기억과 인터넷을 통한 간단한 선행학습으로 강북삼성병원에 있다는 건 알기에 길을 재촉했다. 경희궁과 경찰박물관을 오른쪽으로 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도착했다. `새문안길 74`라는 길 안내판과 병원 표지판만 보일 뿐이고 역시나 `경교장` 안내판은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형병원이고, 매일 마다 적지 않은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이 곳에 김구선생이 살았던 `경교장`이 있다는 걸 모를 수밖에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 병원 안내 관계자도 "주위 도로에 경교장을 알리는 표지판은 없는 것 같다"고 머쓱해 했다.


# 경교장 외관

병원으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대기하고 있는 응급차와 `응급 의료 센터` 간판이다. 응급 의료 센터와 바로 맞닿은 건물이 바로 경교장이라는 것도 어찌보면 의미심장하다.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가위기설`은 현재 진행형이다.
경교장 앞에 섰지만 이 곳이 민족지도자가 머물던 곳이라곤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병원의 부속 건물이라는 게 딱 맞다. `강북삼성병원`과 `성균관대 의대`라는 글씨가 앞쪽 작은 건물을 압도한다. 이쯤되면 `정말 경무대에 온 게 맞는 걸까` 의구심을 살짝 가지게 된다.

11월 완전 복원 예정

경교장임을 알리는 대형 안내판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건물 입구 왼쪽에 서 있는 길쭉한 모양의 안내판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경교장은 1936년 착공해 2년만인 1938년 완공된 당시 최고의 건축물이었다고 한다. 지상 2층, 지하 1층 건물로 부지면적은 1584평이다. 건축될 때만 해도 내부엔 응접실, 발코니, 당구실, 식당, 이발실, 서재, 욕실 등이 갖춰져 있고 온수 난방 시설이 돼 있는 초호화주택이었다.


# 안내판전경


# 1층계단


# 우측복도

이 곳의 설계는 김세연이 했는데 조선총독부가 진행한 여러 설계를 도맡아 할 만큼 구조계산의 일인자였다고 한다.
물론 이런 호화주택의 주인이 처음부터 김구 선생은 아니었다. 원래 주인은 노다지 발견으로 벼락부자가 된 최창학이라는 친일파였다. 일제 시대 당시 한국인으로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사람은 고종 황제, 방응모, 최창학 세 사람뿐이었다는 일화를 보면 그의 부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예상할 수 있다.
최창학은 1938년부터 1945년까지 이 곳에서 살았는데 해방이 돼 친일파로 몰려 신변에 위협을 느끼자 안전을 위해 이 곳을 김구 선생에게 제공했다. 최창학이 머물 때의 이름은 `죽첨장`이었지만 김구 선생이 머물면서부터 `경교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 거실


# 안두희 자리

소박한 거실과 책상

`죽첨장`이란 이름은 지명이기도 하지만 원래 유래는 1884년 일본공사였던 죽첨진일랑의 이름이었다. `경교`는 당시 무악재에서부터 경교장을 지나 한강으로 흐르는 개천이 있었는데 이를 건너기 위해 놓여진 다리였다.
김구 선생은  이 곳에서 환국 후 첫 국무회의를 소집했고, 남북 통일을 위해 북한에 다녀왔으며 `백범일지`를 집필하기도 했다. 김구 선생 서거 후엔 자유중국 대사관저, 월남 대사관저로 사용되다 1968년 우리병원에 인수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01년 4월 서울시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됐으며 2005년 6월 국가문화재 사적 제465호로 지정됐다. 김구 선생의 집무실이 설계도를 토대로 당시 모습으로 복원된 것도 이 때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곤 약국·창고 등 병원시설로 쓰여왔다.


# 김구흉상

지난 4월 서울시는 경교장 소유주인 삼성생명·강북삼성병원과 협의 끝에 경교장 전체를 복원하기로 발표했다. 병원측은 내년 3월경부터 경교장에 있는 모든 의료시설을 이전하는 등 복원에 협조하기로 했으며 올 11월, 완전 복원될 계획이다.
병원 관계자는 "장소제공을 우리가 하고 복원 비용은 서울시가 부담하는 형식이지만 사실 우리 입장에서 감수해야 하는 물질적 피해는 적지 않다"고 말했다.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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